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로 보는 인간의 고뇌 자아성찰 세계탐구


“진화는 인류로 하여금 삼라만상에 대하여 의문을 품도록 유전자 속에 프로그램을 잘 짜놓았다.” 칼 세이건이 한 말이다. 그렇다. 우리에게는 의문을 제기하는 호기심, 우주를 알고 싶은 욕구, 자신의 기원을 궁금해 하는 유전자가 심어져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우리 인간은 별(초신성)의 폭발로 만들어진 먼지로 구성된 존재이다. 초신성의 폭발로 인간을 구성하는 다양한 원소들이 만들어졌다. 그것이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다. 그런데 먼지로 구성된 우리 인간은 우리를 만든 건 초신성의 폭발로부터 임을 알아냈다. 기묘한 일이다. 인간은 스스로 자신의 존재 이유를 곰곰이 생각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알려고 한다. 과학을 하는 생물은 지구상에는 인간밖에 없다. 어쩌면 인간은 이 우주에서 유일한 ‘과학자’일 지도 모른다. 이렇게 지적인 인간의 탄생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과학’ 이론은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론이다. 생명에 대해 현대과학이 내놓을 수 있는 가장 설득력 있는 근거가 진화론이기 때문이다. 리처드 도킨스도 같은 말을 했다. “복잡한 생명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이론은 누적적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이다(The theory of evolution by cumulative natural selection is the only theory we know of that is in principle capable of explaining the existence of organized complexity.).”


인간이 자신을 성찰하고 세계를 탐구하는 것을 진화론으로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생명은 생존과 번식을 위하여 진화했기 때문이다. 자기성찰과 우주탐구는 생존과 번식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설명의 출발점은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간접적인’ 관련은 있다는 점이다. 인간은 생존과 번식을 위한 일차적인 욕구충족에 도움이 되지 않아도 주변 환경과 그 환경변화에도 관심을 가진다. 당장은 아니지만 생존과 자기 복제에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호기심’의 탄생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호기심을 보인다. 1960년대 연구를 보면 생후 2개월~6개월 유아는 반복되는 패턴에 점차 흥미를 잃는다. 유아 때부터 새로운 것에 흥미를 갖는다. 1980년대 연구에 의하면 8개월~12개월 유아는 한 번 장난감에 익숙해지면 흥미를 잃고 새로운 것을 선호한다. 이렇게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은 계속되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유아뿐 아니라 인간과 인간 이외의 동물에서도 나타나며, 새로운 것을 탐구하는 동기를 부여한다. 인간뿐 아니라 까마귀도 호기심이 있다. 까마귀가 도구를 사용해 장치 속에서 먹이를 꺼낼 수 있는 것도 탐구심과 호기심 때문이다. 호기심은 단일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지는 않지만 ‘DRD4’로 불리는 도파민 수용체(dopamine receptor)가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경향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2021년에는 인간의 창의성과 관련된 유전자를 처음 발견했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었다.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의 유전자를 비교 분석한 결과 호모 사피엔스에만 존재하는 창의력 관련된 유전자 267개가 나왔다.

https://www.nature.com/articles/s41380-021-01097-y#citeas


이러한 유전자로 인류는 예술과 과학을 발전시키고 사회성으로 문명을 만들어냈다. 호모 사피엔스는 창의력 관련 유전자로 수십만 년 동안 일어난 혹독하고 변화무쌍했던 환경에 잘 적응하여 살아남았다. 이렇게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강한 생물은 생존능력이 뛰어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개체가 자연선택이 되어 살아남았을 가능성이 크다.


신생아도 이미 호기심을 갖고 세계를 탐구하려는 본능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인간이 생존과 복제와 관련 없는 ‘쓸데없는’ 주제를 연구하고 ‘쾌감’을 느끼는 것은 진화의 과정을 통해 인간의 뇌에 반영되어 있는 것 같다. 고대 그리스 아르키메데스는 왕으로부터 왕관의 진품여부를 알아내라는 과제를 받고 마침내 해결방법을 알아내고 ‘유레카’라고 외치며 벌거벗은 채로 목욕탕 밖으로 뛰쳐나갔다. 2020년 연구에 의하면 창의적인 생각이 떠올라 ‘아하’하는 순간에 뇌의 쾌감중추영역이 폭발적으로 활동한다. 창의적이거나 통찰력이 있는 성취를 이룬 순간에는 뇌파 중 감마파가 증가했으며 대뇌 피질의 보상영역과 쾌감중추 영역이 폭발적인 활동을 보였다. 이 부위는 맛있는 음식이나 중독성 물질 또는 오르가즘 경험을 했을 때 활성화된다. 그래서 과학은 본질적으로 재미있는 것이다. 인류가 자연에 대한 이해에서 기쁨을 얻을 수 있도록 진화해 왔기 때문이다. 자연을 좀 더 잘 이해한 자들이 생존에 그만큼 더 유리하다. 이것이 인간이 우주와 생명을 탐구하고 학문을 하게 된 진화론적인 기원이다.


인간의 지능 그리고 탐구란 호기심에서 시작된 것이다. ‘호모 쿠아에렌스’(Homo Quaerens)는 ‘탐구하는 인간’이란 뜻으로 찰스 파스테르나크(Charles Pasternak)가 쓴『호모 쿠아에렌스』(2005년 번역출간)라는 책의 제목이다. 저자는 ‘탐구’를 인간만의 특별한 능력으로 본다. 인간의 탐구심으로 문명이 출현했고 놀라운 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것도 마찬가지이다. 윌리엄 제임스는 호기심을 지적성장으로 가는 충동(the impulse towards better cognition)이라고 정의하였다. 알게 된 사실을 기초로 새로운 호기심으로 이어가면서 지식의 축적을 가져왔다. 즉 뇌가 무언가에 호기심을 가지고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고 답을 찾는 것이 지적인 능력이다. 여기에 인간 지식탐구와 교육의 비밀이 있다. 우리는 중학교 수학문제를 풀고 나면 고등학교 수학문제도 스스로 풀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학자들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지식을 찾아낸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뇌가 스스로 유연하게 생각하고 답을 내리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하는 것, 우리들이 흔히 말하는 자기주도 학습이다. 하지만 자기주도 학습을 말하면서 자기주도 학습을 가르치는 학원을 보내는 부모주도 학습은 아이들의 학습의욕과 호기심, 의문을 제기하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저해하는 것임을 얼마나 아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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