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과 탄수화물 논쟁
과학자들은 비만의 원인이 지방인지 탄수화물인지를 두고 논쟁하였다. 섭취한 칼로리보다 소모한 칼로리가 적은 ‘에너지 불균형’이 비만으로 이어진다는 열역학의 관점이 널리 받아들여져 왔다. 따라서 에너지가 많고 식욕을 자극하는 지방 섭취를 줄이는 게 중요했다. 그래서 ‘덜 먹고 더 움직인다.’가 간단한 답이다. 그러나 실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저 탄수화물 고 지방 식 논쟁
일부 과학자들은 비만이 열역학이 아니라 생리학의 문제라며 저지방 식단 권장이 오히려 비만 문제를 더 심화시켰다고 비판한다. 이 주장의 근거는 ‘탄수화물 인슐린 모형(Carbohydrate-insulin model. CIM)’이다. 이에 따르면 인슐린은 지방축적을 조절하고, 인슐린 수치는 섭취하는 탄수화물의 양과 질에 따라 결정된다. 특히 단순 당이나 백미, 밀(빵과 면), 감자 같은 탄수화물을 많이 먹으면 인슐린 수치가 급증해 중성지방이 만들어져 쌓인다. 그 결과 혈액에서 유리지방산 수치가 떨어지고 식욕이 올라가 더 먹게 된다. 탄수화물 위주로 먹으면 살이 찌면서도 배가 고픈 악순환의 고리에 들어선다는 말이다. 이들은 1980년대 개정된 미국 농무부의 권장식단이 비만에 불을 붙였다며 비판한다. 권장식단은 네 층으로 된 피라미드 형태로 1층이 곡물, 2층이 채소와 과일, 3층이 고기와 유제품, 4층이 기름과 설탕이다. 면적이 넓은 아래층일수록 더 많이 먹으라는 뜻이므로 고 탄수화물 저 지방 지향 식단이다. 따라서 1층을 없애고 2층과 3층으로 이뤄진 식단 즉 채소와 과일, 고기와 유제품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참고로 식단에서 지방의 비율이 아주 높으면 오히려 식욕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대표적인 학자는 하버드대학 의대 데이비드 루드윅(David Ludwig) 교수이다. 이 저탄고지 식단은 효과적인 다이어트 법으로 인식돼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일명 황제다이어트는 로버트 애트킨(Robert Atkins)이 제안한 저 탄수화물 다이어트다. 단백질을 위주로 먹는 이 다이어트는 과학적으로도 검증됐다. 탄수화물을 줄이면 체중이 가장 잘 감소된다. 뇌는 잘 먹는 것으로 인식하고 기초대사량을 그대로 유지하거나 늘린다. 칼로리 소비량은 유지되거나 약간 늘고 살은 빠진다. 처음에는 의료계는 이러한 주장에 침묵했다. 그러나 점점 효과를 보고 추종자가 늘자 미국 의학협회는 1973년에 이 방법이 효과가 있음을 알고도 통렬하게 비난했다. 당이 부족해져 지방 대사 장애가 발생하고 콜레스테롤 증가로 건강에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 주장했지만,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이는 한계가 있다. 뇌가 사용하는 거의 유일한 에너지원은 포도당이다. 뇌는 이상을 느낄 수밖에 없다. 결국 탄수화물이나 당분을 많이 먹고 끝난다.
장수촌은 탄수화물 위주 식사
세계적인 장수촌으로 꼽힌 오키나와의 사람들은 식단의 85%가 탄수화물이었지만 날씬했다. 물론 이때는 고구마가 주식이었고 먹을 게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그런데 역시 식단에서 탄수화물이 70%가 넘었던 1980년대 전후 우리나라 사람들 역시 지금보다 훨씬 날씬했다. 절에 상주하는 사람들 대다수가 비만과는 거리가 멀다. 먹을 것 부족으로만 설명할 수 없다.
존 맥두걸(John A. McDougall)의 저서『어느 채식의사의 고백(The starch solution)』은 비만의 만연이 고기와 유제품 위주의 식단 때문이며 녹말음식 위주로 먹는 게 해결책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말하는 녹말음식은 정제탄수화물로 만든 빵, 라면, 국수, 파스타, 케이크, 과자가 아니라 감자, 현미, 고구마, 통밀 같은 자연음식이다. 존 맥두걸은 1970년대 하와이 사탕수수농장에서 의사로 일했다. 이곳의 노동자 대다수는 중국, 일본, 한국, 필리핀에서 온 이민자들인데 이민 1세보다는 2세가, 2세보다는 3세가 비만과 대사질환 비율이 높았다. 이들의 식단을 보니 이민 1세는 여전히 탄수화물 위주의 전통식단인 반면 3세는 고기와 유제품, 패스트푸드 중심이었고 부모와 자식 사이에 낀 2세의 식단은 과도기적 형태였다. 존 맥두걸 역시 미국 농무부의 권장식단을 비판한다. 비만의 원인인 3층 고기와 유제품을 빼야 한다는 것이다.
탄수화물에 의한 비만을 반박하는 연구
2021년 탄수화물-인슐린 모형에 반하는 실험결과를 소개하며 비만 만연의 원인을 탄수화물에서 찾아서는 안 된다는 주장하는 기고문이 나왔다. 비만의 원인이 탄수화물인지 지방인지 많은 연구가 있었지만 결과는 일관성이 없었다. 잘못된 실험 설계와 짧은 기간 등 많은 문제가 있다. 따라서 적어도 탄수화물이 비만의 주범이라고 결론을 내릴 수가 없다.
2020년 생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고탄저지’일수록 식후 인슐린 수치는 높았지만 먹이를 덜 먹었고 체중 및 체지방도 가장 적었다. 그리고 식단이 기초대사량에 별 영향을 주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 탄수화물 비율이 높을수록 대사량이 줄 거라는 예측도 틀렸다. 물론 동물실험이라는 한계는 있다.
사람을 대상으로도 비슷한 결론이 나왔다. 사람을 대상으로 한 실험결과가 일관성이 없었던 것은 통제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주요 원인이었다. 식단을 충실히 따랐다는 사람들의 보고가 사실인지 확인할 수가 없었고 사람들을 실험실에 가두어 장기적으로 통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평균 나이 30세의 20명으로 평균 BMI가 28로 과체중인 사람을 대상으로 한 연구이다. 이들의 절반은 앞 2주 동안 채식 ‘고탄저지’ 식단, 뒤 2주 동안 육식 위주 ‘저탄고지’ 식단을 받는다. 나머지 절반은 반대순서로 했고, 음식은 가공을 최소화한 건강식이고 마음껏 먹을 수 있다. ‘고탄저지’ 식단일 때 하루 평균 2064칼로리로 저탄고지의 2753칼로리보다 거의 700칼로리나 적게 섭취했다. 반면 에너지 소모량은 ‘고탄저지’가 2141칼로리이고 저탄고지는 2294로 150칼로리 적은데 그쳤다. 그 결과 2주 동안 ‘고탄저지’ 식단을 한 뒤 체지방이 0.67㎏ 줄었다. 에너지 부족분을 체지방을 태워 메꾼 것이다. 반면 ‘저탄고지’에서는 0.18㎏ 줄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지 않았다. 반면 체중은 ‘고탄저지’가 1.09㎏ 준 반면 ‘저탄고지’는 1.77㎏ 줄었다. 수분과 단백질 등 다른 부분이 준 것으로 보인다. 두 식단 모두 가공을 최소화한 음식이어서 둘 다 체중이 준 것으로 보인다. 가공식품 문제가 떠오른 것이다.
현대인의 과체중은 가공식품이 원인
초 가공식품이 칼로리 과잉 섭취와 비만의 주된 원인이다. 초 가공식품(ultra-processed food)이란 저렴한 식재료에 각종 첨가물을 더하고 가공을 통해 먹기 편하게, 즉 그대로 먹거나 데워 먹게 만든 식품이다. 패스트푸드와 탄산음료, 과자 등이 전형적인 초 가공식품이다. 패스트푸드가 비만의 원인이라는 주장이 오래전에 나왔고 지금은 상식으로 받아들여지지만 사람을 대상으로 한 비교연구가 없었다. 비만 주범이 탄수화물이냐 지방인가에만 집중하였었다. 2주 간격으로 식단을 바꿔 4주 실험을 한 뒤 데이터를 분석하였다. 초 가공식품 식단일 때 자연음식에 비해 하루 평균 500칼로리를 더 섭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결과 초 가공식품 식단 2주 뒤 체지방이 평균 0.4㎏ 늘어 0.3㎏ 준 자연음식일 때와 0.7㎏ 차이가 났다. 식단에서 영양소의 비율이 같더라도 음식의 가공 정도에 따라 체지방 증감에 미치는 영향이 반대 방향으로 나타났다. 초 가공식품이 장과 뇌 사이의 포만 신호를 교란해 더 먹게 만든다고 추정했다.
사람뿐 아니라 반려동물도 비만이 심각하다. 도시에 사는 쥐도 그렇다. 이들의 먹이 역시 가공이 많이 된 사료나 우리가 먹다 남긴 음식물이어서 그렇다.
먹으면 살찌고 건강해칠 수 있는 무가당, 무 지방, 무 트랜스지방, 통 곡물, 생과일 식품
2008년부터 2012년까지 미국에서 판매된 8000만 여개의 식품과 음료 제품에 적힌 영양에 관한 광고를 보면 판매된 식품과 음료의 각 13%와 35% 가량이 포장지에 ‘함량을 낮췄다’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저지방, 저칼로리, 저당 문구가 가장 많았다. 그런데 제품 대다수가 그런 문구가 없는 제품에 비해 영양 구성의 질이 떨어졌다. 그러한 문구가 식품의 전체적인 영양에 대한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수준의 식품이 아니다.
‘무가당’, ‘무 지방’, ‘트랜스지방 무 첨가’ 흔히 보는 문구이다. ‘무가당’은 설탕을 첨가하지 않았다는 뜻이지만 무당(sugar free)은 아니다. 식품 자체에 있는 당분이 함유될 수 있다. 대다수 무가당 제품은 인공 감미료로 만든다. 칼로리 섭취를 낮추는 데 도움이 되지 않으며 혈당 수치를 높였다가 급격히 떨어지면서 탄수화물을 더 찾게 만들 수 있다. 무가당 식품 중에는 화학적 변형을 거친 설탕이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옥수수에서 추출하는 말토덱스트린은 효소 분해 과정을 거쳐 만들었고 잘 소화되어 체내 인슐린 수치를 치솟게 할 수 있다. 통 곡물 시리얼 제품은 통 곡물만으로 만들어졌다는 뜻이 아니다. ‘100퍼센트 통 곡물’이어야 한다. ‘섬유질 함유’는 기능성 섬유질이 들어있는 것으로 자연식품에 함유된 섬유질과는 다르다. 섬유질은 자연식품으로 섭취해야 한다. ‘생과일 제품’은 생과일로만 만들었다는 뜻은 아니며 가공 처리된 과일 농축액만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 무 지방 제품은 지방은 없지만 당분이 첨가 된다. 그래서 칼로리가 높을 수 있다. 지방을 제거할 때 설탕 같은 탄수화물이나 지방과 같은 맛이 나도록 가공 처리한 단백질이 첨가되어 뱃살에 치명적일 수 있다. 2015년 연구에서도 저지방 식단은 지방 섭취량이 많은 식단과 비교해 체중 감량 효과가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저지방과 무 지방 식품의 경우 정제당이나 당분이 잔뜩 들어가기 때문이다. 저지방과 무 지방 요구르트에도 많은 설탕이 들어있다.
맛있고 싸고 간편한 가공식품과 살 빼는 자유의지
1975~2020년 45년 동안 세계적으로 비만한 사람이 3배가량 증가했다.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은 약 10배 증가했다. 비만의 원인은 다양하게 제시되며 그것이 나타나는 것은 복잡하다. 그 중에서 최근에 이슈가 되는 것은 가공식품과 초 가공식품(ultra-processed foods)이다. 가공식품에는 밀가루, 소금, 물, 이스트로 만든 빵이 있다. 초 가공식품은 가공식품과는 다르다. 빵을 만들 때 화학성분, 착색제, 방부제를 첨가해 기계식으로 생산한 것은 초 가공식품이다. 도시락 포장제품, 과자, 소스, 가공된 과일 음료, 소시지가 포함된다. 특히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 사람이 가장 많이 먹는 즉석 라면은 강력한 초 가공식품이다. 바쁜 현대인에게 가공식품이나 초 가공식품은 싸고 편하고 맛이 있어 좋다. 특히 이러한 음식을 먹고 자란 청소년의 입맛에도 딱 맞는다. 문제는 건강과 체중이다.
초 가공식품을 먹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하루에 약 500칼로 추가로 섭취하고 체중이 2주 동안 거의 1kg 증가할 수 있다. 초 가공식품은 위장과 뇌 사이의 신호를 왜곡시켜 과식을 유발할 수 있다. 장내 신경세포는 뇌에 위장에 들어오는 음식의 열량 같은 정보를 보낸다. 하지만 초 가공식품 같이 음식에 대한 정보가 뒤섞여 있으면 신호가 왜곡돼 뇌가 적절한 정보를 얻지 못하고 과식할 수 있다. 이러한 연구결과 20명만을 대상으로 한 소규모 연구로 한계는 있다. 초 가공식품이 건강에 좋지 못하다는 주장도 많다. 초 가공식품을 10% 더 먹을 때마다 심장질환 위험도 12% 증가한다는 연구가 있다. 조기사망 위험도 60% 이상 높다는 연구도 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공식품이나 초 가공식품을 떠날 수 없다. 주변에 너무 많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먹는 경우도 많다. 가공식품은 고칼로리 식품이 대부분이다. 칼로리가 필요한 인간으로서는 먹으면 만족감을 준다. 특히 고칼로리 가공식품은 더욱 그렇다. 문제는 고칼로리 음식은 식사 습관을 나쁘게 만든다. 입맛 당기는 고지방 음식이나 간식은 자꾸 찾게 된다.
생쥐도 고칼로리 먹이를 먹으면 그 음식에 중독되고 살이 찐다. 그것은 생쥐도 모르는 명령에 따르는 것이다. 뇌의 도파민 신호가 생체리듬(circadian biology)을 통제해, 아무 때나 고열량 먹이를 먹게 하는 것이다. 이런 쥐의 도파민 신호를 차단하면 먹는 시간을 잘 지키고 살도 찌지 않는다. 자연식(wild diet)에 가까운 먹이를 준 생쥐는 정상적으로 먹고 체중도 유지했다. 가공식품 같은 고칼로리 음식을 먹으면 우리는 먹는 것을 스스로 제어할 수 없다. 인간이 유전자와 뇌의 ‘명령’을 극복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또한 가공식품을 먹다보면 뇌의 브레이크가 고장 난다. 외측 시상하부(lateral hypothalamus)는 식사량 조절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균형 잡힌 음식을 먹어온 생쥐도 3달 이상 기름진 음식만 먹으면 외측 시상하부의 반응속도가 느려져 과식을 한다. 달고 기름지고 짠 음식을 많이 먹으면 뇌의 특정 신경세포(뉴런) 활동을 변화시켜 과식을 막는 뇌의 ‘브레이크’를 고장 나게 하는 것이다. 결국 인간은 비만의 함정에 빠져 헤어 나올 수가 없다. 우리는 근대화되기 전에 건강한 음식을 먹고 살았다. 이제 소득이 증가하고 선진국으로 가지만 음식은 점점 후진되고 있다. 마약중독 같이 가공식품은 우리의 뇌를 통제하고 있다. 사람들은 그것을 의식하지 못한다. 인간의 자유의지란 허구이다.
인간의 의지로 할 수 없다면 뇌를 ‘수정’할 수밖에 없다. 뇌의 시상하부는 체중과 물질대사를 제어한다. 생쥐를 대상으로 연구에서 지방과 탄수화물 성분이 많은 고지방 음식은 비만을 일으키지만 그 전에 뇌 시상하부에 염증을 일으키면 음식 섭취 패턴을 바꿀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고지방 사료를 먹은 생쥐는 특정한 단백질(Uncoupling Protein 2, UCP2)이 미토콘드리아를 작게 하여 소교세포가 활성화된다. 소교세포가 활성화되된 생쥐는 고지방 사료를 더 많이 먹고 뚱뚱해진다. 하지만 이 단백질을 제거하면 고지방 사료를 덜 먹고, 체중도 잘 늘지 않았다. 그러나 인간을 대상으로 이런 일을 할 수는 없다. 인간의 의지로 할 수 있는 것은 가공식품이나 초 가공식품을 애초부터 사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정말 어렵다. 방법은 간단한다. 이런 지식을 정말로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음식을 사러갈 때 자연식품만을 사야한다. 간단하면서도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