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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손주사랑은 진화의 역설


영장류는 폐경이 없다. 야생에서 침팬지, 보노보, 고릴라, 오랑우탄은 30대말에 마지막 출산을 하고 죽는다. 사람이 45살 이전에 출산을 마치고 더 사는 것과는 다르다. 그러나 고래는 폐경이 있다. 영장류 중 사람과 포유류 중 이빨고래만 암컷의 생식 기능이 멈추는 폐경이 일어나는 것으로 알려졌었다. 


고래 가운데 범고래, 들쇠고래, 흑범고래 등 3종이 폐경 이후 오래 사는 것으로 밝혀졌다. 범고래는 12~40살 동안 번식하지만 수명은 90살이 넘는다. 들쇠고래도 35살이면 번식을 멈추고 60살이 넘게 산다. 이들 대형고래는 모두 대양에 살며 고도의 사회적 생활을 한다. 이들은 새끼를 적게 낳고 오래 기르며 안정된 모계 집단 속에서 어미와 자식의 유대가 굳건하다. 흑범고래의 폐경 후 수명이 범고래나 들쇠고래보다는 아시아코끼리와 비슷하다. 향고래, 큰머리돌고래, 들고양이 고래 등 다른 대형 사회적 돌고래에도 폐경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여성은 50살이 넘으면서 난소 기능이 쇠퇴해 월경이 중지되는 폐경이 나타난다. 폐경은 수십 년 간 자연계 미스터리 가운데 하나이다. 자신의 유전자를 최대한 많이 남기는 쪽으로 적응하는 것은 진화의 원칙이다. 폐경의 진화적 이점이 분명치 않기 때문에 폐경이 어떻게 진화했는지를 명확히 설명하기는 어렵다. 다른 영장류에는 없는 폐경이 왜 인간에게만 진화했는지도 여전히 불확실하다. 일부에서는 할머니 가설로 설명하기도 한다. 폐경이 생긴 것은 번식능력을 포기하는 대신 자식이나 손주를 보살펴서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는 이득을 얻기 때문이라는 주장으로 할머니 가설로 칭한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폐경’이 없어 모순이다. 최근의 학설로는 ‘생식 갈등 가설’이 있다. 생식을 둘러싼 젊은 세대와 늙은 세대의 갈등이 나이 든 세대의 생식 포기로 이어진다는 주장이다. 할머니 가설은 자신의 유전자의 절반을 남기는 직접 출산에 견줘 4분의 1을 남기는 손주 지원의 이득이 충분치 않다는 약점이 있다. 40여 년 동안 범고래를 조사한 연구에서 어미와 딸이 동시에 번식에 나서면 어미의 자식이 사망할 위험성이 딸의 자식보다 1.7배 높았다. 인간도 딸이 출산을 시작할 즈음 어머니의 출산이 멎는다. 생식 갈등 가설은 할머니 가설을 보완하는 이론으로 주목받는다.


할아버지 가설로도 생식 갈등 가설로도 설명되지 않는 할아버지도 손주를 보살피는 것은 어김없다. 60대가 넘는 남자들의 대화에는 늘 손주가 나온다. 손주 사진과 동영상을 만나는 사람마다 보여주며 자랑하고 웃는다. 아이들이 클 때는 무덤덤했던 이들도 마찬가지이다. 


2023년 아프리카 야생 침팬지들도 폐경을 겪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침팬지 생식능력은 30세 이후 감소하고 50세 이후에는 새끼를 낳지 않았다. 그러나 침팬지들은 폐경 후 자녀 양육에 관여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 할머니 가설이 적용되지 않는다. 생식 갈등 가설로 설명할 수밖에 없다. 여전히 알 수 없는 미스터리이다.

https://doi.org/10.1126/science.add5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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