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빙하기(last glacial period)는 115000년 전부터 시작하여 11,700년 전(기원전 약 9700년)에 끝났다. 마지막 빙하기가 끝날 무렵까지도 북미대륙에는 매머드 같은 대형 포유류가 살고 있었다. 땅늘보(Ground sloth)는 기원전 1만1000년에서 기원전 8천 년경 멸종한, 현존하는 나무늘보의 친척뻘인 동물이다. 이들은 나무늘보와는 달리 주로 땅에서 살았고 무게가 4~5t으로 코끼리와 비슷한 크기였다. 인간이 아메리카로 이주하기 전에 땅늘보가 번성한 것은 먹이가 다양하였고 적응력이 높았기 때문이다. 코끼리의 먼 친척인 마스토돈(mastodon)은 코끼리처럼 긴 엄니를 가졌으며, 북미와 중미 등 아메리카 대륙에서만 화석이 발굴되고 있다. 하지만 기원전 1만년 경 전후로 자취를 감추었다. 과학자들은 이러한 멸종이 주로 인간 때문인지 기후에 의한 것인지 오랫동안 논쟁해 왔다.
아직 원인은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아메리카 대륙에는 유라시아 같이 가축화할만한 대형포유류가 없었다. 또한 유라시아에서 작물화한 주요작물도 없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가『총, 균, 쇠』에서 밝혔듯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농업과 가축이 발전하지 않은 ‘자연적인’ 요인이다. 아메리카 대륙으로의 인간 진출이 아주 늦기도 하였고 고립되었을 뿐만 아니라 작물도 가축도 없어 문명이 발달할 수가 없었다. 서구인들이 멸시하듯 말한 대로 ‘열등한’ 존재여서가 아니었다.
아메리카 대륙의 대형동물은 인간이 멸종시켰다는 연구가 여럿 나왔다. 우선 2024년「Science Advances」에 발표된 논문을 소개한다. 클로비스 문화(Clovis culture)는 기원전 1만1천50년~1만750년의 북아메리카 석기문화이다. 기원전 1만 1천 년경 고대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매머드와 대형 동물을 주로 먹고살았음을 보여주는 직접적인 증거가 발견됐다. 가장 많이 섭취한 단백질은 매머드(40%)이고 다음은 엘크, 들소 등이었다. 그동안 중요한 식량원으로 여겨져 온 작은 포유류는 식단에서 차지한 비율은 아주 낮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매머드는 장거리이동을 했기 때문에 이동성이 뛰어난 인간에게 지방과 단백질의 좋은 공급원이었다. 매머드에 초점을 맞추면 클로비스 인들이 어떻게 수백 년 만에 북미 전역과 남미로 퍼져나갔는지 알 수 있다. 당시 기후는 매머드 같은 일부 거대 동물에게 적합한 서식지를 감소시키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매우 효율적인 사냥꾼이었던 클로비스 인들이 취약해진 대형 빙하기 동물의 멸종에 기여했을 가능성이 있다.
남아메리카에서도 증거가 나왔다. 2025년「Science Advances」에 발표된 논문에 의하면 아르헨티나와 남미 지역에서 기원전 1만1000년부터 9천600년 초기 정착민이 살았던 곳에서 이들이 먹고 남긴 많은 뼈들을 발굴됐다. 분석 결과 발굴지 20곳 가운데 15곳에서 발견된 화석의 80%는 무게가 44kg 이상인 대형 포유류의 뼈였다. 대형 포유류를 선택적으로 집중 사냥했음을 의미한다. 같은 시기에 소형 포유류와 어류, 양서류, 파충류들은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 이것은 기후 변화 같은 다른 이유로 설명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