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원망해야하나
2021년 1월 23일 한 여자가 고속버스를 탔다. 옆 좌석에는 30대 남자가 앉았다. “안전 운행을 위해 안전벨트를 착용하세요.”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그러자 옆 좌석의 남자는 지퍼를 내리고 신체 중요부위를 노출했다. 그녀는 당황했지만 정신을 차리고 자는 척 하였다. 다시 용기를 냈고, 침착하게 기지를 발휘했다. 몰래 뒷좌석 승객에게 부탁해 음란행위를 촬영하여 경찰에 문자메시지로 신고했다. 신고를 받고 미리 출동해 있던 경찰은 현장에서 검거했다. 그러나 경찰은 ‘공연음란' 혐의만 적용해 검찰에 송치했다. 강제추행으로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경찰에서 조사받을 때도 ‘범인이 나를 알고 저지른 범죄가 아니라 해코지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며 신변보호 요청을 안 받아줬다. 과거에도 20대 남성이 버스정류장 의자에 앉아있던 여고생 뒤로 다가가 음란행위를 했는데, 이 남성은 강제추행으로 처벌받았다. 이 사건에서도 20대 남성은 여고생을 건드리지 않고 음란행위만 했을 따름이라고 말했다.
이런 사람을 변태라고 부르거나 정신병자로 여긴다. 변태성욕(sexual perversion)은 비정상인 성적 기호를 말한다. 정상인인지 아닌지는 대체로 비슷한 기준이 있지만 문화별로 큰 차이가 있다. 같은 문화 안에서조차 개인별로 상당한 차이가 있다. 그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정신의학에서는 성도착(paraphilia)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성도착증의 원인이 무엇인지는 많은 연구가 있지만 워낙 다양해서 한 마디로 말할 수는 없다.
성도착증이나 소아성애 같은 정신질병은 뇌와 관련성이 높다. 한 사례가 그것을 잘 보여준다. 40대의 한 미국인이 자신의 의붓딸에게 치근대고 아동포르노를 수집하는 이상행동을 보였다. 이 남성은 소아성애증(paedophilia)으로 진단받아 가족과 접촉할 수 없었고, 아동성추행으로 처벌받았다. 이 사람의 뇌를 MRI로 촬영했더니 종양이 뇌의 오른쪽 피질에 있었다. 이곳은 사회적 행동을 조절하는 뇌 영역이다. 어린 시절에 이 부분에 입은 손상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도덕적 판단능력에 장애가 생겨 반사회적 성격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그의 종양은 수술로 제거되고 이틀이 지나자 정상으로 돌아왔다. 더 이상 의붓딸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판정을 받고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로부터 1년 후에 그는 다시 두통이 생기고 아동포르노를 수집하기 시작하였다. 암이 재발한 것이다. 두 번째 수술이 이루어졌고 그는 정상으로 돌아왔다.
이외에도 소아 성애는 여러 가지 원인이 제시된다. 어느 날 별안간 성인이 소아 성애 성향을 느낀다면, 전전두 피질이나 측두 피질, 시상 하부의 뇌종양이 원인일 수 있다. 가끔은 치매 초기증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또한 뇌전증 때문에 측두엽의 앞부분을 제거한 수술 후 성적 취향이 갑자기 소아 성애로 변한 경우도 보고되었다. 소아 성애는 뇌 감염, 파킨슨병, 다발성 경화증과 뇌 손상으로도 발생할 수 있다. 또한 성도착증과 성범죄의 성향을 지닌 사람들의 약 절반이 의식불명을 일으킬 정도의 심각한 두부 손상을 입은 경우에도 나타난다. 게다가 유전되는 경향도 있다. 소아 성애자의 일가친척은 소아 성애 증 같은 일탈적 행동이 18%의 연관성이 보이는데 이것은 유전적 존재를 암시한다. 그 밖에 소아 성애자의 일부는 어린 시절에 종종 성인에게 성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2010년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한스 마르코비치(Hans J. Markowitsch)와 베르너 지퍼(Werner Siefer)가 쓴『범인은 바로 뇌다』는 범법자들에 대한 책이다. 끔찍한 살인을 저지르고도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 아무런 이유 없이 길가는 사람을 죽인 사람 등이 나온다. 이들 연쇄살인자나 사이코패스 중에는 뇌 손상이나 비정상적인 뇌를 가진 사람이 많다. 물론 환경적인 요인에 대해서도 쓴다. 자라면서 폭력이나 학대를 겪은 사람이 범죄자가 될 확률이 높음을 말해준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인간의 자유의지와 관련하여 어려운 문제가 발생한다.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는지는 아직 잘 모른다. 2020년에 인간의 자유의지와 관련하여 여러 분야 많은 학자들이 대형 연구에 착수했다. 그 결과를 기다려봐야 한다. 우리 인간사회의 법률처벌시스템은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는 전제를 한다. 자유의지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처벌근거도 없다. 자신의 범죄행위가 이미 운명적으로 행해지기로 되어있다면 어떻게 그를 처벌할 수 있을까. 어려운 문제이다. 물론 그로 인하여 피해를 입는 사람의 고통을 생각하면 그리고 사회의 유지를 위해서는 마땅히 처벌받아야 한다. 그러나 처벌로만 끝나면 재발을 막을 수가 없다. 환자의 치료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문제는 그러한 환자는 교육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유전자나 뇌를 ‘건드리는’ 것은 윤리문제에 부딪친다. 어렵다. 이러한 사람의 정신적인 질병을 진화 탓으로 돌려야 할지 신을 원망해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범인은 바로 뇌다』에는 이런 글이 나온다. “끔찍한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에게 특수 치료를 받을 기회를 주는 것이 정의에 위배되는 행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짐승 같은 인간이 범행을 속죄하지 않는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보복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이상으로 삼는 사회라면 아픈 사람, 아픈 범죄자도 인도적으로 치료해야 마땅하다.”
https://blog.naver.com/ksk0508live/2222532582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