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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렬한 사랑의 희극과 비극의 패러독스

연인의 사랑을 호르몬으로 환원시키는 것을 사람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진실이 가려질수는 없다. 남녀가 호르몬의 작용으로 사랑하는 관계가 되는 것은 당시에 전혀 깨닫지 못한다. 특히 젊은 사람들은 사랑으로 뇌가 중독되어 깨닫지 못한다. 설령 그것을 안다고 해도 피해가지 못한다.


뇌는 열애, 성적 흥분, 장기적인 파트너 관계에 이르게 하는 애착, 부모로서의 행동 등 다양한 애정생활에서 일어나는 과정에 관여한다. 우리가 열렬한 사랑에 빠져서 모든 주의력과 힘을 상대에게 쏟아 부으면 우리의 뇌 깊숙이 아래쪽에 위치한 구조들, 무의식적인 과정들을 조절하는 구조들이 사태를 진두지휘한다. 사랑을 뇌와 호르몬이라는 프로그램이 조정하더라도 인간은 즐겁다. 인간현실이다.


동물 세계의 성호르몬으로 알려져 있는 페로몬(pheromone)을 맡은 동물은 거부할 겨를도 없이 상대에게 저절로 이끌린다. 여왕벌이 수많은 무리를 이끌고 있는 것도 페로몬 때문이다. 인간 남자들은 매력적인 여성을 만나면 단 5분 만에 호르몬의 변화가 일어나 테스토스테론 호르몬은 14%, 코티솔(cortisol) 생산량은 45%까지 증가하며 기분이 좋아진다. 코티솔이 증가하면서 매력적인 여성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며 테스토스테론 호르몬의 분비가 왕성해지며 성기능이 잘 작동하게 된다. 번식이라는 생물학적 요구와 성기능은 동어반복이다. 하지만 사랑과도 동어반복이라고 한다면 그리 기분 좋은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호르몬은 점차 약화되고 영원할 것 같았던 감정은 식어간다. 2001년 영화 「봄날은 간다」에는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헤어지자.”라는 대사가 나온다. 사랑은 식어 변한다. ‘다른’ 사랑이나 이별로. 결혼하면 인간애로 남으며 사랑의 변화가 잘못되면 이별로 막을 내린다.


“모든 사람이 원하는 유일한 강박, 그게 사랑이에요. 사람들은 사랑에 빠지면 완전해진다고 생각하지요. 영혼의 플라톤적 결합? 내 생각은 달라요. 나는 사람은 사랑을 시작하기 전에 완전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사랑이 사람을 부숴버린다고. 완전했다가 금이 가 깨지는 거예요.” 필립 로스(Philip M. Roth, 1933~2018)의『죽어가는 짐승』에 나오는 말이다. 살다보면 멋진 남자나 아름다운 여자에게 대책 없이 심장이 뛴다. 그리고는 다시 부서진다. 멀리서 볼 때는 ‘맑게’ 보였지만 다가갈수록 ‘흠집’이 무수히 난 것을 무수히 경험한다. 얼마를 더 혼란을 겪어야 할지도 알 수 없다(내 사랑이 낯설어질 때, 2017.11.18. 심영섭 영화평론가. 편집).


“어느 나이에도 사랑에는 당할 자 없지만 젊고 순결한 가슴에 사랑의 충동은 은혜로운 것, 봄날의 폭우가 들판에 양분을 주듯, 열정의 비를 맞으며 청춘은 힘을 얻고 되살아나고 여물어 간다. 그리고 왕성한 생명력은 화려한 꽃과 달콤한 열매를 맺게 한다. 그러나 늙고 무력해져 우리 인생의 전기를 맞으면 죽어버린 정열의 흔적이 서글프다. 스산한 가을 폭풍이 초원을 수렁으로 바꾸고 사방의 숲을 벌거벗기듯이.”(알렉산드르 푸시킨 『예브게니 오네긴』7장) 젊은 시절엔 사랑 때문에 상처를 입기도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힘든 인생을 사랑의 힘으로 살아가야 한다. 사랑은 어떤 나이에도 찾아오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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