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혼란스러운 율법 언급
율법이라는 말이「토라」를 가리키는 한, 바울은 당연하게 신의 계명으로 받아들였다. 바울은 율법을「모세오경」을 뜻하는 토라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했다면, 그것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인간이 지켜 나가야 할 규범이다. 그러나 율법이란 단어는 바울신학을 연구하는 유대인 학자나 그리스도교 신학자 사이에서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교 신학자 자신들 사이에서도 그 어떠한 문제보다도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문제가 그토록 복잡한 모습을 띠게 된 것은 헬라어로 쓰인 바울의 서신에서 율법을 의미하는 말로 ‘노모스’라는 헬라어 단어를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이 노모스라는 단어는 히브리어『성경』을 최초로 헬라어로 번역한 70인 역『구약성서』 이래로 줄곧 토라의 번역어로 사용되어 왔다. 하지만 바울이 자신의 서신 중 사용한 노모스라는 단어가 넓은 의미에서 사용되었는지, 아니면 좁은 의미에서 사용되었는지를 구분할 길이 없다. 이 노모스라는 헬라어로 번역된 토라는 넓은 의미에서는「모세오경」전체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지만, 좁은 의미에서는 비록 경전으로 성문화되지는 않았을지라도「모세오경」을 근거로 하면서 유대인의 삶 전체를 규율하다시피 했던 종교법(할라카)을 가리키기도 한다.
만일 바울이「모세오경」을 율법으로 사용했다면 율법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 민족의 규범으로 지칭했다면 부정할 수도 있고 유대인 이외의 민족이 그것을 따르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율법을 ‘노모스’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이것을 구분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 의미를 분명하게 알 수가 없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그 맥락에 따라 생각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