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에 대한 열품은 청소년뿐만 아니라 아이들까지 가세하고 있다. 특히 20대 젊은 층이 크게 늘어났다. 1000만 원대 고가 명품도 20~30대 구매율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 10대들도 눈에 띤다. 명품을 사기 위해 전날부터 노숙도 한다. 사회 초년생이나 직장인도 일상생활에 드는 비용을 줄이고 사치품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 소비심리도 나타나고 있다.
더 나아가 2030세대는 우리나라 명품시장의 주 소비자이다. 2020년 3대 주요 백화점 전체 명품 매출의 절반가량이 2030세대가 차지했다. 2021년 1분기 온라인 명품 플랫폼에서 MZ세대가 결제한 비중이 73%에 달했다. MZ세대로 통하는 2030 소비자들은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면 가격에 상관없이 아낌없이 투자한다. 이를 ‘플렉스 문화’(flex culture)라고 부르는데 사치와는 약간 다르다. 플렉스(flex)라는 단어는 준비 운동으로 몸을 푼다는 의미이다. 이 단어는 ‘과시하다’(flex your muscles)라는 숙어로도 쓰인다. 젊은 세대는 집을 사는 대신 그 돈을 명품 같은 것에 사용한다. 다른 모든 소비를 악착같이 줄여서라도 명품 제품을 단 하나라도 소지하려는 성향을 탓하기만 할 수가 없다. 기회가 적고 미래가 불투명하고 자신의 집을 살 가능성이 없고 불평등이 확대되는 우리 사회에서 이들이 택한 삶이다.
유교나 불교가 널리 보급된 우리나라 같은 아시아 사회는 겉으로는 절제를 미덕으로 강조한다. 이런 가치를 받아들이면 사치품 소비가 줄어들어야 한다. 하지만 아시아는 세계에서 대표적인 개인용 사치품 소비시장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아시아는 집단주의가 강하다. 집단주의는 유인원에서 보이는 서열의식이 강하게 나타난다. 그것이 명품 과열로 나타난다. 아시아는 겉으로는 검소함을 강조하면서 명품에 집착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 실제로는 이미 유교나 불교의 가치는 없어진지 오래다. 유교의 근간 중 하나는 선비정신이다. 하지만 그것은 멸종되었다. 우리 사회에서 선비정신을 마하면 뒤에서 웃을 것이다. 유교나 불교의 근본정신은 사장되고 서열이라는 본능적인 의식만 강화된 것이다.
https://link.springer.com/article/10.1057/s41267-023-00661-8
소스타인 베블런(Thorstein Veblen, 1857~1929)은 소유와 지위의 관계를 연구한 미국 사회학자로 과시적 소비(conspicuous consumption) 개념을 제안했다. 과시적 소비를 몰입하는 부유하고 게으른 상층계급을 유한계급(leisure class)이라고 맹렬히 비판했다. 극단적인 베블런 효과(Veblen effect. 가격이 오르는데도 일부 계층의 과시욕이나 허영심 등으로 인해 수요가 줄어들지 않는 현상)이다. 성공을 과시하기 위하여 최고가 브랜드의 양복, 최고가 브랜드의 ‘금딱지’ 시계, 최고가 브랜드의 핸드백 등등. 그래서 전 세계의 최고급 브랜드들이 한국 시장에 앞 다퉈 들어오고 한국 시장 선점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한국 사람은 물건은 비쌀수록 잘 사는 미스터리 민족’이란 조롱 섞인 말도 들었다.
그것은 점차 새로운 방식의 서열 만들기로 진화되었다. 엘리자베스 커리드핼킷(Elizabeth Currid-Halkett)은 자신의 저서『야망계급론』에서 유한계급에서 더 나아간 야망계급(Aspirational Class)을 말한다. 과시적 소비가 일반화되자, 사회적 위치를 드러내기 위해 새로운 상징을 찾아내고, 아는 사람만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비가시적인 것을 찾는다. 야망계급은 소득수준이 아니라 지식과 문화로 지위를 표시 한다. 인문학열풍은 의미 있는 지식을 추구하는 사람의 시도였지만 그것은 이제 하나의 과시로도 전락되었다. 인문학은 없고 그야말로 ‘폼’만 잡는 강좌가 넘쳐난다. 과시적 소비에 여전히 지출하지만, 비 과시적 소비를 점점 늘려가고 있다. 이들은 도시의 일정 구역에 모여 살면서 다양한 구별 짓기 ‘소비’를 펼친다. 자신들의 것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 같은 문화를 공유하는 사람들과 함께 산다. 더 은밀하고 차별화시키려는 이들에게 진화과정에서 유래된 유인원의 ‘욕망’이 투영돼 있다. 인간 또는 인간적이란 무엇인가? 어려운 얘기이다. 나는 생물학적 유전자와 욕구를 극복하려는 태도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