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장류에서 성찰하는 인간으로의 진화


중생대(Mesozoic era)는 약 2억3000만~6500만 년 전의 시기로 공룡이 살고, 포유류가 등장한 시기이다. 공룡은 약 65백만 년 전인 백악기(Cretaceous period) 말까지 번성하였다. 그리고 멸종하였다. 공룡이 사라지자 포유류가 번창 하였다. 초기 포유류는 아주 작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쥐 정도의 크기였던 초기 포유류가 코끼리 크기로 진화하는 데 2400만 세대가 걸렸다. 기존에는 쥐 크기에서 코끼리 크기까지 진화하는 데 20만~200만세대가 걸린 것으로 추정해 왔다. 포유류의 크기가 커지는데 최소한 수천만 년이라는 시간이 흐른다. 우리 같은 현대인이 지구상에 등장한 것은 백만 년도 안 되었다. 인간의 뇌도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에 진화된 것이다.


진화의 역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이지만 인간의 뇌와 지능진화가 일어난 수백만 년은 인간에게는 매우 긴 시간이다. 수백만 년 동안 인간의 뇌가 커지고 지능이 좋아지는 진화의 과정이 점진적으로 일어났겠지만 중간에 비약적인 진화가 있었다는 주장도 있다. 인간의 뇌는 호모 속이 등장할 무렵인 약 200만 년 전에 한 차례, 그리고 네안데르탈인이 등장할 즈음인 약 50만 년 전에 다시 한 차례 급격히 커졌다는 주장이다(계단식 진화라고 부른다.). 반면 점진적인 진화를 주장하는 과학자는 침팬지와 비슷한 크기였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부터 호모 속에 이르기까지 두뇌 크기가 점진적으로 증가했다고 주장한다. 계단식인지 점진적인지는 과학자들의 끊임없는 연구와 논쟁이 지속될 것이다.


척추동물은 파충류와 양서류를 거쳐 포유류로 진화했다. 이어서 영장류와 유인원을 거쳐 현생인류가 탄생했다. 길고긴 세월동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다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동물과 인간의 뇌는 진화과정에 나타났고 유사성이 있다. 간단한 것이든 복잡한 것이든 모든 뇌는 뉴런이 기본 구성요소이고 지구상의 모든 동물 종은 뇌와 뉴런 안에서 거의 동일한 전기화학적 소통 시스템을 이용한다. 우리가 ‘의식’이라고 부르는 것은 뉴런을 따라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전기신호에서 나온다. 이를 부인하고 싶겠지만 전기신호가 없어지면 바로 의식은 사라진다. 이 전기신호는 화학적 신경전달 물질을 이용해 시냅스를 건너 다음 뉴런을 활성화시킨다. 본질적으로 뇌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다른 모든 종의 중추신경계와 마찬가지로 그냥 전기화학적 회로 판이라 할 수 있다.


모든 동물이 전기신호에 따라 뇌와 신경세포가 움직이는 것은 같지만 종들 간의 지능차이는 크다. 유인원과 인간은 유전적으로 99%정도 비슷하지만 인간의 뇌는 유인원에 비하여 크고 지능도 훨씬 뛰어나다. 유인원과 인간의 뇌를 만드는 유전자가 다르기 때문이다. 줄기세포는 세포로 분화되기 전의 세포이다. 뉴런은 줄기세포에서 유래한 신경 전구세포(‘미완성 신경세포’를 말함)로부터 만들어진다. 신경전구세포가 충분히 증식되고 성숙하면 증식 속도가 늦어지면서 뇌세포가 완성된다. 고릴라와 침팬지 같은 유인원은 이것이 5일 만에 이뤄지는데 사람은 7일이 걸린다. 사람의 신경전구세포가 유인원보다 더 오랫동안 더 많은 분열을 일으켜 뉴런을 만든다. 그래서 사람의 뉴런 숫자는 유인원보다 3배 이상 많다. 이러한 차이를 만들어내는데 하나의 유전자(ZEB2)가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고릴라의 신경전구 세포에서 이 유전자의 발현을 억제하면 신경전구세포의 분화기간이 길어지고 고릴라의 뇌는 사람의 뇌와 비슷한 크기로 발달한다. 반면 사람의 뇌에서 이 유전자 발현을 촉진시켜 분화기간을 줄이면 유인원의 뇌와 비슷하다. 유인원에서 인간으로의 진화는 이렇게 약간의 차이로 발생하였다.


유인원과 인간의 유전자 차이가 미세하여 이를 주제로 한 영화도 나왔다. 우연한 실수로 유인원이 인간보다 지능이 좋아지는 설정이다. 2017년 개봉한 영화 ‘혹성탈출(원제: War for the Planet of the Apes)’은 프랑스 작가 피에르 불(Pierre Boulle, 1912~1994)의 1963년 소설『Planet of the Ape』이 원작이다. 동물을 대상으로 손상된 뇌기능을 회복시켜 주는 약물을 실험하던 도중 침팬지의 지능이 인간을 넘어선다. 개발된 약을 주사 받은 침팬지가 높은 지능을 갖게 되고 그 침팬지가 약을 훔쳐 동료에게 뿌린다. 실제로 20세기 이후 영장류들의 진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고릴라, 오랑우탄, 침팬지 같은 유인원을 포함한 영장류의 후두가 커지고 있고 진화 속도가 아주 빠르다. 후두가 커진다고 해서 사람처럼 곧바로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의사소통을 위한 기본조건은 충족시킬 수 있다. 어쩌면 꽤 오랜 세월이 흐르면 인간과 의사소통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상상도 해본다.


더욱이 원숭이도 유전자 조작으로 인간과 비슷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도 밝혀졌다. 큰 논란을 일으켰던 실험으로 2020년 독일과 일본에서 진행되었다. 원숭이 수정란에 인간 유전자 중 단 한개(ARHGAP11B)를 주입했더니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원숭이 태아의 뇌가 일반 원숭이 2배 수준으로 신 피질이 확대됐으며 뇌 표면 주름이 인간 같이 발달했다. 이 원숭이가 출산할 경우 예측 불가능한 결과 등 윤리적 문제 때문에 연구는 중단되었다. 인간은 진화의 마지막 단계에서 신 피질 등이 발달하면서 지능이 급격하게 좋아졌다. 이러한 신 피질 등의 발생에는 유전자가 관여한다. 인간의 유전자를 원숭이에게 집어넣자 인간과 비슷한 뇌로 분화된다는 것은 원숭이와 인간이 얼마나 가까운 종인지를 보여준다. 신 피질뿐만 아니라 해마 등도 인간의 지적능력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뇌 부위이다. 이 모든 것을 돌아보면 인간의 뇌는 다른 동물의 뇌와 공통점이 많음을 알 수 있다. 인간의 지적능력은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은 아니다.


인간의 뇌는 체구에 비하여 매우 크다. 이렇게 인간의 큰 뇌를 만드는 것은 유전자이다. 2018년 뇌를 크게 만드는 유전자가 밝혀졌다. 뇌의 크기를 제한하는 특정한 유전자에 변이가 생기면서 뇌가 커진 것이다. 그 결과 대뇌피질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뇌 속 작은 세포(방사신경 교세포, radial glia)와 관련된 유전자의 활성이 침팬지에 비해 인류가 41%나 낮다는 사실이 발견된 것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뇌의 크기를 제한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뇌를 직접 키우는 유전자도 발견됐다. 인간의 1번 염색체 위에 존재하는 특정 유전자(NOTCH2NL)가 방사신경교세포에서 특히 높은 활성을 보인다는 사실이 발견된 것이다. 염색체에 이 유전자가 없으면 뇌가 작아지거나 조현 병 증세를 보일 확률이 높아지고, 반대로 여러 개 있으면 뇌가 커지거나 자폐스펙트럼증후군에 걸릴 확률이 높아졌다. 인간은 침팬지와의 공통 조상과 갈라진 수백만 전 이후 이 유전자를 가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방사신경 교세포 양이 증가하며 대뇌피질의 뇌세포 수가 늘었고, 결국 뇌가 커질 수 있었다.


영화 ‘혹성탈출’에서 뇌세포를 증식하는 알츠하이머 치료용 바이러스로 인해 유인원들의 지능이 인간처럼 발달하고 인간의 지능은 퇴화한다. 실제로도 유인원 지능을 인간처럼 만드는 일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2020년 원숭이 태아의 뇌에 사람 뇌의 신 피질을 만드는 신경 전구세포를 증식시키는 유전자(ARHGAP11B)를 인위적으로 이식했다. 그러자 원숭이 뇌의 신 피질 부피가 일반 원숭이의 2배 수준으로 확대되고, 뇌 표면 주름도 인간 태아의 뇌와 비슷한 수준으로 발달했다. 인간 유전자를 주입한 원숭이의 뇌는 잉태 101일 만에 크기가 거의 두 배로 커졌다. 인간에게 신 피질이 발달하기 시작한 시기는 200만 년 전이다. 인간이 200만년에 걸쳐 이룬 진화를 유전자 조작 하나로 가능하게 한 셈이다. 그러나 연구진은 원숭이 태아를 중절하였다.


다만 여기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우리가 인간이라고 부르는 인간의 특성은 미미하다는 점이다. 우리 인간은 멸종한 네안데르탈인이나 데니소바인 같은 인간 속과는 다른 독특한 유전자는 1.5%에 불과하다. 나머지 98.5%는 네안데르탈인이나 데니소바인 등 사람(Homo) 속의 조상들과 공유하고 있다. 사람 속의 조상에게는 없는 사람 속만의 유전자는 7%에 그친다. 나머지 93%는 다른 동물과 같다. 인간만의 독특한 유전자는 아주 작다. 과거 진화과정에서 유전자의 혼합은 흔했고 인간을 독특하게 만드는 게놈 영역은 놀라울 정도로 작다. 하지만 인간만의 독특한 게놈 영역은 인간의 신경 발달 및 두뇌 기능과 관련된 유전자들이 고도로 집중된 곳이다. 이것이 인간만 지적능력을 낳았으니 우리는 그것을 동물과 구분하여 ‘인간’이라고 부른다. 비록 작은 영역이지만 현생 인류를 분명하게 구분 짓는 것은 분명하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93% 또는 98.5%는 인간 고유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https://advances.sciencemag.org/content/7/29/eabc0776



이렇게 유인원과도 가까운 인간은 자기 자신을 인식하고 스스로를 성찰할 수 있다. 필자가 생각하기에도 그것은 정말로 신비롭고 놀라운 일이다. 필자가 가장 놀랍게 생각하는 것은 ‘자아’를 인식하는 곳이 뇌인데 그 뇌가 자기 자신(뇌!)을 연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이러니 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최초의 생명에서 시작하여 지속적인 진화로 나타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인간의 의식은 고도로 발전했지만 그 의식이 인간에게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의식도 진화의 과정을 거친 것이다. 의식을 가질 수 있는 뇌 구조를 가진 동물은 사람뿐만이 아니다. 척추동물, 곤충 등 절지동물, 그리고 문어를 포함한 두족류도 의식이 있다고 한다. 물론 그 ‘의식’의 수준은 천차만별로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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