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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하는 언어

침묵의 언어


지혜로운 언어


말이 적을수록

갈등도 적어진다.

항상 신중하게 말하고,

알력이 있으면

더 조심스럽게 말을 한다.


살다보면

한 마디 더 할 시간은 있어도,

그 한 말을 취소할

시간은 오지 않는다.


아무리 사소한 말도 가장 중대한 말을

하는 것처럼 하자.


발타자르 그라시안(Belmonte de Gracián, 1601~1658)의『살아갈 날들을 위한 지혜』에서


아무리 ‘훌륭한’ 조언이나 충고도 자칫하면 잔소리, 군소리가 되고 심한 경우 헛소리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나이든 사람이 이러니저러니 자꾸 말을 하면 편치 않다. 나이 들면서 왕년의 이야기, 자식 자랑 심지어는 떠오르는 모든 것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사람이 있다. 나이 들면서 입을 닫는다는 게 정말 어려운 일임을 실감한다. 상대방 얘기는 듣지 않고 늘 본인 이야기만 하거나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고 한다. 뇌세포는 30세가 지나면 노화가 시작되어 40~50대가 되면 그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진다. 기억이 떨어지니 했던 말을 자꾸 되풀이한다. 살아온 시간이 길어 머릿속에 ‘꺼리'가 쌓이거나 대화 상대가 점점 줄어들어 기회가 생기면 구구절절 늘어놓는다. 듣고, 읽고, 쓰고, 입은 닫고, 웃고, 반대하면 받아들이고 찬성하면 고맙다고 말하고, 가진 것은 나누어주고, 마음을 비워야 한다.


불교에서 하안거나 동안거 석 달 수행의 마지막 1주일간 잠을 자지 않고 참선 수행에 몰두하는 해인사의 용맹정진은 유명하다. 용맹정진 기간, 침묵의 역할은 크다. 오로지 화두 하나에만 집중, 또 집중한다. 좌복(방석)에 앉아서도, 걸을 때도 침묵 속 화두뿐이다. 기본 의사소통은 ‘죽비'가 맡는다. 대나무 가운데를 길이 방향으로 가르거나, 두 쪽을 묶은 죽비는 손바닥에 대고 치면 ’짝, 짝' 날카로운 소리가 난다. 이걸 세 번 치는 것으로 정진 시작과 끝을 알린다. 용맹정진 기간엔 새벽·저녁 예불도 죽비 세 번으로 대체한다. 천주교 수도 생활에서도 침묵은 영성을 키우는 중요한 도구다. 수도원들은 매일 ‘대 침묵' 시간을 지키고, 특히 봉쇄수도원은 침묵이 일상이다. 2009년 국내 개봉된 다큐 영화 ‘위대한 침묵'은 침묵 속에 살아가는 알프스 산중 카르투지오 수도원의 생활을 2시간 반 동안 대사 한마디 없는 영상에 담았지만 10만 명이 관람했다. 법정 스님의 5주기 날 서울 성북동 길상사 담벼락 아래에 작은 글 판이 놓여 있었다. “우리들은 말을 안 해서 후회되는 일보다도 말을 해 버렸기 때문에 후회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늘 “내 이야기는 이걸로 끝이고, 나머지는 저 꽃들에게 들으라.”고 법문을 마무리했던 법정 스님이다(조선일보, 2015.3.20.).


무엇이 성공인가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

현명한 이에게 존경을 받고

아이들에게서 사랑을 받는 것

정직한 비평가의 찬사를 듣고

친구의 배반을 참아내는 것

아름다움을 식별할 줄 알며

다른 사람에게서 최선의 것을 발견하는 것

아이를 낳든 한 뙈기의 정원을 가꾸든 사회 환경을 개선하든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자신이 한때 이곳에서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 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랄프왈도 에머슨


옛날 어떤 왕이 그 나라에서 사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가장 훌륭한 학자 한 명을 궁궐로 불렀다. 왕은 늘 자신이 궁금해 하던 물음 하나를 던졌다. “어떻게 사는 것이 훌륭하게 사는 것입니까?” 학자가 대답했다. “주위를 돌아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손은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 머리는 진실만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왕은 학자의 대답에 피식 웃었다. “이보시오. 그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것 아니오?” 학자는 미소를 띠며 말했다. “이것은 세 살 먹은 아이도 다 알고 있는 지극히 평범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팔십 먹은 노인도 실제로 지키기는 힘들지요.”


“내 입 안의 혀도 다스리지 못하는데 다른 사람의 혀를 다스릴 수 있겠는가?”라는 말이 있다. 벤자민 프랭클린이 한 말이다. 할 말이 많지만 다 말하지 않는다. 말을 하다 보면 끝까지 떠오르는 생각을 끄집어내는 경박함에 여지없이 갇힌다. 구구절절 옳다고 생각하는 말을 끝까지 말해버리면 공허해지고 듣는 사람에게 생각의 여지조차 남지 않는다. 여운과 여백이 없으니 아름다울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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