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북아프리카의 코끼리와 마스토돈 같은 장비목(長鼻目) 대형 초식동물은 6천만 년 전부터 처음 3천만 년 간은 느리게 진화하며 종 분화가 적게 이루어졌다. 이 기간에는 대부분의 장비목 동물이 작은 개에서 야생돼지 크기로 별다른 특징을 갖지 못했으며 지금의 코끼리와 닮은 점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약 2천만 년 전 아프로-아라비아 지각 판이 유라시아 대륙과 충돌하면서 장비목 동물들은 극적인 진화 과정을 겪었다. 유라시아는 물론 북아메리카로 다양한 마스토돈 급 장비목 동물이 퍼져나가면서 각자의 환경에 맞춰 빠른 진화를 했다. 아프리카에서 벗어난 뒤에는 25배나 빠르게 진화하며, 같은 서식지에서 사는 장비목의 여러 종 사이에서 틈새를 차지하는 종이 새로 등장하는 무수히 많은 종 분화가 이뤄졌다. 계속 바뀌는 기후로 인한 서식지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는 종은 죽음을 맞으면서 한때 다양하게 종 분화하며 널리 퍼졌던 마스토돈은 아메리카 대륙에 몇 종만 남게 됐다.
2008년에 매머드 게놈의 70%를 해독하여 코끼리의 진화 경로를 알게 되었다. 코끼리는 약 530만 년 전 코끼리와 매머드의 공통조상으로부터 갈라져 나왔다. 약 420만 년 전에는 아시아코끼리와 매머드가 갈라져 나왔다. 이때까지는 모두 아프리카에서만 살았다. 그 뒤 아시아코끼리와 매머드는 유라시아로 이동했다.
기존의 가설에 의하면 대략 300만 년 전 남부매머드(학명 Mammuthus meridionalis)가 아프리카를 떠나 유라시아로 넘어왔다. 매머드는 빙하시대 시베리아와 북미 같은 추운 지역에 진출하며 많은 변화를 겪었고 여러 종으로 분화했다. 매머드는 150만 년 전 베링 해를 건너 처음 북미에 진출했다. 이후 세 가지 가설이 존재한다. 첫 번째 가설은 이 주인공이 남부매머드이고 시베리아와 독자적으로 진화해 컬럼비아매머드가 됐다는 시나리오다. 두 번째 가설은 처음 진출한 남부매머드는 소멸했고 그 뒤 두 번째로 이동한 스텝매머드가 진화해 컬럼비아매머드가 나왔다는 시나리오다. 세 번째 가설은 150만 년 전 처음 북미에 진출한 게 스텝매머드라는 것이다. 이들이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하면서 스텝매머드(학명 M. trogontherii)가 나왔고 이어서 털매머드(M. primigenius)와 컬럼비아매머드(M. columbi)로 진화했다.
2021년 연구결과에 의하면 이러한 기존의 가설은 틀렸다. 즉 150만 년 전 당시 육지로 연결된 베링 해를 처음 건너간 건 165만 년 전 시베리아 북동부에 살았던 ‘크레스토프카’ 계통이다. 후기 플라이스토세에 살았던 컬럼비아매머드 게놈의 약 40%가 이 계통에서 온 것으로 나왔다. 한편 130만 년 전 살았던 화석과 60만 년 전 화석은 게놈 분석 결과 둘 다 털 매머드로 밝혀졌다. 그리고 컬럼비아매머드 게놈의 40%가 이들에게서 왔다. 컬럼비아매머드는 약 42만 년 전 크레스토브카 계통과 털 매머드가 만나 태어난 잡종이다. 서로 다른 두 종 사이의 잡종이 새로운 종이 되는 현상을 ‘잡종 종 분화(hybrid speciation)’라고 부른다. 스텝매머드는 게놈 정보가 없어 확신할 수는 없지만, 초기 털 매머드에서 100만 년 전쯤 갈라진 한 계통으로 추측했다. 시베리아의 털 매머드는 약 10만 년 전 다시 한 번 북미로 진출해 그 지역에 살고 있던 컬럼비아매머드와 접촉이 있었다. 컬럼비아매머드 게놈의 12%가 후기 플라이스토세의 털 매머드에서 온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즉 42만 년 전 크레스토브카 계열과 털 매머드 사이의 잡종으로 태어난 컬럼비아매머드의 후손이 약 10만 년 전 북미로 건너온 털 매머드와 또 만나 피가 섞인 것이다.
약 300만 년 전에는 아프리카와 동아시아의 코끼리와 스테고돈이 끊임없는 진화 경쟁에서 승리한 듯 보였으나 빙하기 도래로 타격을 받으면서 살아남은 종은 더 혹독한 서식 환경에 적응해야 했다. 대표적인 예로 매머드는 추위에 견디기 위해 두껍고 텁수룩한 털을 갖고 눈을 헤치고 먹이를 찾기 위해 더 큰 상아를 갖게 됐다. 장비목 동물이 맞은 마지막 멸종의 절정이 아프리카에서는 240만 년 전, 유라시아와 미주에서는 각각 16만 년 전과 7만5천 년 전인 것으로 분석했다. 이 시기는 정확한 멸종 시점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각 대륙의 장비목 동물들이 더 큰 멸종위험에 당면하게 된 때를 나타낸다.
지구는 마지막 대빙하기(11만~ 1만2천 년 전)가 끝나면서 북아메리카, 유럽, 아시아 등을 덮고 있던 빙하가 서서히 사라지고 툰드라, 초원 지대가 형성되었다. 이에 따라 울리 매머드, 스텝 들소, 검치 호랑이와 같은 대형 포유류가 등장했다. 아시아계 수렵 민족인 초기 인디언(Paleo Indians) 클로비스 족(Clovis people)이 북아메리카로 들어와 매머드 등을 사냥하며 살기 시작했다. 기원전 12만3000년부터 기원전 1만 년에 유럽에서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초식 곰(학명 Ursus spelaeus)은 마지막 빙하기에 사라졌다. 그런데 이들 곰의 이빨 화석에서 거친 음식을 먹어 마모된 흔적이 발견되었다. 곰이 초식을 시작한 것은 50만 년 전으로 초식으로 살아온 기간이 50만 년 동안 계속되었음을 보여준다.
매머드는 1만 년 전까지도 시베리아와 북미 일대에 살았다. 시베리아 북동부 브란겔 섬에 고립돼 왜소화된 매머드는 3700년 전에 멸종했다. 매머드는 대부분 빙하시대(플라이스토세) 시베리아나 북아메리카처럼 추운 곳에 살았기 때문에 영구동토에 보존돼있는 사체가 발견된다. 뼈뿐 아니라 살도 남아 있는 것도 발견된다.
만빙 기(晩氷期, late glacial time)는 마지막 빙하기의 말기로 약 1만 5000년 전부터 기원전 1만 년 전까지의 5000년간을 말한다. 지구는 약 1만2천800년 전경 만빙기의 마지막 시기인 신드리아스기(Younger Dryas, 12900~11700)에 혹독한 추위가 다시 찾아왔다. 매머드 등 30여종이 넘는 대형 동물이 멸종하고 인류도 급격히 쇠락하며 생존 위기를 겪었다. 그 결과 매머드와 클로비스 족도 사라졌다. 그러나 애리조나대학의 밴스 홀리데이(Vance Holliday) 교수는 대형 포유류가 갑자기 사라진 것이 아니며, 매머드의 멸종이 세계 전역에서 각각 다른 시기에 걸쳐 서서히 이루어졌다고 주장했다.
고대의 코끼리, 매머드, 마스토돈 등은 마지막 빙하기 말기에 인류 조상의 무차별적 사냥으로 멸종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코끼리의 조상인 장비목(長鼻目) 대형 초식동물이 기후변화에 따른 극단적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멸종했다는 연구 결과가 2021년에 나왔다. 장비목 동물이 수백만 년 걸쳐 기후 변화가 가져온 점진적 쇠퇴를 겪어왔으며 마지막 빙하기 말기의 매머드와 마스토돈 멸종은 이런 과정의 종지부였다는 것이다. 예상과 달리 인류 조상의 확산과 대형 초식동물 사냥 능력 확대 등과는 상관관계를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자료는 약 150만 년 전 대형 초식동물 사냥이 인류 조상의 중요한 식량원이 되면서 고대 코끼리 멸종에 인류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주장을 반박하는 것이다. 그러나 장비목 동물의 멸종위험이 이미 절정에 달한 뒤 현생 인류가 관련 지역에 정착했지만, 인류처럼 영리하고 적응력이 뛰어나고 사회성을 가진 포식자는 최후의 일격을 가했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