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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근수 Jun 09. 2021

무로부터의 창조?


유대교,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는 모두 무로부터의 창조를 믿는다. 무로부터의 창조는 유일신교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중국에도 그런 관념이 이미 오래 전에 있었다. 만물은 유에서 생겨났으나, 유는 무에서 생겨났다(天下萬物生於有 有生於無, 노자 도덕경 40장). 반면에 힌두교는 신과 창조주를 믿지만 무로부터의 창조라는 믿음은 없다. 힌두교와 불교에서는 우주가 시작도 끝도 없이 영원히 존재한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무로부터의 창조’는『성서』의 어디에 나올까. 놀라운 것은『성서』에는 ‘무로부터의 창조’는 없다.「창세기」를 보면 신은 세상을 무로부터 창조한 것이 아니며, “형태도 공간도 없는” 땅과 물의 카오스, 히브리어로 무질서(tohubohu)로부터 창조한 것으로 묘사하였다. 카오스로부터 질서를 창조한 것으로 기술하고 있다. 다시 말해 무(無, nothingness)라는 개념은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에서는 없는 것이다. 무로부터의 창조라는 관념은 먼 훗날 그리스 사상의 영향을 받은 유대 공동체에서 발전되었으며, 외경인「마카베오기」 하권에 처음 등장한다.


정경『성서』에 근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교, 유대교 및 이슬람교는 무로부터의 창조(creatio ex nihilo)를 주장한다. 무로부터의 창조는 논리적으로 추론한 것이다. 그렇다면 오직『성서』를 외치는 기독교는 자기모순에 빠진다. 논리도 경전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때문이다. ‘무로부터의 창조’는『성서』에 근거하지 않은 추론이니! 특히 우리나라에서 트랜스젠더나 동성애에 대하여『성서』만을 근거로 차별금지법제정을 반대하는 것은 모순적인 태도이다. 분명 트랜스젠더나 동성애는 과학적인 논리로 보면 대부분 타고나는 것이다. 기독교는 역사적으로 단 한 번도 과학과 충돌하여 이겨본 적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반과학적 반지성적인 태도를 보인다. 기독교인들이 문제가 되는 것은 다른 논리는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 카오스(chaos)라는 단어 자체는 우주 창조보다 앞서 존재했다는 ‘무’를 가리키는 그리스어에서 왔다. 즉 원래는 혼돈이 아니라 텅 빈 공간 또는 공허를 의미한다. 하지만 창조를 말하는 것은 그리스어가 아니라 히브리어이므로 카오스는 번역된 단어이다. 이로부터 유추할 수는 없다.     


무로부터의 창조가 나온 논리는 이랬을 것 같다. 신이 무언가로부터 우주를 창조했다는 것은 바로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그 ‘무언가’는 누가 만들었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이 계속된다. 결국 완전히 새로이 만들었거나 모든 ‘무언가’는 시작이 없이 영원히 존재해왔어야 한다. 후자는 창조를 부정하니 받아들일 수가 없다. 결국 2세기 또는 3세기경에 그리스도교는 무로부터의 창조라고 결론 내렸다. 신은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창조했다! 신은 전지전능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장은 후에 이슬람교에서, 중세에는 유대교에서도 받아들여졌다. 결국 무로부터의 창조는『성서』밖의 이성 또는 논리에 근거한 추론이다. 그렇게도 강조하는 ‘오직 성서’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이미 ‘오직 성서’는 아니다.


무로부터의 창조는 이성에 의한 논리전개이며 가 과학적으로 입증되거나 과학적인 발견이 아니다. 그것은 세계가 신이 만든 것이라는 ‘신앙’의 표현이다. 이 모든 것이 신에게서 나왔다는 것이다. 신이 이 모든 것을 창조했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신이 무로부터 창조했다는 신앙은 논증될 수도 반증될 수도 없다. 반증될 수 없는 것은 과학이 아니다. 그것은 믿음이고 신앙이다. 따라서 신에 의한 창조, 무로부터의 창조를 과학적으로 다루겠다는 창조과학은 과학도 아니고 신앙도 아니다. 사이비과학이자 사이비신앙이다. 과학은 ‘신에 의한 무로부터의 창조’라는 믿음은 연구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창조가 아니라 우주의 ‘기원’을 과학적으로 밝힌다. 이 책도 우주의 기원을 쓴 글이다.


무로부터의 창조 신앙은 시간도 창조되었으므로 창조이전에는 시간도 없다고 주장한다. ‘하늘과 땅을 창조하기 전에 신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이 질문에 아우구스티누스는『고백록』11장에서 간결하게 답했다. 그건 쓸데없는 질문이다. ‘이전’에 대해서는 물을 필요가 없다. 왜? 세상은 시간 안에서(in tempore) 창조된 것이 아니라 시간과 함께(cum tempore)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시간도 창조되었다. 창조가 있기 전에는 시간도 없었고, 공간도 없었다는 말이다. 즉 무로부터 창조되었다는 주장이다. 기독교는 13세기에 ‘시간은 시작이 있다.’는 것을 신조(article of faith)로 선언했다. 창조는 ‘시작’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현대과학도 공간뿐만 아니라 시간도 빅뱅이전에는 없었다고 주장한다. 무로부터의 창조와 비슷하다. 그러나 그것은 신앙이 아니라 과학적인 근거에 의한 주장이다. 빅뱅에 의하여 우주가 탄생했고 빅뱅 이전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는 과학의 주장은 창조신앙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또한 빅뱅 이전에 대해서도 과학계에서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고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우주는 시작도 없고 영원하다고 주장하는 과학자도 이다. 과학계가 주장하는 무로부터의 우주 탄생은 양자역학에 의하여 설명된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텅 빈 공간은 아주 작은 스케일에서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수많은 가상입자와 이들이 만든 장으로 격렬하게 요동칠 수 있다. 이를 양자 요동(quantum fluctuation)이라고 한다. 아주 작은 공간과 짧은 시간, 즉 양자적 세계에서는 입자와 반입자들이 수없이 출현했다가 사라진다. 말하자면 양자세계에서는 무에서 유로의 창조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우주는 약 138억 년 전 양자 요동에 의하여 무에서 빅뱅으로 나타났다. 극히 짧은 순간 상반되는 전하를 가진 가상입자인 물질과 반물질이 출현하면서 시작되고 약간의 비대칭 때문에 남은 물질이 급팽창하며 우주를 만들었다. 2018년 작고한 스티븐 호킹도 자신의 저서『위대한 설계『(Grand Design)』에서 우주는 신에 의하여 창조된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저절로 생겨났음을 과학적으로 설명하였다. 우주는 중력의 법칙과 양자이론에 따라 무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했다고 단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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