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 전에 글자를 가르치면 불이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유럽의 많은 국가들은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문자 교육을 시키지 말라고 권장하며 심지어는 금지시킨다. 핀란드, 영국, 독일과 이스라엘은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7살 이전에는 문자 교육을 금지하고 있다. “귀댁의 자녀가 입학 전에 글자를 깨치면 교육과정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독일의 취학통지서 밑에 적혀 있는 경고 문구라고 한다(필자는 본적이 없다.). 그리고 만일 어떤 학부모가 이 경고를 어기면 학교의 담임선생으로부터 “왜 그렇게 부도덕한 일을 하셨습니까? 그 아이가 수업시간에 산만하고, 집중 안 하고, 인격형성에 장애가 생기면 당신이 책임질 겁니까?”라는 식의 힐책을 받는다고 한다. ‘인격형성에 장애’가 생긴다? 실제로 우리나라 9~17세 아동과 청소년의 삶의 만족도는 평균 6.57점(10만 만점)으로 OECD 27개국 중 가장 낮다.


우리나라는 우울증 유병률이 36.8%로 OECD 회원국 중 1위이다.

https://www.oecd.org/coronavirus/policy-responses/tackling-the-mental-health-impact-of-the-covid-19-crisis-an-integrated-whole-of-society-response-0ccafa0b/


자살율도 세계 1위이다.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의 아이가 ‘헬 조선’에서 살게 하고 싶지 않다고 결혼도 출산도 하지 않는다.


17세 이후 대학을 들어가서도 많은 대학생들이 후유증에 시달린다. “사교육에 치여 내가 누구인가 고민할 겨를도 없었다. 모두가 똑같은 앵무새로 키워지도록 강요받는 느낌이었다.” 1백 여명의 서울 소재 명문대에 다니는 2009~2015년 입학생들에 대한 조사에서 학생 스스로 학원 수강 여부 등을 결정한 경우는 15.7%에 그쳤고, 나머지는 모두 부모의 계획과 주도 아래 사교육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부모가 주도하는 사교육을 받은 학생들의 상당수가 부모를 원망하고 사교육 경험을 떠올리기도 싫은 상처로 여기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은 언제나 너무 지겨웠고 화가 났으며 내신, 수능, 토플, 논술, 제2외국어 등을 준비하던 대입 기간은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고 했다. 2019년에는 정말 비극적인 기사가 나왔다. 의대 인턴을 마친 아들이 엄마한테 전화를 해서 ‘당신의 아들로 산 세월은 지옥이었다. 이제 당신하고 인연을 더 이상 이어나가고 싶지 않다. 더 이상 나를 찾지 말아 달라.’라고 말하고 사라졌다는 기사이다.


영유아기 때 사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불안 및 우울, 주의집중 문제, 신체 증상 등의 문제행동 점수가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 비해 1.5배가량 높게 나타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한 마음에 부모들은 아이를 사교육과 학원으로 보낸다. 주변 아이들도 다 학원에 다니고 영리 교육업체들이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다. ‘만 3세 무렵에 뇌의 발달이 대부분 완성된다.’ ‘언어는 일찍 배울수록 인지 발달에 좋다.’ ‘영유아기를 어떻게 보내느냐가 평생을 결정한다.’ 등의 주장이 여기저기에 나돈다. 그러나 2007년 OECD는 뇌와 관련한 신화 8개를 소개하면서 그 첫 번째로 바로 “세살 무렵 뇌에서 중요한 거의 모든 것이 결정되기 때문에 낭비할 시간이 없다(There is no time to lose as everything important about the brain is decided by the age of three).”를 반박했다. 이것이 대표적인 ‘신화’로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만 3세까지가 뇌 발달에 결정적이라는 주장은 뇌의 시냅스에만 한정된다. 시냅스의 재배열 과정, 패턴형성, 네트워크 형성 등 더 중요한 과정은 전 생애에 걸쳐 발달한다. 뇌가 유아기에 80% 이상 발달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지만, 이 시기에 뇌를 자극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부모의 스킨십이며 그 다음은 충분한 수면이라고 한다.


왜 그럴까. 뇌 과학을 알아야 하는 이유이다. 뇌는 20년 동안 서서히 발달하는데, 시기별로 뇌의 발달부분과 각 부분이 기능하는 영역이 다르다. 따라서 각각의 시기에 걸맞은 교육을 하는 게 중요하다. 모든 것 중에서 뇌 발달의 단계와 조화롭지 않는 선행교육이 가장 나쁘다. 부모들은 남보다 일찍 하면 아이 뇌가 망가질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폴 맥린(Paul D. MacLean)에의하면 인간의 뇌는 진화 단계별로 가장 안쪽에 자리하는 생명 기능을 담당하는 뇌간, 그 바깥쪽에 감정기능을 하는 대뇌변연계, 가장 바깥쪽에는 이성과 사고 기능을 담당하는 대뇌피질로 구성되어 있다. 대뇌피질이 가장 늦게 형성되었다. 각각의 뇌기능들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연결되어 기능하기 때문에 1, 2층의 기초공사가 제대로 되어야 3층의 고차원적 기능도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인간은 이성의 동물이기 이전에 감정과 본능의 동물이며, 따라서 감정과 본능의 뇌가 제대로 발달해야만 고차원적인 이성의 뇌가 잘 발달할 수 있다.


주의를 집중하고 충동적인 행동을 억제하는 자기 절제 능력이 학습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지능이 성적을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절제 능력이 성적을 예측하는 지표가 된다는 것이다. 아이가 학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려면 학원을 보낼 것이 아니라 충동과 즉각적인 만족을 억제하는 능력, 집중하는 능력, 타인의 생각과 감정을 이해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3층 뇌의 회로는 1, 2층의 뇌 회로가 활짝 열려야 활발하게 기능하기 때문에, 감정과 본능을 충족시키며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재밌게 할 때 비로소 이성적인 공부도 잘할 수 있다. 무모한 입시경쟁에 장단 맞추는 사이에 부모들은 사랑하는 아이들을 죽음의 문턱으로 내몰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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