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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테러와 대량살상, 종교는 악마인가

이스라엘에 의한 폭력의 기원은 신과『성서』였으니 사랑의 신이라는 관념은 모순 그 자체이다. 이스라엘은 신의 이름으로 무자비한 폭력을 성전(聖戰)으로 받아들인다. 그것은 역사적으로 그리스도교도 그랬고 오늘날 이슬람도 마찬가지이다. 유대교,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 세 종교 모두가 겉으로는 사랑을 외치고 실제로는 폭력의 가해자이다. 그들의 사랑은 자신의 종교를 믿는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사랑이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에 대한 무차별 공습뿐만 아니라, IS와 지하드의 자살폭탄 테러, 서구의 중동 침략전쟁. 2000년간 예루살렘의 지배세력은 열한 차례나 바뀌었고, 거의 모든 경우 극단적 폭력을 수반했으며 그 이면에는 늘 종교가 있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지구에서 사라지거나, 두 종교가 없어지거나, 지구와 인류의 종말이 오기 전에는 둘의 처절한 살육과 폭력은 끝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이 둘 간의 전쟁은 자신들의 신념에 따라 세상의 종말이 오기 전에는 끝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정치적 또는 경제적 이득을 노리는 전쟁이라면 협상할 틈이라도 있겠지만, 종교적 확신 ‘범’의 싸움이기에 약이 없다. 정말 답이 없다. 모세가 가나안 땅으로 이주하던 팔레스타인은 유럽이 아메리카 대륙에 진출하였을 때 살던 원주민들이 평화롭게 살던 상황과 다름이 없다.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이주하기 전 모세가 말했다. “하나님이 우리를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신다. 거기서 크고 강한 일곱 족속을 하나님이 내쫓을 것이다. 하나님이 그것을 우리에게 주면, 그들과 협상하지 말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고, 모조리 죽여라.” 남녀노소와 가축을 모조리 죽이고 성에 불을 지르고 노략질을 자행했다. 유일신교가 말하는 사랑이란 가족, 조국, 자기 종교를 믿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임과 동시에 타자에 대한 폭력을 의미하고 있다. 이것이 신이 말했던 사랑일까. 분명이 『성서』에는 타자에 대한 사랑을 말하고 있지 않은가! 아닌가?


팔레스타인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습격하여 많은 사람을 죽였다. 나치의 대학살 홀로코스트를 겪은 그 이스라엘은 보복으로 팔레스타인을 향해서 같은 폭력을 퍼붓고 있다. 미국은 민간인을 보호한다고 겉으로는 말하지만 뒤로는 엄청난 무기를 이스라엘에 지원하고 있다. 바로 테러에 대한 응징, 정의를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러나 ‘누가 1차 세계 대전을 일으켜 수천만 명의 사상자를 냈는가? 누가 2차 세계 대전을 일으켜 수천만 명을 죽였는가? 누가 수천만 명의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을 학살했는가? 누가 일본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려 수십만 명의 사상자를 냈는가? 누가 1억 명 이상의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을 죽였는가? 누가 수천만 명의 남아메리카 원주민들을 죽였는가? 누가 수억 명의 사람들을 노예로 팔고 대서양에 빠뜨려 죽였는가?’ 바로 기독교 국가 유럽과 미국이었다. 그들이 하면 전쟁이고 선교이고 정의이고 무슬림이 같은 행동을 하면 테러인가. 그들은 단 한 번도 반성하거나 사죄한 적이 없다. 예수는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왔다고 기독교는 가르친다. 그러나 기독교 국가와 유대교는 증오와 차별로 세상을 학살하고 갈래갈래 찢어 놓았다. 


 역사적으로 종교로 무장한 인간은 잔인하였다. 유대교와 그리스도교 그리고 이슬람교의 성스러운 순례지인 예루살렘과 이스라엘 그리고 팔레스타인이 어쩌다 인간의 광기와 폭력의 장소가 되었을까. 종교는 악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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