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남성보다 수명이 길다. 인간만이 아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생명표’에 따르면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여성 86.4세, 남성 80.6세로 여성이 5.8년 더 길다. 다른 동물도 마찬가지이지만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어떤 종은 암컷이, 또 다른 종은 수컷이 더 오래 산다.
다양한 요인이 있지만 염색체도 관련이 있다. 여성은 X염색체가 두 개 있어서 둘 중 수명 연장에 유리한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반면에 남자는 X염색체가 하나뿐으로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수명이 짧다는 주장이다. 과학계는 특히 유전적 차이가 남녀 간 수명 격차의 핵심 원인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여성에게 두 개 존재하는 X염색체의 역할에 주목한다.
2025년 전 세계 동물원 528종 포유류와 648종 조류의 수명을 조사한 결과, 인간뿐만 아니라 72%의 포유류와 68%의 조류의 경우에도 여성의 수명이 남성보다 길다. 조류, 곤충, 파충류의 경우, 오히려 수컷이 암컷보다 더 오래 사는 종도 있어 생물학적 수명 차이는 종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핵심은 ‘이형(異形) 배우자 가설(heterogametic sex hypothesis)’이다. 성염색체가 서로 다른 쪽이 수명이 짧다는 가설이다. 인간을 포함한 대부분의 포유류는 여자는 두 개의 동일한 성염색체(XX)를 갖는다. 반면 남성은 서로 다른 X와 Y염색체를 가진다. 이 경우 Y염색체를 가진 남성이 ‘이형 배우자’가 된다. X염색체에는 생명 유지에 필수적인 유전 정보가 다수 포함돼 있다. 여성은 X염색체가 두 개이므로, 하나에 문제가 생겨도 다른 하나가 그 기능을 대신해 유전적 손상에 대한 방어력이 높다. 하지만 X염색체가 하나뿐인 남성은 이러한 유전적 결함에 훨씬 취약할 수밖에 없다. 조류는 암컷이 ZW, 수컷이 ZZ 염색체를 가진다. 즉, 암컷이 ‘이형 배우자’다. 조류의 경우 연구 대상의 68%에서 수컷이 암컷보다 평균 5% 더 오래 산다.
https://www.science.org/doi/10.1126/sciadv.ady8433
2022년 연구에 의하면 Y염색체가 남자의 수명을 감소시키는 원인이라는 직접적인 증거도 있다. 쥐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를 보면 남자가 여자보다 수명이 짧은 이유는 Y염색체에 있다. 사람의 경우도 비슷하다. 영국인 남자 1만5000명 이상을 분석한 결과 백혈구의 40%에서 Y염색체 상실이 발생한 남성은 Y염색체가 더 풍부한 남성보다 순환계 질환으로 7년 내 사망할 확률이 31%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남성이 여성보다 생물학적으로도 더 빨리 늙는 셈이다.
남자는 나이가 들면서 Y염색체도 잃기 시작한다. 이를 Y염색체 모자이크 손실(mosaic loss of the Y chromosome)이라고 부른다. Y염색체 손실은 1960년대 처음 발견되었다. 세포가 복제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하면서 서로 다른 유전형이 몸에 섞이게 되는 것을 모자이크 현상(mosaicism)이라고 부른다. 이런 현상은 나이가 들수록 많아지고 Y염색체가 더 이상 복제되지 않는 현상까지 벌어진다. Y염색체는 X염색체의 10분의 1도 안 되는 71개의 유전자만 갖고 있다. 유전자 자체가 작기 때문에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모자이크 현상이 축적되다 어느 순간부터는 아예 사라져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