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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착각도 유분수


우리나라는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단 한 명도 없고 2023년에는 수상자 후보로 예측되는 한국인 과학자가 단 한명도 없다. 노벨과학상이라는 오래된 ‘희망고문’마저도 사라졌다. 사실 ‘희망고문’도 착각 중의 착각이다. 한국은 교육열이 치열하다! 그런데 왜 이 모양인가? 한국은 교육열이 없기 때문이다! 교육열이 아니라 입시열풍이 치열한 것이다. 교육의 질이나 교양교육에는 관심이 없다. 단지 대학 간판만이 중요하다.


초중고 공교육에 이어 대학교육도 무너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2008년부터 등록금이 동결되었다. 국가장학금과 각 대학의 적극적인 장학금 확충 노력으로 인하여 정치권이 약속한 반값등록금이 ‘사실상’ 성취되었다. 4년제 사립대학 재학생 1인당 평균 장학금은 국가장학금 도입 첫 해인 2012년 239.1만 원, 2017년에는 평균 358.8만 원에 달하였다. 이를 감안하여 사립대 재학생 1인당 실질부담 등록금을 추산하면 2012년에는 연간 499.9만 원, 2017년 기준으로는 연간 381.1만 원이다. 그러나 지방대는 물론, 서울과 수도권 주요 대학들까지 극심한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다. 대학의 재정난은 학생들의 피해로 귀결된다. 교수들은 강의와 연구 대신 부수입을 올리는 데 열심인 경우가 적지 않다. 사외이사 활동이나 외부 평가, 심사, 자문을 한다.


대부분의 OECD 국가들에서 거의 무상에 가까운 등록금을 책정하고 있기에 여전히 국민들은 우리나라의 체감 등록금 수준이 여타 선진국에 비해 지나치게 높다고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무상 등록금이란 국가재정으로 즉 세금으로 교육을 한다는 의미이다. 국민이 세금을 더 내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유럽대학은 대부분 국가재정으로 운영한다. 개인 부담은 거의 없다. 미국 주립대학도 주 예산으로 운영하며 미국대학생의 등록금은 저렴하다. 이런 등록금과 우리나라 등록금을 비교하면 의미가 없다. 미국 사립대학의 등록금은 자율화되어 있다. 하버드 대학 등이 전 세계적인 대학이 된 것은 1인당 교육비가 세계 최고 수준이기 때문이다.


반값 등록금, 그래서 얻은 것이 무엇일까.


2021년 한국의 4년제 사립대학 학생 1인당 교육비는 1390만 원이다(인플레를 고려한 실질가격). 1인당 교육비는 교직원 급여, 대학운영비, 도서구매, 기계·기구 구매 등 교육에 필요한 모든 비용을 재학생 수로 나눈 값이다. 2011년에는 1230만원이었으니 10년 간 13% 올랐다. 2011년 1인당 국민소득은 2359만 원에서 2021년 4048만 원으로 72% 증가했다. 국민소득대비 1인당 교육비는 2011년 52%에서 2021년 34%로 떨어졌다. 경제협력기구 평균은 45% 내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 36개 국가 중 한국은 30위이다. 한국 보다 학생 1인당 대학 교육비를 덜 지출하는 국가는 그리스, 리투아니아, 멕시코, 칠레, 터키, 콜롬비아 등 그야말로 후진국뿐이다. 우리나라 사람으로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2023년 임용된 미국대학 교수의 연봉을 우리나라 명문 사립대학과 비교해보니 5~6배였다(경영학과). 우리나라보다 소득이 2배임을 감안하면 얼마나 우리나라 대학교수 연봉이 적을지 알 수 있다. 이름을 밝히지 않는 이 사립대학은 2023년 신임교수를 한 명도 뽑지 못했다. 대기업 신입사원 월급을 받고 교수로 갈 사람은 없었던 것이다. 경제학에서는 국내 대학 조교수의 초임이 미국 대학 조교수 초임의 3분의 1도 안 된다. 해외에서 공부한 우수 인재를 영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다른 분야도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 본다. 10여 년간 ‘포퓰리스트’ 정치인과 그러한 정치인에게 표를 준 국민 덕에 학부모들의 등록금 부담이 적어진 것은 확실하다. 등록금은 10만 원도 올린다고 해도 시끄럽다. 하지만 사교육을 위하여 백만 원은 지출한다. 그로 인한 사립대학의 교육·연구 질 저하는 청소년에게 피해를 줄 뿐이다. 대학은 교육과 연구를 위한 곳이다. 대졸 신입사원 월급을 받고 누가 들어와서 교육을 하고 연구를 할지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오늘날 대학교수는 먹고살기 위하여 돈 벌러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사람이 되었다. 물론 박봉을 인내하며 사는 사람도 있다. 교수는 성직자가 아니다. 1인당 교육비가 낮으면 결과는 뻔하다. 사람들의 관심이 대학졸업장이라면 상관없다. 대학입시를 위해서는 ‘무한정’ 투자를 하지만 대학교육비를 조금만 늘린다하면 들고 일어나 반대하는 걸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러나 교육에 관심이 있다면 기대할 것은 없다. 그 피해는 자신의 자녀가 본다는 것을 기억하여야 한다. 교육은 청소년 아니 자녀의 미래이다. 교육은 대학졸업장이 아니다. 자녀의 미래는 기성세대가 책임져야 한다(한국경제신문, 2023.3.13. 최인 서강대 경제학부교수 기고문 참고하여 편집).


우리나라 대학은 부패하고 부도덕한 교수들이 무관심한 학생들을 가르치는 곳이자 장기적인 비전도 책임도 없는 허식적 권위만 존재하는 곳이 됐다. 우리나라의 대학들은 매우 느리고 확실한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 대학이 천천히 죽어 가고 있다고 말하는 이유는 매우 근본적인 대학의 역할과 위치를 그 어느 누구도 기억하지도 기대하지도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의 대학은 학생들이 들어가고자 하는 입시기관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대학은 ‘연구와 교육’이 이뤄지는 곳이다. 우리의 대학은 기업의 인력양성소로 이해되지만 대학은 고등 교양을 배우는 곳이다. 대학은 자율적인 학문의 전당이지만 오늘날 정부가 대학을 통제하고 있다. 이러한 기초에서 우리 대학은 매우 느리지만 확실한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 누구도 대학이 꿈과 지식을 새로 만들고, 공동체의 구성원들을 가꾸는 자유와 고독의 공간이라는 점을 믿지도 기대하지도 않게 되었다. 우리 시대의 가장 큰 재앙은 이렇게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박원호 서울대 교수, 중앙일보, 2017.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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