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출간한 책 [미래형 인재 자녀교육]을 업데트 한 글입니다.
스티븐 핑커(Steven Pinker)의 저서『빈 서판』의 제목은 존 로크(John Locke, 1632~1704)가 한 말이다. 깨끗이 닦은 서판(scraped tablet)을 의미하는 중세 라틴어 타불라 라사(tabula rasa)를 의역한 말이다. 사람은 백지 상태로 태어나서 환경으로부터 습득한 것이 채워지면서 사람이 완성된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인간은 결코 빈 서판이 아니다. 물려받은 유전자와 기질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럼에도 ‘수많은’ 부모들이 자녀의 인격을 ‘만들거나’, 공부 잘하게 ‘만들거나’ 성공하게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이것이 비극의 시작이다.
분명한 진실은 교육은 인간의 선천적인 능력의 장단점을 보완해주거나 보충하는 것이지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니다. 스티븐 핑거가 교육에 관한 책으로 언급한 주디스 해리스(Judith R. Harris, 1938~2018)의『양육가설』에는 인도 시골마을의 어머니의 말이 나온다. 아이가 어떤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냐고 묻자 “그것은 운명이지 내가 바란다고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물론 지나친 결정론이다. 인간은 타고 난대로 결정된 존재도 아니다. 인간은 결코 ‘빈 서판’ 같이 빈 것도 아니지만 결정된 것도 아니다. 인간의 뇌는 가소성이 있듯이 유연하여 미래를 향하여 열렸지만 어느 정도는 선천적인 기질에 의한 제한을 받는다. 인간이 하여야 할 일은 아이들이 자신의 길을 열어가도록 사랑과 기다림으로 안아주는 것뿐이다.
그러면 부모가 할 일은 무엇일까. 한 연구를 보면 그 힌트가 보인다. 미국 내 쌍둥이 750쌍을 대상으로 생후 10개월과 생후 2살 때 지적 능력을 조사한 결과, 생후 10개월에서는 부모의 경제력과 관계없이 아이의 지적 능력에 가장 중요한 것은 가정환경이었다. 하지만 2살이 되자 가난한 가정에서는 환경적 요인이 아이의 지적 능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나 부유한 가정에서는 유전적 요인이 아이의 지적 능력에 더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난한 가정의 2살 아이의 경우 지적 능력 차이의 80%가량이 가정환경으로 설명됐다. 이에 비해 부유한 가정의 2살 아이는 지적 능력 차이의 50%가량이 유전적 요인으로 설명 가능했다. 부잣집 아이들은 음악 레슨부터 체육 수업, 영어와 수학 과외 등 돈으로 살 수 있는 온갖 종류의 교육적 혜택을 이미 누린다. 따라서 이러한 것들이 자녀의 지적 능력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다. 부모는 기본적인 지적 환경만 제공하고 자녀에게 너무 신경 쓰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