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뇌의 신경세포가 하는 기능으로 신경세포(neuron)의 활동으로 설명된다. 기억은 뇌에 있는 여러 신경세포나 뇌 부위가 만들어내는 신경회로에 보존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고 어떤 뇌 부위 자체가 기억 저장소는 아니다. 뇌는 방대한 세포로 구성되어 서로 연관되어 조절되기 때문이다. 기억의 종류에 따라 해마, 피질, 기저 핵, 소뇌, 편도 체 같은 뇌 부위에도 저장될 수 있다.
기억이 형성되고 회상될 때 뇌에서 어떤 물리적 현상이 일어나는지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세포 수준에서는 엔그램(engram)이라는 뉴런 집합체가 학습에 의해 활성화되면서 기억 형성과 회상이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5년 칼 다이서로스(Ksal Deisseroth)가 개발한 광유전학(optogenetics)은 빛과 유전자를 이용해 특정 세포를 조절하는 기술이다. 2012년 광유전학을 이용해 기억 정보가 특정 신경세포 무리에 저장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기억이 저장되어 있는 세포 무리는 ‘엔그램(engram) 세포’라고 명명되었다. 그리고 동물의 특정 기억을 인위적으로 조작하고, 나아가 기억상실증에 걸린 동물의 기억을 되살리는 데 성공하였다.
2018년 기억이 저장될 때 엔그램 세포뿐 아니라 그들을 서로 연결하는 시냅스 구조들도 증가한다는 것이 발견되었다. 기억 정보가 엔그램 세포 자체가 아니라 그 세포들 사이의 시냅스에 저장될 수 있다는 이론을 뒷받침했다. 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특정 시냅스만을 제거했더니 이미 저장되었던 운동 기억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여 시냅스가 엔그램의 단위가 될 수 있다는 강력한 증거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기억과 학습이 뇌의 신경세포에서만 일어난다는 믿음은 점차 깨지고 있다. 예를 들어 바이러스는 고등동물처럼 뇌와 신경세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이를 일으키며 적응하면서 살고 있다. 학습은 뇌와 신경계가 있는 동물만 가능하다고 보아왔다. 뇌는커녕 신경세포도 없는 바이러스가 적응 ‘학습’을 하는 것처럼 살아간다. 가장 단순한 형태의 학습은 습관화이다. 소음을 계속 들으면 점점 무감각해지는 ‘습관’이 생긴다. 갑자기 소음이 없어지면 그제야 알게 된다. 이처럼 자극에 반복적 또는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그에 대한 반응이 줄어드는 것을 습관화(habituation)라고 한다.
신경세포가 없는 단세포동물(섬모충. Stentor roeselii) 등에서 습관화 징후가 발견되면서 세포도 습관화 학습을 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제기돼 왔다. 단세포 생물이 학습한다는 것은 뇌나 뉴런과 유사한 기능을 하는 분자 네트워크가 있음을 의미한다. 2024년 단세포 생물이나 단일 세포도 습관화 행동을 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세포가 유전자 지시만 따르기보다 학습을 바탕으로 기본적인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생명은 처음부터 지적능력을 갖추고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또한 신경세포가 아닌 세포도 기억에 관여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분산된 반복훈련으로 학습하는 능력이 모든 세포의 기본적인 특성일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우리의 몸이 기억한다.’는 말은 과학적인 말이다. 집중·분산 효과(the massed-spaced effect)는 여러 시간(session)에 걸쳐 분산된 훈련(spaced training)을 하는 것이 집중훈련(massed training) 하는 것보다 더 강력한 기억을 생성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한 번에 집중적으로 공부할 때보다 분산된 간격으로 공부할 때 효과적으로 기억한다. 시험을 위한 벼락치기가 집중적인 공부로 쉽게 기억은 사라진다.
https://www.nature.com/articles/s41467-024-53922-x
우리 몸과 뇌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이 많다. 뇌 과학은 패러다임의 변화가 급격하게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