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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진화와 문명은 장내미생물의 작품


인간의 장에는 수천 종의 미생물이 살고, 체중의 1~3%로 2kg 정도는 장내 미생물이다. 사람의 몸에 있는 미생물 수는 인간 세포 수보다 비슷하거나 약간 많다. 무게는 얼마 안 되지만 세포 수에서는 거의 동일하다. 대부분 대장이나 소장 등 소화기관에 집중돼 있다. 인간의 유전체에는 수만 가지의 유전자가 담겨있는데, 공생하는 마이크로바이옴의 유전자수는 총 수백만 가지이다. 우리 몸에는 미생물의 유전자가 훨씬 많은 것이다.


장내미생물뿐만 아니라 우리 몸 안에 사는 미생물인 곰팡이(fungi)도 인간의 건강과 질병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곰팡이가 인체에 해를 끼치지 않도록 우리 몸의 면역체계는 억제한다. 면역체계의 균형이 깨지면 장 손상 같은 질병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곰팡이가 염증성 장 질환의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미생물과 곰팡이의 연합체인 셈이다.


장내미생물이 문제가 생기면 아이도 제대로 낳지 못한다. 장내미생물이 부족한 생쥐는 태반이 작고, 태반과 태아를 연결하는 혈관이 잘 발달하지 못한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장내미생물이 부족하면 성장에 필요한 영양분이나 산소 등이 정상적으로 공급받지 못하여 크기와 무게가 적다. 장내미생물이 태반 형성과 혈관 생성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또한 특정한 장내 박테리아가 만든 부산물이 태아와 태반 발달 조절에 관여한다는 가설을 지지하는 증거이다. 장내미생물이 없었다면 새끼도 제대로 낳지 못하고, 결국 진화의 방향도 인간문명도 완전히 달라졌음을 의미한다. 우리 인간의 ‘자아’는 자신을 독립적인 개체로 인식하지만 착각이라는 얘기이다.

https://www.science.org/doi/10.1126/sciadv.adk1887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인류가 세계 곳곳으로 퍼져 나가 적응할 수 있었던 것도 장내 미생물 덕분이다. 유인원이나 다른 영장류와 달리 인간은 지리적 위치와 생활양식에 따라 장내 미생물 구성과 기능에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인류 조상들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가면서 생존을 위해서는 이전에 살던 곳과 다른 음식물을 소화시킬 수 있어야 하고 새로운 질병도 견딜 수 있는 면역력을 갖춰야 했다. 생존과 적응을 위해 장내 미생물의 종류와 분포, 숫자가 변화되었다. 발효음식과 맥주, 와인 같은 발효음료들이 변화된 장내 미생물을 집단 공유하는 수단이 됐다. 우리가 즐거이 먹는 청국장, 즐겁게 마시는 술은 인간과 장내미생물의 공존과 진화의 부산물이다.


인간은 누구인가? 생태계의 일원이다. 다른 생명체가 없다면, 물과 공기가 없다면, 태양빛이 없다면 생태계는 무너지고 인간도 없다. 종교적인 용어를 사용한다면 ‘무아’, ‘피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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