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무시되는 수면의 학습효과

인간의 머리뼈(두개골)는 외부 충격으로부터 뇌를 보호해준다. 머리뼈의 안(뇌실 腦室, ventricle)에는 액체인 뇌척수 액(腦脊髓液, cerebrospinal fluid, CSF)이 있어 뇌를 보호한다. 또한, 뇌척수 액은 뇌를 청소하는 역할을 한다. 운동을 많이 하면 피로를 느끼듯이 머리를 많이 쓰면 피곤해진다. 근육에 피로 물질이 쌓이듯 뇌에도 피로 물질인 노폐물이 쌓인다. 뇌에 쌓이는 노폐물에는 알츠하이머의 원인이 되는 베타아밀로이드, 타우 단백질 등이 있다.


이렇게 쌓이는 노폐물은 뇌척수 액에 의하여 제거된다. 즉 잠을 자는 동안 뇌척수 액이 뇌의 노폐물을 청소하는데, 이를 ‘글림프 시스템(Glymphatic System)’이라고 부른다. 사람 몸 안에서는 림프계(lymphatic system)가 있다. 세포 사이를 순환하며 ‘청소부’ 역할을 한다. 대사과정에서 배출한 노폐물을 없애준다. 뇌에서도 2013년 글림프시스템(Glymphatic System)이 발견되었다. 이는 뇌의 신경교세포(Glial cell)와 림프계의 합성어이다. 이 시스템이 뇌 속에서 ‘하수구' 역할을 한다.


잠을 자면 뇌에 쌓인 노폐물이 씻어지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관찰할 수 있다. 생쥐의 뇌를 보면 노르에피네프린(norepinephrine)이라는 호르몬이 뇌 속 노폐물을 제거하는 데 핵심 역할을 한다. 숙면하고 있을 때 뇌간이 약 50초 간격으로 이 호르몬에 미세한 파동을 일으킨다. 혈관을 수축·이완시키며 혈액에 규칙적인 흐름을 만들어 노폐물을 제거하고 운반·폐기한다. 혈액량 변화에 따라 뇌척수액이 변동한다. 혈관이 펌프 역할을 해 주변 뇌척수액을 밀어 내면서 노폐물을 배출한다. 이 호르몬은 교감신경계를 자극해 심장박동수를 증가시키고 불안 반응에 관여하는 물질이다. 수면을 돕는 졸피뎀(zolpidem)을 생쥐에게 투여했더니 자연스럽게 잠든 쥐보다 노르에피네프린 파동이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잠은 빨리 들지만 뇌의 노폐물 제거 효율은 30% 이상 줄어들었다. 수면 보조제가 뇌 속 노폐물 제거에 방해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 수면보조제는 약물의존성과 오남용 위험이 있어 향정신성의약품으로 지정되어 있다. 수면이란 자기 전에 식기세척기를 작동시켜 아침에 깨끗한 뇌로 깨어날 수 있게 하는 것과 같다.


잠을 푹 자서 노폐물을 빼는 것은 컴퓨터를 최적화시키는 것과 같다. 뇌의 기능을 최적화한 상태인 ‘임계’를 유지하기 위해 잠을 자서 뇌를 재설정하는 것이다. 임계(set point) 개념은 1987년 물리학에서 나왔다. 평평한 바닥에 모래알을 떨어뜨리면 모래 언덕이 생기고 조금씩 무너지다가 더미가 커지면 안정된 임계 상태가 되는 것을 연구한 것이다. 물리학에서 임계는 복잡한 체계가 한계에 이르는 시점을 표현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물리현상은 뇌에도 나타난다. 잠을 푹 자고 일어나면 뇌의 신경세포 활동이 급격하게 활성화되었다가 서서히 기능이 떨어진다. 뇌 활동(신경세포 활동량)이 줄어들면 잠을 자서 지쳐버린 뇌의 기능을 재설정한다. 컴퓨터를 최적화시키지 않으면 기능이 떨어지고 오류가 발생하고 고장 나듯이, 잠을 못 자면 피곤하기만 할 뿐 제대로 해낼 수가 없다. 수면의 핵심은 뇌의 상태를 재설정해 ‘임계’를 달성하는 것이다.


잠을 자는 것은 결코 ‘시간낭비’가 아니다. 잠을 자는 동안 뇌척수 액으로 뇌를 ‘청소’하여 하루 동일 뇌로 들어온 정보를 정리한다. 인간만 그런 것이 아니다. 새도 사람처럼 잠을 자면서 꿈을 꾸고, 뇌의 노폐물을 씻어낸다. 새들의 수면 패턴은 렘수면 단계와 비 렘수면 단계 모두 포유류의 패턴과 매우 유사하다. 새의 뇌는 포유류보다 뉴런의 밀도가 높기 때문에 뇌의 노폐물을 더 자주 제거해줘야 한다. 새가 포유류보다 수면 중 렘수면 단계가 더 짧고 비 렘수면 단계가 더 긴 이유이다. 쥐도 이러한 청소기능이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잠을 충분히 못 자면 불필요한 기억을 삭제하지 못하고 배운 것이 헐겁게 연결되어 학습효과가 떨어진다. 물이 흐르는 방향으로 수영을 해야 하는데 역방향으로 수영을 하여 고생만 하는 셈이다. 따라서 미련 없이 푹 자고 일어나야 한다. 대학생의 경우 1주일 간 수면 시간이 1시간만 부족해도 시험 성적이 10% 하락하더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 시스템은 나이가 들면서 점차 약해진다. 뇌로 가는 동맥이 단단해지고, 그래서 뇌척수액 생산이 줄면서 이 시스템 효율도 떨어진다. 그래서 나이든 사람일수록 수면이 더 중요해진다. 지능의 유전적 요인은 바꾸기 어렵지만 ‘수면’ 지능을 통제할 수 있다. 청소년기 학습 능력 향상과 성인의 치매 예방 모두에서 수면 관리가 무척 중요하다. 바로 누워 자는 것보다 옆으로 누운 자세일 때 뇌 청소가 잘 된다. 가능하면 오른쪽 옆으로 눕는 게 심장 압력을 줄여 더 효과적이다. 매일 같은 시간에 자고 일어난다. 특히 밤 10시부터 새벽 두 시까지는 노폐물이 집중적으로 제거된다. 수면 환경은 어둡고 조용하게 그리고 너무 덥거나 춥지 않게 유지한다. 카페인, 흡연, 음주는 잠들기 최소 4시간 전엔 피한다. 특히 알코올은 글림프 기능을 30% 이상 억제한다. 잠자리는 오직 수면을 위해서만 사용한다. TV 시청이나 휴대폰 사용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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