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이 지구상에 출현한 후 수십억 년이 지난 지금 천만 종이 넘는 생물이 살고 있다. 이러한 진화과정은 길고 복잡하며 ‘우연’이 누적된 결과이다. 진화의 산물인 생명뿐만 아니라 인간도 완전할 수가 없다. 진화는 ‘완벽한’ 설계도에 따라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인간은 뇌와 지능이 좋아지면서 대가를 치르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치매이다.
나이가 들면 점점 최근에 일어난 사건을 기억하지 못한다. 이런 기억을 일화기억(episodic memory)이라고 하는데 뇌의 해마 쇠퇴와 관련된다. 수명이 2년 정도인 갑오징어(Sepia officinalis)는 나이가 들어도 치매가 나타나지 않는다. 물론 노화 현상을 보이지만 인간과는 달리 기억력은 쇠퇴하지 않는다. 갑오징어는 해마가 없고 뇌 구조가 다르다. 뇌의 수직엽 부위가 기억 및 학습을 담당하는데, 죽기 2~3일 전까지도 쇠퇴하지 않다. 사실 치매가 오고 기억력이 떨어질 만큼 살지 못한다. 인간은 뇌가 커지고 해마가 발달하면서 지적인 능력이 좋아졌지만 너무 오래 살면서 다양한 고통을 겪는다.
과거에는 영장류도 노화되면 뇌가 줄어든다는 것이 통설이었다. 하지만 침팬지와 인간의 뇌를 분석한 결과 인간만이 나이가 들수록 뇌 크기가 작아진다는 것이 밝혀졌다. 인간의 뇌는 나이가 들수록 점점 가벼워져, 80세 가량이 되면 원래 무게보다 평균 15% 정도가 줄어든다. 뇌 무게가 줄어드는 것은 뉴런과 뉴런 사이의 연결 부위가 쇠퇴하는 현상과 관련 있다. 특히 사고기능을 하는 대뇌피질이 더 크기가 줄어든다. 이렇게 노화와 함께 작아지는 뇌는 치매 같은 노화 관련 질병의 원인이 되고 있다.
인간의 뇌가 진화하면서 가장 많이 확장된 영역인 전전두엽 피질은 노화에 특히 취약하다. 뇌의 회백질은 신경세포의 세포체가 모여 있는 곳으로 노화가 진행되면서 줄어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간은 전전두엽 피질을 포함한 전두엽 피질에서 회백질이 가장 많이 감소하지만, 침팬지는 습관 형성, 보상 행동에 관여하는 영역인 선조체에서 회백질 감소량이 더 크다. 전전두엽 피질 손상은 알츠하이머를 포함한 다양한 치매 질환과 관련 있다. 인간 대뇌 피질이 커지고 지능이 좋아졌지만 노화에 따른 ‘대가’를 치른다.
https://www.science.org/doi/10.1126/sciadv.ado2733
신경세포가 손상되어 뇌 기능이 떨어지는 알츠하이머는 대표적인 치매의 원인이다. 알츠하이머는 사람만 걸린다. 인간과 같은 영장류인 침팬지는 알츠하이머에 걸리지 않는다. 알츠하이머병은 인간의 지능이 좋아지면서 나타난 후유증이다. 인간의 유전자를 분석하여 발견한 여섯 개의 지능관련 유전자가 알츠하이머에 관여하는 유전자와 겹친다. 아이러니하게도 지능의 진화를 가져온 유전인자들이 뇌 질환을 일으키는 것인데 지능이 좋아짐에 따라 ‘뇌’가 과부하로 시달리면서 알츠하이머가 나타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인간 고유의 뇌 발달 촉진영역(enhancer)이 성장기엔 뇌를 발달시키지만 성숙기 이후엔 노인성 질환에 관여하는 것이다. 이 영역에 있는 DNA 염기서열 부위의 인근에 알츠하이머병, 파킨슨병, 당뇨병 같은 주요 노화 질환의 관련 유전자들도 많이 분포한다.
자칭 ‘만물의 영장’으로서 우리의 지적능력으로 나 같은 사람이 이런 글을 쓸 수 있다. 하지만 그만큼 대가를 치를 수 있다. 물론 지적능력으로 알아낸 예방법과 치료법을 활용하여 피할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며 겸허하게 살아야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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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 인간 그리고 세계를 이해하고
무지와 오류 그리고 과오를 극복하고
세상의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사랑하고 읽고 배우고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