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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과 인간은 ‘합성’ 생명이다


생명의 진화과정은 생존경쟁의 역사였을 뿐만 아니라 상호협력의 역사이다. 비즈니스와 마찬가지로 진화에서도 승자가 독식하는 것이 아니다. 특정 개체의 승리는 다른 생명체의 협력을 필요로 한다.  공생은 생명체들이 서로 의존하여 사는 것을 말한다. 인간도 장내미생물과 공생하고 있다. 장내미생물은 인간의 육체적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건강 더 나아가 의식에까지 영향을 준다. 지금도 공생은 생명계에서 흔하게 볼 수 있고 진화과정에서도 너무나도 흔한 일이었다. 생물의 공생은 심지어는 한 몸으로 합체하는 일도 일어났다. 공생관계(mutualism)를 이루며 독립적으로 살던 두 종이 합쳐져서 하나가 된 것이다. 


1960년대 린 마굴리스(Lynn Margulis, 1938~2011)는 진핵생물이 공생하던 두 종이 합쳐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진핵생물이 갖고 있는 미토콘드리아나 엽록체(식물) 같은 세포소기관은 원래는 독립적으로 살던 세균들이었다는 주장이다. 원핵생물이 미토콘드리아나 엽록체와 공생(symbiosis)하다가 하나가 된 것이다. 린 마굴리스(Lynn Margulis, 1938~2011)의 주장이 나온 것은 1967년이었다. 세포 내 소기관인 미토콘드리아가 오래전에는 독립적인 세균이었다가 다른 미생물과의 공생관계를 통해 현재 존재하는 다세포생물의 근원이 되는 진핵세포로 진화했다는 가설을 펼쳤다. 이는 세포내 공생설(endo-symbiosis)이라고 불리며 학계의 정설이다. 


당시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어서 10개가 넘는 학술저널로부터 게재 거절 결정을 받았다. 린 마굴리스는 서모플라스마(Thermoplasma)라는 세균과 나선상 세균이 합쳐져서 원시 진핵세포로 진화되었고 다시 산소호흡을 하는 박테리아를 흡수하여 미토콘드리아로 진화되었다고 주장했다. 식물의 엽록체도 광합성을 하는 시아노박테리아를 흡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에는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비난받았다.


그러나 1970년대 분자진화(molecular evolution) 연구로 점차 린 마굴리스의 주장은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분자진화는 DNA의 염기서열이나 단백질의 아미노산서열의 분석을 통해 생명의 진화를 규명하는 학문이다. 진화상으로 서로 연관된 종은 염기서열이나 아미노산서열이 비슷할 것이기 때문이다. 미토콘드리아와 엽록체는 염기서열이 일부 박테리아와 꽤 비슷하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마굴리스의 주장을 이어서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의 생물학자 토마스 캐벌리어-스미스(Thomas Cavalier-Smith)는 원시 진핵생물(archezoa)가설을 내놓았다. 고 세균의 세포질 안에서 막이 만들어지고 염색체를 감싸서 세포핵의 기원이 되었고, 이 원시 진핵생물이 먹은 세균이 진화하여 미토콘드리아로 남았다는 주장이다. 그렇지만 모든 원시 진핵생물이 세균을 먹고 공생관계를 이루지는 않았을 것이고 살아남았다면 지구상에 존재해야 한다는 추론이 나온다. 실제로 미토콘드리아가 없는 진핵생물이 발견되었고 캐벌리어-스미스의 가설은 더욱 지지를 받게 되었다. 


그런데 1990년대 중반 미토콘드리아가 없는 진핵생물의 ‘게놈’에 세균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는 유전자가 발견되었다. 이들이 세균을 먹지도 않았다면 이런 유전자를 가질 수는 없다. 이를 발견한 과학자들은 이 진핵생물이 원래 미토콘드리아를 갖고 있었지만 미토콘드리아가 퇴화되었다고 주장했다. 이들이 기생생활을 하면서 에너지를 숙주로부터 흡수하기 때문에 에너지를 만드는 미토콘드리아가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미토콘드리아만이 아니다. 2010년 인간의 유전물질 가운데 약 8%가 바이러스에서 나왔다는 연구가 나왔다. 인간의 DNA에 바이러스가 삽입했던 유전 정보가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이렇게 인간의 DNA에 남은 바이러스 유전자를 ‘인간 내인성 레트로바이러스(HERV)’라고 한다. 레트로바이러스는 대부분 휴면 상태로 남아있어 ‘화석 바이러스’로도 불린다.


일부 레트로바이러스 유전자의 발현 정도가 정신 질환과 연관성을 보인다. 2017년 바이러스 유전자가 다발성 경화증과 같은 신경학적 질환과 관련 있다는 연구가 나왔다. 바이러스 유전자가 정신 질환의 지표일 가능성이 높지만, 확실한 것은 밝혀지지 않았다. 2024년에는 레트로바이러스가 우울증이나 조현병, 양극성 장애와 같은 정신 질환을 가져온 것으로 추정한 연구가 나왔다. 분석 결과 레트로바이러스 1238개 중 26개가 정신 질환, 4개는 조현병과 양극성 장애, 우울증과 관련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정신 질환이 있었는지 확인하지 않아 직접적인 증거는 아니다. 인간의 유전자 변이가 정신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적어, 연관 정도도 몇 퍼센트 범위일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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