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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과 소신공양 사이의 붓다(2)


붓다가 활동하던 시기에 자이나교라는 종교도 있었다. 자이나교는 ‘자유’를 얻기 위하여 고행만으로 모든 육체적인 것을 제거해버리려고 하였다. 그러나 붓다의 생각은 달랐다. 인간은 사람마다 자신의 기질(불교적인 용어로 성향 disposition이라고 부른다.)을 가지고 태어난다. 현대적 의미로는 유전자 또는 생존과 번식의 본능이라고 할 수 있다. 자이나교의 수행은 이러한 성향을 제거하려는 것이다. 결국 그것은 생물학적인 자살을 의미할 수 있다. 성향, 즉 인간의 생존과 번식욕구는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필수적이다. 그것이 없다면 또는 그것을 제거한다면 죽음 즉 자살이다. 여기서 붓다의 중도가 시작된다. 붓다가 제시한 중도는 모든 성향들을 평온하게 가라앉히는 것(sabbasaṅkhārasamatha, 一切行止靜)을 말하며 이것이 곧 자유(nibbāna, 涅槃)이다. 


붓다는 당시 출가자들의 수행이 문제가 있음을 깨달았다. 진정한 해탈은 행위 혹은 행위의 포기가 아니다. 붓다에게 그것은 ‘앎’의 문제 또는 마음의 문제라는 것이다. 해탈은 내적인 탐구에서 오지만, 극단적인 고행도 ‘저급한’ 이해도 넘어서야 가능하다. 즉 고행도 아니고, 사실상 자살을 의미하는 성향의 제거도 아니다. 바른 앎과 성향(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붓다는 마음과 마음이 일으키는 생각(thought process)을 다스리라고 말했지 의식의 제거(restraint of consciousness)를 말하지 않았다. 즉 성향의 제거는 가능하지도 않으며 자살을 시도하는 것과 다름없다. 의식은 인간인 이상, 인간이기 때문에 있는 것이며 또한 그것을 제거한다는 것은 ‘정신적인’ 자살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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