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진화과정에서 양성생식이 나타났다. 수컷과 암컷, 남자와 여자가 유전자를 후손에 남기는 것이다. 양성생식은 두 개체의 유전자가 후손에게 이어져서 다양성을 증가시키며 생존능력을 제고시켰다. 다시 말해 남녀, 성 정체성은 진화과정에서 종의 생존능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진화하면서 나타난 것이다. 유성생식은 식물에서도 나타난다. 꽃식물은 ‘자가’ 수분을 피하기 위해 암술과 수술을 구조적으로 구분하거나 수컷 식물과 암컷 식물을 구분한다. 자가수분은 유전적 다양성을 줄여 종 생존에 불리하다.
예를 들어 자웅동체인 호두 과 나무는 계절마다 암수 중 한 가지 성별의 꽃이 번갈아 피워 유성생식을 한다. 야생에서 호두나무들이 피우는 꽃의 암수 비율은 거의 1:1에 가깝다. 동물이나 인간의 성염색체가 작동하는 방식과 유사하게 1:1 균형을 이룬다. 호두나무의 개화 순서를 결정하는 2개의 유전자 변이가 있다. 이 변이는 9종 이상의 호두 과 나무에서 거의 4000만년 넘게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다. 호두나무들이 서로 다른 성별의 꽃을 피우는 원리는 인간이나 동물의 성별 결정 방식과 비슷하다.
https://www.science.org/doi/10.1126/science.ado5578
자연에서의 성은 두 가지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남녀 또는 수컷과 암컷으로 대별되는 양성 이상의 성도 있다. 새는 단성생식과 양성생식도 하지만 4개의 성별을 가진 새도 있다.
가장 극단적인 것은 진균류이다. 버섯이나 곰팡이 등 진균류는 수천~수만의 생물학적 성별이 있을 것으로 추정돼 왔다. 버섯에 왜 이렇게 많은 성별이 존재하는지는 불분명하지만 버섯이 특정 장소에 머물고 번식하는 것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버섯의 성별이 수컷과 암컷뿐이라면 주변 포자가 같은 성별일 가능성이 높아져 교배율이 떨어지는 반면, 성별이 많으면 주변 포자와의 교배 확률이 높아져 생존에 유리하다. 또 동일한 버섯에서 방출되는 포자의 유전적 다양성으로 근친교배의 단점을 피하기 쉽고 많은 대립 유전자의 존재로 환경변화에 더 잘 적응할 수 있다. 실제로 1만 7000개 이상의 성별이 있는 버섯이 확인되었다.
양성생식이 동물의 생식방식이지만 때로는 암컷 혼자서도 단성생식으로 새끼를 낳는다. 단성생식(처녀생식, Parthenogenesis)은 수컷 없이 암컷 혼자 새끼를 낳는 것을 말한다. 식물, 물벼룩과 진딧물, 개미와 꿀벌뿐만 아니라 뱀이나 도마뱀 상어나 가오리 그리고 새도 한다. 자연에서 단위생식은 개체수가 감소해 수컷이 부족해지거나 스트레스가 커지면 나타난다. 암컷의 세포가 정자처럼 행동해 난자와 융합하는 방식으로 수정이 일어난다.
심지어 해마 같은 실고기(pipefish)는 수컷도 임신을 한다. 2017년에는 수컷과 떨어져 사는 암컷 상어가 유성생식에서 단성생식으로 번식 전략을 변경한 사례가 학계에 보고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