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반과학적인 ‘인종’ 개념, 극단적 이념과 종교관 등으로 편을 가르고 대규모 살상을 저지르는 지구상 유일한 종이다. ‘신의 형상’이자 만물의 영장 또는 이성의 존재라는 인간은 지금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서 무자비한 살육으로 그 잔혹성을 보여주고 있다.
보수와 진보, 우파와 좌파 등 이념에 따른 폭력은 역사 내내 지속되었다. 이념이 다른 사람은 상대방을 증오하고 상대방을 의심한다. 심지어 상대방이 더 폭력적이라고 믿는다. 2022년「PNAS」연구에 따르면 당파성이 있는 사람은 상대 진영이 폭력을 지지한다고 믿는 정도를 실제보다 최대 4배나 과대평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로가 상대를 믿지 않으며 상대방이 폭력이 있다고 믿는 것이다. ‘자연스런’ 반응이다. 인간은 비합리적이다.
2024년 미국 공공종교연구소(PRRI) 조사에 의하면 공화당원들이 민주당원들보다 폭력을 지지한다는 응답이 더 높았다. 이코노미스트가 여론조사기관 유거브(YouGov)에 의뢰하여 2025년 미국인 320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다. 진보 성향 응답자의 20%가 정치적 폭력은 정당화될 수 있다고 답했다. 보수와 중도 성향 응답자는 각각 7%였다. 특히 40세 미만 진보 성향 응답자 중 거의 3명 중 1명은 정치적 폭력을 용인할 수 있다고 답했다. 정치적 폭력성과 관련한 조사는 언제, 어떻게 질문을 구성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음을 암기한다.
실제 폭력에서는 우파가 더 심하다. 미국 신시내티 대학이 1990년부터 2025년까지 정치적 폭력과 관련된 중범죄 형사 사건을 분석한 결과 대체로 피의자 중에선 매년 우파 성향을 지닌 사람들이 많았다. 뉴욕주립대학이 1990년부터 2020년까지 정치적 폭력을 연구한 결과에서도 극우 세력이 극좌 세력보다 더 많은 더 많은 중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이 연구에선 점차 좌파 진영의 폭력이 증가하는 추세도 관찰됐다.
학살은 좌나 우를 막론하고 역사적으로 자행되었다. 20세기 히틀러 나치는 유대인 600만 명을 비롯해 2100만 명을, 스탈린 소련이 6200만 명을, 중화인민공화국이 3500만 명을, 중국 국민정부가 1000만 명을, 일본 군국주의가 600만 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20세기 집단학살의 주범은 전체주의 체제, 즉 나치즘과 공산주의였다. 전체주의 체제는 20세기 국가학살 사망자 1억7000여만 명 가운데 82%인 1억3800만 명을 죽였고, 이 중 공산주의 체제가 1억1000만 명(전체의 65%)이었다. 전성기 때 공산주의 체제는 ‘계란을 깨야 오믈렛을 만든다.’며 폭력을 옹호했지만 하버드 대학 역사학자 리처드 파이프스는 “인간이 계란이 아닌 건 차치하고라도 그 살육에서 오믈렛이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지금 시대가 폭력적이라고 느끼는 것은 실제 폭력이 늘어서가 아니라 폭력의 존재를 다양한 매체를 통해 손쉽게 접하고, 폭력을 나쁘다고 느끼는 감수성이 어느 시대보다 민감하며, 피비린내 나고 잔혹한 과거의 사건과 일상에 대해 잘 모르는 ‘역사적 근시안’ 때문이다(동아일보, 2014.8.30., 스티븐 핑거, 김명남 번역,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해설).
칼 마르크스는 생전에 “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자신은 자본주의의 대안을 찾으려는 사상가라는 의미로 보인다. 공산주의 혁명을 이끈 ‘정치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과오는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그 책임을 마르크스에게 돌릴 수 없다는 의미이다. 칼 마르크스는 비극적 폭력을 의도했을 리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어느 시대나 공산주의, 민주주의, 자유주의, 인권 등을 내세우면서 그것을 이용하여 권력, 재물 같은 이득을 차지하려는 인간들이 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