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이 정한 청소년의 놀 권리
우리나라 아이들은 운동할 시간도 잠 잘 시간도 친구들과 놀 시간도 없다. 학원과 사교육으로 틈이 없다. 오직 좋은 대학에 가서 좋은 직장을 구하고 성공하는 것만을 요구하는 사회이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성공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문제는 그 방법이 그러한 목적을 달성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니 그러한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점이다. 간단하게 말해 반지성적, 반과학적이다.
유엔아동권리협약(Convention on the Rights of the Child, CRC)은 청소년의 놀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그것은 그냥 아이들을 행복하게 하자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인 근거로 제시된 권리이다. 이 협약은 18세 미만 아동과 청소년의 권리를 담은 국제적인 약속으로 1989년 11월 20일 유엔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되었다. 누구나 마땅히 누려야 할 생존, 보호, 발달, 참여의 권리가 담겨 있다. 발달의 권리(Right to Development)에는 교육받을 권리뿐만 아니라 여가와 문화생활을 할 권리가 있다. 이러한 권리는 인간으로서 성장기에 누려야할 아주 기본적인 권리이다. 특히 제31조에는 “어린이와 청소년은 충분히 쉬고 충분히 놀아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 2019년 우리나라의 유엔아동권리협약 이행 심의에서 “한국의 공교육의 목표는 오직 명문대 입학인 것으로 보인다. 아동의 잠재력을 십분 실현하고 발달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만이 목표인 것 같다. 이는 아동권리협약의 내용과 거리가 멀다.”라는 지적을 받았다. 운동도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제시한 권장 운동 시간은 5~17세 아동과 청소년의 경우 하루 최소 60분 이상이다.
2019년 세계보건기구(WHO)가 전 세계 146개국 11~17세 남녀 청소년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한국 청소년의 신체활동 수준은 세계보건기구의 권고 수준에 훨씬 못 미치고 여자 청소년들은 ‘꼴찌’ 수준이다. 학교공부뿐만 아니라 규칙적인 운동과 과외활동이 필요성이 과학적으로 널리 주장되지만 여전히 우리나라는 비과학적인 교육이 계속되고 있다.
https://www.thelancet.com/journals/lanchi/article/PIIS2352-4642(19)30323-2/fulltext
릴케, 아인슈타인, 뉴턴 놀다가 일약스타로
뇌가 잘 기능하려면 한가하게 쉬는 시간이 필요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뇌는 계속 뭔가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입력된 정보를 정리하고 불필요한 것들을 삭제하고 있는 것이다. 쓸데없는 것들을 삭제하면 저장 공간이 늘어나고 뇌 기능이 좋아진다. 뇌는 한가하게 있을 때 특정 부위의 활동이 비약적으로 는다. 내측 전전두엽피질, 전방대상피질, 쐐기앞소엽, 정수리 옆 해마(두정엽피질) 등이다. 이름도 어려운 이 부위들은 각각 정보의 활용, 창의적 사고, 자아 성찰, 정체성과 관련된 곳이다. 아무런 정보와 자극 없이 ‘멍하니’ 있다가 돌연 좋은 생각이 번쩍 떠오르는 것은 이들이 유기적으로 활발하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한가하게 지낼 수밖에 없게 된 요새야말로 가장 심오한 활동을 펼친 나날들”이라고 했던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 원격작용에 몰두하다가 머리를 식힐 겸 정원에서 잠시 명상에 잠겼을 때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 등의 사례가 그것이다. 아인슈타인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스스로 인정할 만큼 수학에 약했다. 동료 연구자들이 수학 계산을 도와줘야 할 정도였다. 아인슈타인의 위대함은 과거 지식에서 벗어나 창의적인 상상력으로 새로운 세계관을 보여준 데 있다. 아인슈타인은 하루에 10시간 이상을 잤고 낮잠도 즐겼다. 아인슈타인은 프린스턴 대학에서 약 2.4 km를 왕복하면서 산책을 했다. 휴식과 산책은 문제 해결, 통찰력과 창의력에 도움이 된다. 특히 인간의 뇌가 뭔가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90분에서 최대 120분이라고 한다. 인간의 뇌는 활발하게 활동하는 90분과 뇌 활동이 저하되는 20분으로 구성된 휴식활동 사이클(Basic Rest Activity Cycle, BRAC)이 늘 작동하는 것이다. 생체리듬에 따라 자고 먹어야 하듯이 이 사이클을 따라 활동해야 뇌 활동이 최선이 된다.
유대인의 생활은 근면과 성실이 아니라 휴식이 핵심이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일주일을 일하면 무조건 쉬는 날이다. 6년을 일하면 7년째는 안식년으로 쉰다. 7년씩 7번을 지나고 50년째 되는 희년(year of jubilee)에는 새로운 시작을 출발한다.『탈무드』에는 “영혼까지도 휴식이 필요하다. 그래서 잠을 자는 것이다.”라는 말이 나온다. 유대인의 질문과 토론식 교육 그리고 휴식에 관한 지혜는 유대인 놀라운 학문업적을 낳았다. 한 때 하버드 대학 입학생의 30%가 유대인이었을 정도이다. 잠을 줄여가며 토론 없는 주입식 교육과 입시교육 취업교육에만 집중하는 우리와는 많이 다르다.
공부계획이 아니라 쉴 계획을 짜자
10세 이전에 규칙적으로 운동한 아이들이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중학교 진학 후 집중력이 더 좋고 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ADHD) 발생 확률도 낮다. 아동과 청소년이 규칙적으로 신체활동을 하면 정서조절 능력이 좋아지고, 학업성취도도 향상된다. 2000~2002년 영국 아이 4천여 명의 장기 추적 자료를 활용한 연구결과이다. 규칙적으로 신체활동을 하는 7세 아동은 자기조절 능력과 초등학교 입학 후 학업성적이 더 우수했다. 규칙적으로 체육활동을 한 11세나 14세 청소년도 자기조절 능력이 우수하고 학업성취도도 높았다.
https://journals.plos.org/plosone/article?id=10.1371/journal.pone.0250984
그래서 쉬거나 낮잠을 자거나 산책이나 운동은 적극적으로 하여야 한다. 다시 말해 공부나 일을 하고 남는 시간에 하는 것이 아니라 놀고 운동하고 잘 시간을 먼저 짜야 한다. 최상급 학생들은 할 때는 열심히 하고 놀 때는 작정하고 푹 쉰다. 평범한 학생들은 집중해서 열심히 하지도 않고 쉬는 시간에도 제대로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책을 피기도 한다. 뇌에게 가장 좋은 휴식은 산책이다. 산책을 하면 뇌가 휴식을 취하고 몸도 건강해지고 직관과 창의성도 살아나는 등 일거양득, ‘꿩 먹고 알 먹고’이다.
2014년 스탠퍼드 대학에서 발표한 논문의 제목은 ‘당신의 아이디어에 다리를 달아라(Give your ideas some legs.).’이다. 6분 동안 외부에서 걸은 집단, 6분 동안 실내에서 걸은 집단, 책상에 앉아 있기만 집단을 비교한 연구이다. 이들에게 창의성과 관련된 과제를 주었는데 책상에 앉아 있던 집단에 비해 외부 산책 집단은 60%, 실내 걷기 집단은 40%나 더 높은 창의성을 발휘했다. 단 몇 분 동안의 행동차이가 이런 차이를 유발하였다.
새로운 지식이나 기술을 배워 형성된 기억을 오래 가지려면 장시간의 휴식이 필요하다는 게 정설이었다. 밤에 숙면하는 것도 그런 휴식에 해당한다. 그러나 배운 뒤의 짧은 휴식도 중요하다. 뇌는 방금 연습한 새로운 기술에 관한 기억을 짧은 휴식을 통해 강화하고 축적한다. 비록 기술과 관련된 연구이지만 학습에도 적용될 수 있다.
자신의 생체리듬을 고려하여 하루 중 가장 좋은 시간에 집중하여 한다. 오래 앉아있을수록 집중력이 떨어지며 피곤해지고 건강에도 안 좋다. 중간 중간 자신에 맞는 휴식시간을 만들어 시행한다. 명상, 산책, 잠깐의 잠, 누워있기 등 자기가 좋아하는 방법을 택한다. 핸드폰, 컴퓨터, 인터넷 등은 끈다. 기타의 시간에는 햇빛을 받으며 산책이나 운동 등을 한다. 수면시간은 가급적인 일찍 자도록 조정해나간다. 그래야만 7시간 이상 일정한 시간에 숙면할 수 있다. 낮에 햇빛을 많이 볼수록 밤에 숙면을 취할 수 있다. 창문이 있는 곳에서 활동하기만 해도 밤에 평균 47분 더 깊게 잠들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이는 빛이 생체 리듬을 관장하고 몸이 잠들고 깨어나게 하는 신호를 보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