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의 동성애를 범죄로 규정한 최초의 근대국가는 프로이센 왕국이다. 1871년 프로이센이 제정한 형법에 처벌하는 조항이 있다. 하지만 의사들이나 성의학자 등 저명한 인사들이 반대했기 때문에 실제 처벌은 많지 않았다. 세계 최초의 동성애 권리 단체는 프로이센에서 나타났다. 여전히 많은 대중들은 동성애를 처벌해야 할 행위로 봤다. 정치인들은 대중에 영합하여 법 적용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음에도, 처벌 범위를 넓혀갔다. 1909년에는 여성끼리의 성관계도 처벌하는 조항이 생겼다. 베를린에서는 1923년 세계 최초로 남성을 여성으로 바꿔 놓는 성전환수술이 진행됐다. 그러나 나치가 등장하면서 완전히 역전되었다. “동성애를 생각하는 사람은 누구든 우리의 적이다.” 1928년 나치당이 내건 구호였다. 기독교의 주장과 너무 유사하다. 뮌스터의 추기경인 클레멘스 폰 갈렌은 “불신과 부도덕에 대한 공개적 선전”이라고 언급했다. 나치는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라는 표지를 달고 전쟁을 했다. 나치의 강제수용소에는 유대인뿐만 아니라 정치범, 외국인 포로, 성범죄자, 동성애자가 수용되었다. 가장 심한 학대를 당한 건 유대인이었지만 ‘동성애자’도 큰 고통을 받았다. 강제 노동과 채찍질, 말뚝에 매다는 고문을 가했다. 유대인들이 노란색 별로 식별된 것처럼, 동성애자들은 분홍색 역삼각형으로 구별 지어졌다. 성소수자 혐오자들은 이 마크를 보고, 동성애자들에게 집단 린치를 가해 교도관과 동료 수감자로부터 오는 이중의 고통이었다. 유대인이면서 동성애자였던 이중 차별을 겪었다. ‘홀로코스트’에 빗대어 ‘호모코스트’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나치가 집권한 1933년부터 패망한 1945년까지 약 10만 명의 남성이 동성애 혐의로 체포됐고 성 연구 서적 1만 2000권이 분서갱유를 당했다. 2차 대전이 끝난 후 수용소 수감자들은 전후 ‘생존자’라는 이름으로 대우를 받았다. 하지만 여기서도 동성애자들은 예외였다. 범죄자로 분류되는 게이 남성들은 배상금과 국가연금이 거부됐다. 정치범과 유대인 피해자로 확인된 사람들조차 추후에 동성애자임이 밝혀지면 자격이 박탈되었다. 1957년 독일 연방 헌법재판소는 175항은 합헌으로 결정했다. 이 법은 1969년까지 지속됐다. 1945년부터 1969년까지 서독에서 동성애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은 5만 명에 달한다. 사실상 사문화된 175항이 폐지된 건 1994년이 되어서였다. 2002년 독일은 175항에 따른 나치의 판결을 무효화하는 조치를 취했다. 그리고 15년 뒤인 2017년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이 주어졌다(“핑크 삼각형 보이면 강간하고 죽여라”, 매일경제신문, 2023.11.26.).
1952년 수학자 앨런 튜링(Alan Turing, 1912~1954)은 동성애로 체포되어 화학적 거세에 해당하는 12개월의 호르몬 요법을 선고받았다. 모든 지위를 잃은 튜링은 우울증에 걸리고 1954년 청산가리를 주입한 사과를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애플의 ‘베어 먹은 사과’ 로고는 여기에서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세기 후반까지도 영국에서는 동성애가 범죄로 보았다. 특히 1950~60년대에는 강력하게 처벌되었다. 동성애를 처벌해야 할 범죄 또는 치료가 필요한 정신질환으로 간주하는 입장은 영국과 미국에서 2000년대까지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동성애를 범죄로 처벌하는 법은 20세기 후반에 폐지됐지만 미국의 복음주의 개신교를 중심으로 동성애를 치료하는 이른바 전환요법(Conversion therapy)이 널리 퍼졌다. 전환요법은 동성애를 질병으로 규정하여 치료한다. 동성애의 원인을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혹은 동성애자 자신의 인격적 결함 같은 후천적 요인에서 찾아 과거의 자신과 화해하고 노력하면 동성애를 뿌리칠 수 있다고 가르친다. 과거 자폐증이 엄마가 아이를 너무 냉담하게 키운 것이 원인이라며 엄마에게 그 책임을 돌린 것과 똑같다. 기독교의 행태를 보면 가끔 정말로 화가 난다. 전환요법은 의학에서는 인정하지 않는 유사의학에 불과하지만 보수적인 복음주의 교회의 지원 아래 집해되었다. 그리하여 ‘엑소도스 인터네셔널(Exodus International)’ 같은 거대한 단체가 출범하여 동성애자를 치료해서 이성애자로 만드는 활동을 광범위하게 벌였다. 이러한 접근방법은 동성애자에게 극심한 정신적인 고통을 주었고 자살확률이 2배로 늘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시행되었다. 설령 치료에 성공했다는 사람들도 이성과 결혼했지만 대부분 동성애자로 돌아왔다. 결국 많은 동성애자의 삶을 파괴했고 죽음에 이르게 했다. 이러한 전환요법이 21세기 한국에서도 시행될 기미가 보인다.
이슬람교는 훨씬 동성애를 매우 강경하게 반대하며 가장 강력한 처벌을 가한다. 사형까지 당하는 경우도 많다. 동성애자임을 표출하기만 해도 목숨을 걸어야 한다. 심지어는 명예살인을 당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