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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인문사회

‘인간적’이 의미하는 것과 입양


2020년 입양된 지 10개월 만에 사망한 고 정인양(사망 당시 16개월) 사건으로 시끄러웠다. 당시 발표된 부검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사인은 췌장 절단으로 인한 복강막 출혈이었다. 췌장 절단 외에도 장기 손상과 광범위한 출혈이 있었다. 발생 시기가 다른 골절상 7곳과 피하출혈 흔적도 함께 발견됐다. 당시 검사를 했던 의사는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높은 곳에서 추락하지 않는 이상 복부 깊은 곳에 있는 췌장이 절단되는 일은 생길 수 없다고 말했다. 병원에 왔을 때 사실상 사망 상태였고 이미 택시 안에서 심정지가 일어났다. 장기가 파열돼 흘러나온 혈액이 배에 찾고 갈비뼈 등이 부러진 곳도 여러 곳이었다. 누가 봐도 학대인데, 정인이 양모가 보호자 대기실에서 ‘우리 애 죽으면 어떡해요’라며 울부짖는 것을 보면서 의료진은 ‘진짜 악마인가’ 생각했다고 전했다.


이런 행동은 ‘동물’의 세계에 흔하다. 동물이 새로운 짝을 만나면 이전에 낳은 새끼들을 대부분 죽인다. 무리의 우두머리가 바뀔 때도 이전 우두머리의 새끼들은 죽임을 당한다. 동물생태학자들은 이 같은 행동이 자신의 유전자를 더 많이 퍼뜨리기 위해 다른 수컷 유전자를 가진 새끼를 없애는 것이라고 본다. 실제로 사자와 고릴라를 비롯해 대부분의 동물에서 새끼를 죽이는 모습이 관찰된다. 부성애를 발휘해 새끼를 입양하는 경우도 있다는 주장도 있지만, 동물이 입양하는 사례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2024년 예외적인 사례가 발견되었다. 30년 가까이 관찰한 끝에 앵무새가 ‘남’의 새끼를 자기 새끼처럼 돌보는 모습을 목격했다. 신세계앵무새(학명 neotropical parrot)는 수컷이 암컷보다 2배가량 많다. 수컷들 사이에 짝을 차지하기 위한 다툼이 자주 일어나 죽는 수컷도 나온다. 이들 중 31%는 짝을 잃은 암컷 앵무새는 여러 마리의 수컷에게 구애를 받고 새로운 짝을 맞이한다. 재혼한 앵무새의 절반이상이 폭력적으로 새로운 짝을 차지했지만 이전에 낳은 새끼는 자기 새끼처럼 돌봤다. 이런 행위는 결국은 자신의 자손을 번성하는 데 더 도움이 되기 때문이긴 하다. 새로 맞이한 암컷과의 유대감을 강화하기 위해 그들의 새끼를 돌봐주는 것이다. 실제로 새끼를 죽인 앵무새보다 입양해 돌봐준 앵무새가 더 빨리 번식하고 더 많은 새끼를 낳는다. 동물의 입양은 번식목적에 이루어지는 생물학적인 것이다.

https://www.pnas.org/doi/abs/10.1073/pnas.2317305121?doi=10.1073/pnas.2317305121


한국 사회는 폐쇄성이 강하고 ‘다른’ 사람을 인정하는 문화가 약하다. 게다가 ‘생물학적인’ 사회성이 강하다. 거의 ‘생물학적인’ 치열한 생존경쟁, ‘생물학적으로’ 피를 나눈 가족끼리만 ‘이기적 사랑’을 공유하는 풍조가 강하다. 여기에 소수자에 대한 보호는 취약하다. ‘장애인’, 성소수자, 편모슬하 아이에 대한 시선은 차갑다. 자신의 ‘피’ 즉 유전자가 없는 아이 그리고 사회가 용인하는 ‘법적인’ 결혼 이외의 아이는 수용되지 않아 해외로 ‘수출’되어 왔다. 물론 그 중에는 너무도 가난한 가족의 비극도 숨어있다. ‘아이의 행복’을 위하여 입양시킨다고 한다.


1980년 한국에서 태어나 덴마크로 입양된 마야 리 랑그바드는 시집『그 여자는 화가 난다-국가 간 입양에 관한 고백』을 2022년 한국어로 출간했다. 그녀는 이 시집에서 자신이 수출품이고, 수입품이어서 화가 난다며 끊임없이 분노하고 있다. 한국전쟁 이후 해외로 입양된 우리나라 아이는 20만 명이 넘는다(2021). 2013년 우리나라 정부가 자국 내 입양을 우선시하도록 한「헤이그 입양 협약」에 서명한 이후론 연 300명 이하로 급감했다. 하지만 여전히 국내 입양은 어려운 일이다.


2021년 다큐멘터리「포겟 미 낫-엄마에게 쓰는 편지」(선희 엥겔스토프 감독)가 개봉되었다. 감독은 1982년 부산에서 태어난 덴마크로 입양된 사람이다. 이 다큐는 ‘엄마가 어떤 환경에서 살았고, 왜 그런 결정을 했나’에 집중한다. 그가 만난 임신부는 아이를 키우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떼놓았다. 딸이 낳은 아이를 자신의 아이로 입적하는 부모도 있었다. 우리 사회는 이러한 사실을 숨기려고만 한다. 그는 촬영 중 아이를 떠나보낸 여성을 껴안고 위로하는 장면은 비극적 서사이다. 한국 사회의 인식이 변해서 미혼모·미혼부가 수용되고 지원을 받고, 아이가 부모와 함께 살 권리가 보장되길 바랐다.


우리 사회가 ‘인류’라는 보편적인 사회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아이 수출이라는 비극은 없어지지 않는다. ‘생물학적인’ ‘우리’를 ‘사랑’이라고 말하는 이상 어려운 일이다. 단 한 번만이라도 당신이 프랑스로, 덴마크로 입양되었다고 했을 때 어떤 삶이 존재할 것인지를 돌아봐야 한다.


우리는 ‘인간적’이라는 말을 많이 쓴다. 이 말은 우리는 동물과는 다르다는 것이 함축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동물과는 다르게 본능을 거슬러서 자신의 유전자가 섞이지 않는 아이도 입양해서 키운다면 ‘인간적’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서구사회는 인간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우리 사회는 자기 자식 외에는 관심이 적다는 점에서 보면 매우 ‘동물적’이다. 물론 입양 인들의 비극을 숨기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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