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종교나 특정 정파를 비판하면 구독자가 뚝뚝 떨어져 나간다. 종교학 박사과정 때 지도교수(프랑스인)은 우리나라 불교계 유명한 스님의 주장이 완전한 표절이라고 주장했다가 불교계에서 완전하게 버림받았다. ‘사실(fact)’을 말했다는 이유로. 지도교수의 학자로서의 양심을 존경한다. 나도 그 제자이다.
붓다가 최종적으로 채택한 수행방법은 우선 탐욕과 갈망 그리고 집착으로 가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자살’처럼 그런 성향을 제거하는 것도 아니다. 자신의 성향을 평화롭게 가라앉혀 탐욕(rāga)과 증오(dosa)를 누그러뜨릴 때까지 계속되는 수행이다. 붓다는 성향을 가라앉히는 것이 깨달음에 이르는 길임을 깨달았기에, 자유(nibbāna, 涅槃)를 ‘성향의 가라앉음(saṅkhāra-samatha, 行止)’이라고 규정했다. 이를 붓다는 “마음이 행(行)에서 자유를 얻으니 갈애가 끝남을 보도다.”라고 표현하였다. 붓다는 자살처럼 성향을 제거하려는 수행방법도 거부하였다. 그러니 자살은 애초부터 말할 것도 없었다.
소신공양이란 문자 그대로 ‘진리’를 위해 몸을 불태워 공양한다는 말이다. 소신공양은 부처의 본래 가르침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 주장으로 불교를 모독하는 것이다. 기원전후 대승경전인『묘법연화경(법화경)』에 나오는 약왕보살의 일화로 소신공양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전개한다. 그러나 이는 분신자살과는 차원이 전혀 다른 개념이다. 더구나 약왕보살은 번뇌로 죽은 것이 아니라 대중의 진리를 위해 보시한 것이고 나중에 다시 환생한다. 자승은 유서에서 볼 수 있듯이 개인적인 번뇌로 자살했다. 승려가 자기 몸만 불사르는 것이 아니라 절간을 불태워 가면서 자살하는 경우는 불교 역사만이 아니라 세계 역사에서도 유례가 없을 것이다. 참고로 많은 대승경전이 진정한 경전인가에 대하여 논란이 있다. 그 논란은 다루지 못한다.
불교의 승려라면 불교 교리의 으뜸인 사성제를 이루기 위하여 팔정도를 실천해야 마땅하다. 그 팔정도 어디에도 분신자살은 없다. 불교는 불살생(不殺生, 죽여서는 안 된다.)을 핵심 교리로 하고 있으며, 자신의 생명을 해치는 것 역시 살생으로 금지된다. 불교의 오계는 타인은 물론 자기 자신을 포함하여 살생하지 말며, 주어지지 않은 것을 훔치지 말며, 감각적 쾌락에 탐닉하지 말며, 술을 마시고 만취하지 말 것 등이다. 그 다음은 십계가 있다. 이는 오계의 처음 네 가지를 포함하여 중상하지 말며, 지나치거나 거친 말을 하지 말며, 쓸데없는 한담을 하지 말며, 탐내지 말며, 악의를 갖지 말며, 거짓된 사견을 갖지 말 것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