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는 성향을 가라앉힘으로써 (마음의 평화를 가지고) 궁극적 객관성이나 절대적 영원한 존재, 허무적인 비존재 같은 세계관에 빠지지 않고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였다. 인간의 생각이나 개념은 절대적이지 않다. 인간의 인식능력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깨달으면서 어리석은 심적 혼란(moha, 痴)은 가라앉았다.
그러므로 자유는 탐욕(lobha, 貪)과 증오(dosa, 瞋)를 버릴 뿐만 아니라, 어리석음(moha, 痴)도 극복하는 것이다. 인간의 제한된 인식능력으로 삶의 본질을 명확하게 이해하는 것이야 말로 자유와 행복의 필수조건이다. 깨달은 자란 인식과 이해의 왜곡을 극복한 자이다.
불교가 추구하는 깨달음의 출발점은 탐욕을 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 불교는 어떤가. 그전에 기독교는 이미 추문으로 사회적 욕을 먹은 지 오래고 기독교인 아닌 사람들은 이젠 아무도 관심조차 갖지 않는 대책 없는 집단이 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개독교’라는 비아냥까지 듣는다. 물론 훌륭한 성직자와 신자는 많다. 불교에서 들려오는 뉴스도 그에 못지않은 많은 추문으로 이어지고 있다.
2018년 PD수첩은 자승스님의 불법 도박 의혹, 법등스님의 성폭력 의혹, 성월스님의 쌍둥이 아빠 의혹 등을 다루기로 예고했다. 적광스님은 자승스님의 상습 거액도박과 성 매수 등을 폭로했다. 이로 인하여 적광스님은 스님들에게 지하실로 납치돼 집단 폭행을 당했다. 그 후 정신병원을 오가며 폐인생활을 하였다. 법등스님은 여승과 그 여동생까지 성폭행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자매는 당시 충격으로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고 아버지는 충격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법등스님은 “성폭력은 절대 없었고 성노리개라는 말도 당치 않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숨겨둔 아내와 자식이 있다는 의혹을 받는 성월스님은 용주사 신도위원회에게 민사소송을 당했다. 위원장 대안스님은 당시 용주사 호법국장인 탄종스님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밝혔다. 대안스님은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고 하는 스님들을 징계 8년, 10년을, 나는 제적을 당했다.”고 설명했다. 성월스님은 “과학적 검사를 비롯해 진실 규명을 위한 모든 조사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밝혔지만 유전자 검사는 받지 않았다(서울신문, 2018.5.29., 천지일보, 2018.5.30.). 불교의 출발점인 탐욕을 버리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2023년 정부(유인촌 장관)는 자승스님에게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했다. 국민훈장 무궁화장은 ‘정치·경제·사회·교육·학술 분야에 공을 세워 국민의 복지향상과 국가 발전에 이바지한 공적이 뚜렷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국민훈장(5등급) 중 1등급에 해당한다. ‘표’가 생존수단인 정치인들의 행적이야 더 이상 말할 것은 없지만. 대체 우리 사회는 어디로 가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