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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근수 Jun 27. 2021

혜성이 인간의 폭력을 부르다

만빙 기(晩氷期, late glacial time)는 마지막 빙하기의 말기로 약 1만 5000년 전부터 기원전 1만 년 전까지의 5000년간을 말한다. 지구는 약 1만2천800년 전경 만빙기의 마지막 시기인 신드리아스기(Younger Dryas, 12900~11700)에 혹독한 추위가 다시 찾아왔다. 매머드 등 30여종이 넘는 대형 동물이 멸종하고 인류도 급격히 쇠락하며 생존 위기를 겪었다. 그 결과 매머드와 클로비스 족도 사라졌다. 그러나 애리조나대학의 밴스 홀리데이(Vance Holliday) 교수는 대형 포유류가 갑자기 사라진 것이 아니며, 매머드의 멸종이 세계 전역에서 각각 다른 시기에 걸쳐 서서히 이루어졌다고 주장했다. 


일부 학자들은 기원전 1만 1000~2000년경 지구는 빙하기와는 관련이 없이 영거 드라이아스(Younger Dryas)라는 짧은 빙하기를 겪어 북반구에는 혹한이 닥쳤고, 이것이 운석들이 지구에 충돌해서 발생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이 시기에 북미와 서유럽에서 발생한 현상에 대한 연구결과도 이미 수 십 개가 있다. 그린란드의 두꺼운 얼음 층 아래에서 당시 떨어진 운석에 의해 직경 30Km 정도의 충격 흔적이 발견돼 이 이론을 뒷받침했다. 또한 남극에 가까운 칠레에서도 당시의 운석 충돌로 남반구에서도 기후변화와 대형동물들의 멸종이 있었던 증거가 발견되어 영거 드라이아스의 영향이 생각했던 것 보다 광범위하게 지구에 미쳤음을 보여준다. 그 중에는 운석 충돌로 발생한 고온으로 발생한 용융에 의해서 형성된 것으로 해석되는 소구 체가 있는데 이 소구 체를 포함하고 있는 지층에서는 백금, 금, 크롬과 그리고 자연 상태에서는 좀처럼 발견되지 않는 자연 철 입자가 높은 비율로 있었다. 남미 안데스 산맥에 있는 화산암은 크롬이 풍부하여 운석이 떨어졌을 때 이 화산암이 소구 체에 크롬을 공급하였음을 보여준다. 운석 충돌로 거대한 화재에 의해서 남미 지역에 살던 거대 동물들도 멸종했다. 또한 당시 토양에서 비교적 풍부하게 나타나던 뼈와 사람들이 남긴 장식품 등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결국 영거 드라이아스는 지구에 매우 광범위하게 미쳤음을 보여준다.


2000년대 초 일부 과학자가 혜성이 떨어져 폭발을 일으켜 북아메리카에 화재가 발생하면서 분순물들이 대기를 뒤덮으며 태양 빛을 차단했고, 지구 온도가 급강하했다고 주장했다. 과학자 알렌 웨스트(Allen West) 연구팀이 빙하 속에서 발굴한 아이스 코어(ice cores) 안에서 거대한 산불의 흔적이 발견하여 당시 큰 화재가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는 주장(2018) 등 여러 연구결과 발표되었다. 예일대학의 제니퍼 말론(Jennifer Marlon) 교수는 당시 침전물에서 신드리아스 기에 화재가 발생했다는 증거를  발견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아직도 이점에 대해서는 논쟁이 끝나지 않았다.


2019년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엘진(Elgin) 인근 호수 침전물에서 천체 충돌설을 뒷받침하는 추가적 증거가 발견되었다. 신드리아스기의 침전물에서 비정상적으로 많은 플래티넘과 검댕이 나왔다. 플래티넘은 소행성이나 혜성 같은 지구 밖 천체와 연관돼 있으며, 검댕은 대규모 화재가 있었다는 점을 나타낸다. 이와 함께 대형 초식동물의 배설물과 관련된 진균 포자가 신드리아스기가 시작되면서 줄어든 것도 확인했다. 이는 빙하시대의 거대 동물이 줄어들기 시작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여기서 확인된 증거들은 북미에서 유럽, 남미와 남아프리카 등 다른 지역에서도 똑같이 확인되고 있어 지구 전체에 걸쳐 일어난 현상일 수 있다.


신드리아스기 시작 직전인 1만3000년 전에 지구에 충돌한 혜성이 인류 문명을 근본적으로 바꾸었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었다. 북미와 그린란드 등 혜성 충돌 현장에서 백금을 녹일 극도로 높은 온도의 증거와, 다이아몬드보다 단단한 초고경도 나노다이아몬드를 발견했다. 이 같은 물질은 폭발의 고온으로 생성될 수 있거나 또는 혜성 내부에 존재할 수 있다. 당시 혜성 파편들이 비처럼 쏟아져 일대 격동 속으로 빠져들었을 것으로 본다. 혜성 충돌은 서남아시아의 비옥한 초승달 문명의 기원과 관련이 있는 세계 최초의 사원인 터키에 있는 괴베 클리 테페의 거대한 돌기둥에 기념된 것으로 추정한다. 이는 가설 차원이지만 흥미롭다.

https://www.sciencedirect.com/science/article/abs/pii/S0012825221001781?via%3Dihub


먹을 것이 부족해지자 인간들 간의 생존경쟁은 가열해지고 전쟁도 시작되었다. 1960년대에 아프리카 수단 북부에 속해있는 나일 계곡에서 제벨 사하바(Jebel Sahaba) 무덤이 발굴됐다. 61구의 유골이 발견됐는데 적어도 1만30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된다. 마지막 빙하기의 말기시대의 유골이다. 유골 상당수에서 창이나 화살 같은 무기에 찔린 것으로 보이는 상처들이 발견돼 전투나 학살의 흔적으로 추정된다. 이전까지는 ‘일회성 학살’의 흔적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조사 결과 수년간 지속된 산발적이고도 반복적인 폭력의 흔적이 확인되었다. 이 폭력은 해당 기간 동안 발생한 급격한 기후와 환경의 변화 때문에 촉발된 것으로 보인다. 이 유골들을 다시 조사한 결과 사망 당시 생겨 아물지 않은 상처와 그 이전에 생겨 아물었던 상처 등 100여개가 추가로 발견됐다. 유골들 중 40%가량에서 이 같은 상처가 발견됐다. 이들이 생애 전반에 걸쳐 여러 차례의 습격과 매복, 전투를 겪었음을 시사한다. 상처들과 유골에서 발견된 무기의 특성 등을 감안할 때 이 같은 폭력이 같은 공동체 내에서, 또는 개인 간에 발생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해당 지역에서 경쟁 관계에 있던 공동체들이 기후변화에 의해 부족해진 음식과 자원을 놓고 경쟁을 하다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마지막 빙하기’의 끝 무렵인 1만1000년 전부터 2만 년 전 사이, 빙하가 지구 북반구를 덮으면서 기후변화가 발생했다. 기후변화로 매우 건조해진 기후 때문에 넓은 지역에 분포하던 여러 공동체들이 상대적으로 사냥이 용이했던 나일계곡으로 몰려들었을 것이다. 한정된 자원 때문에 ‘피난처’가 결국엔 ‘전쟁터’로 변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21세기의 지구온난화와 환경파괴로 언젠가는 식량위기가 닥칠 것이다. 지구가 전쟁터로 변할지 알 수는 없다. 역사를 돌아보면 강대국이 약소국가를 약탈하여왔음을 생각하면 오싹하다. 그것이 자연계의 모습이겠지만 잔인한 인간은 모습이 다시 드러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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