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인류 가운데 단 한 사람이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이는 그 사람이 자기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나머지 사람 전부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것만큼이나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806~1873)의『자유론』(1859)에 나오는 말이다. 밀은 개인이 자신의 삶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추구함으로써 얻어지는 ‘개별성’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핵심 요소이자 행복의 원천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그는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그 개별성이 간섭받지 않고 존중되는 것을 자유의 본질로 파악했다. ‘국민의 뜻’이라는 이름하에 다수에 의해 개인의 자유가 억압되는 ‘다수의 폭정’을 우려했다. 사회성과 개별성을 조화시킴으로써 개인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관용과 타협이 설 자리를 잃고, ‘정의’, ‘국민의 뜻’이라는 이름하에 생각·표현·학문의 자유를 억압하고 획일성을 강요하지는 않는지 스스로 경계할 것을 밀의 자유론은 촉구하고 있다(다수의 의견은 항상 옳은가, 동아일보, 2018.8.6. 신상목 전 외교관·일식집 ‘기리야마’ 대표).
반면 아시아는 주로 나이, 성, 직업 또는 사회적 역할에 따라 위계질서를 중시한다. 그리고 개인의 이익보다는 집단의 공동이익을 강조한다. 가족, 마을, 카스트, 길드 또는 직업집단의 이익이 그 예이다. 개인이 집단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것으로 간주된다. 집단에 따르는 사람은 보상받고 물질적이고 정신적인 보장을 받는다. 이를 어기는 행동은 문제아로 간주되었다. 서구에서 존경받는 개인주의는 반사회적이고 이기적인 것으로 보았다. 그러한 사람은 추방되거나 왕따를 당할 수밖에 없다. 아시아의 집단에 대한 강조는 경제를 지배했던 고도로 집약적인 농업시스템과 관련이 있다. 아시아 여자들의 종속적인 지위는 아마도 농업의 물리적 힘의 필요성 때문에 발생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그런 아시아적인 전통은 사라졌다. 2009년 자료이지만 우리나라 청소년은 사람들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역량은 세계 최하위 수준이다(2009년 국제교육협의회인 IEA가 세계의 중학교 2학년 학생 14만600여명을 설문한 ICCS 즉 국제 시민의식 교육연구 자료). 이에 의하면 36개국 청소년의 사회적 상호작용 역량 지표를 최근 계산한 결과, 한국이 0.31점(1점 만점)으로 35위로 거의 꼴찌이다. 이는 ‘관계지향성' ‘사회적 협력' ‘갈등관리' 3개 영역에서 평가한 것이다. 관계지향성은 지역사회ㆍ학내 단체의 참여 실적, 사회적 협력은 공동체와 외국인에 대한 견해, 갈등관리는 분쟁의 민주적 해결 절차 등을 묻는 설문이다. 문제는 ‘관계 지향성'과 '사회적 협력' 부문의 점수가 모두 36개국 중 최하위(0점)였다. 반면, 갈등의 민주적 해결 절차와 관련한 지식을 중시한 ‘갈등관리' 영역에서만은 덴마크(1점)에 이어 0.94점으로 가장 점수가 높았다. 한편, 한국 청소년은 정부를 신뢰한다고 밝힌 한국 청소년은 전체의 20%에 불과해 참여국의 평균치인 62%보다 3분의 1에 불과했다. 한국 아이들은 학교를 믿느냐는 질문에도 45%만 '그렇다'고 답해 ICCS 평균인 75%보다 훨씬 비율이 낮았다(연합뉴스, 2011.3.27.).
밀이 말한 개인의 자유와 주체성을 강조하는 개인주의는 이기주의로, 아시아적인 공동체의식은 파국으로 간 것이다.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들과의 관계를 강한 유대(strong ties)라고 하고 서로 잘 모르는 관계는 약한 유대(weak ties)라 한다. 약한 유대(weak ties)는 1973년 처음 사용된 용어이다. 우리 사회는 강한 유대는 점점 강해지고 약한 유대는 실종되었다. 우리는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하며 직원과 주문 외에는 좀처럼 이러저런 얘기를 하지 않는다. 자기 집 승강기에서 만난 이웃은 외면하거나 ‘안녕하세요!’ 정도로 인사하지 세상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다. ‘자기’ 집단 이기주의 문화도 한몫했다. 타집단 사람은 자신과 상관없는 남으로 인식하여 무관심하고 무례할 때가 많다. 나이와 성별, 지역과 이념으로 집단이 쪼개지는 혐오 분위기는 이를 더욱 악화시킨다.
서울 같이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익명성이 강하다. 좀처럼 모르는 사람이 대화하지 않는다. 마음 편할 수 있다. 하지만 사실 자신은 모르지만 우울한 사회이다. 실제로는 출퇴근 버스나 전차에서 낯모르는 사람과 대화를 한 사람은 행복감을 더 느낀다. 반면 서로 무관심하고 자기 만에 세계에 있는 사람은 우울하다. 외향성이나 내향성 같은 성격과도 관계없다. 서로 무관심하고 말을 건네는 것을 예의라고 생각하거나 싫어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약한 유대 관계가 따뜻할수록 그 사회는 행복하다는 것은 이미 연구로 밝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