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마다 문장을 이루는 정보의 순서가 다르다. 이탈리아어는 주어가 먼저 나오고 이어서 주어에 대한 부가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수식어가 따라오는데 이를 ‘우분지 언어(right-branching language)’라고 부른다. 우리나라 말은 ‘좌분지 언어(left-branching language)’로 반대이며 ‘버스 정류장에 앉아 있는 그 남자’ 같이 앞에 수식어가 나온다. 좌분지 언어에서 앞에 나온 수식어의 의미는 주어가 등장할 때까지 명확하지 않으므로 문장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문장 첫 부분의 수식어를 주어가 나올 때까지 기억 회로에 저장해 둬야 한다. 인간은 언어로 전달되는 정보의 앞부분이나 뒷부분에 있는 내용을 중반부에 있는 내용보다 더 잘 기억한다고 한다. 연구결과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 정보를 처리하고 저장하며 추출하는 능력에 영향을 미친다. 수식어가 먼저 나오는 우리나라 말의 사용자가 수식어가 주어 뒤에 나오는 언어 사용자보다 초기 정보 기억력이 더 높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우리가 정보를 처리하고, 저장하고, 끄집어내는 데까지 영향을 미친다. 문장에서 단어를 나열하는 순서가 기억과 같은 기본적인 인지 처리 과정에 연관돼 있다. 이에 대하여 한 교수님이 의견을 주었다. “좌분지 언어의 단점은 주어와 술어의 거리가 너무 멀어 주어와 술어의 관계를 화자가 잊어버려 주어와 술어가 일치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우분지 언어는 선행사에 대해 뒤에서 한정하므로 명확합니다. 한국어는 최종의 술어에 모든 게 걸려 있어 기억력이 좋아질지는 모르지만 많은 종속절을 가진 대부분의 문장을 해득하기 어렵습니다!”(이병운교수, 부산대, 2019.4.2.28. 페이스북 글에 대한 댓글). 공감이 된다. 우리나라 말은 애매하고 중의적인 점이 많다.
그럼 언어가 없으면 생각을 할 수 없을까? 생각을 할 때 언어가 반드시 필요할까? 인간의 언어와 사고의 관련성은 아직까지 많은 것이 밝혀지지 않은 연구 주제다. 2010년 이전 연구에서는 추론하거나 수학문제를 푸는 사고 활동을 할 때 말을 할 때와 같은 부분의 뇌가 활성화 된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잘못된 판단에 근거했다는 사실이 2024년 밝혀졌다. 사고를 할 때 반드시 언어가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사고활동을 할 때는 훨씬 광범위한 뇌의 영역이 활동하고 뇌의 언어 회로는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다. 교통사고로 뇌를 다쳐 단어를 잊거나 대화하기 어려운 실어증을 겪은 사람도 수학문제를 풀거나 체스 게임은 할 수 있다. 언어와 사고가 다른 뇌 영역으로 나누어져 있음을 보여준다. 언어는 정보의 전달을 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사고에 언어가 반드시 필요하지 않을지는 몰라도 언어가 도움을 줄 수는 있고, 특히 복잡한 사고라면 더욱 그렇다는 반론도 있다.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86-024-07522-w
뇌 영역이 달라 사고활동과 언어가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언어를 모르고 사고활동을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 든다. 어떤 연결점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향후 추가 연구를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