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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는 우리 우주밖에 없는가?


우리는 빅뱅으로부터 우주가 탄생했다고 알고 있다. 지금 우리가 보는 우주가 그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는 우리의 모든 상상을 초월한다. 수조 개의 은하는 각각 수백억~수천억 개의 별을 가지고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우주의 크기는 약 940억 광년으로 우리의 입장에서 거의 무한대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우리 우주 외에도 다른 우주들이 존재한다는 주장도 있다. 


‘우주는 우리 우주만이 전부인가?’라는 질문이 나오는 것은 필연적이다. 과거에도 인간은 우주에는 우리 은하계만 있다고 알았던 오류의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우리의 우주에는 수도 없이 많은 은하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우주 외에도 또 다른 우주가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언젠가는 밝혀질지 모르지만 21세기 우리는 모른다. 우리가 아는 것이란 우리 인간의 인식능력에는 한계가 있으면, 따라서 우리가 아는 것이 ‘전체’일 수는 없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는 ‘전체’의 한 단면만을 포함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우주가 우리 우주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은 현대 물리학에서 처음 나온 것은 아니다.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주장되어온 ‘가설’로 2천 년이 훨씬 넘도록 증명되지 못했다. 기원 전 7세기의 아낙시만드로스(Anaximandros, 기원전 610~646)는 지속적으로 창조되고 파괴되는 수많은 우주가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에피쿠로스(Epicurus, 기원전 341~270)도 우리가 사는 우주 외에도 많은 우주가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20세기 들어 처음으로 다중우주를 주장한 사람은 1957년 프리스턴대학 수학과 학생이었던 휴 에버렛(Hugh Everett)였다. 그는 박사논문 주제로 다중우주를 다루었지만 관심을 받지는 못했다. 그에 의하면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삶과 죽음이 중첩된 것이 아니며, 상자의 뚜껑을 여는 순간 우주는 두 갈래로 갈라지고, 죽은 고양이와 산 고양이가 서로 다른 우주에 동시에 존재한다. 

http://home.catv.ne.jp/dd/pub/tra/EverettHugh1957PhDThesis_BarrettComments.pdf


휴 에버렛의 주장을 이해하려면 슈뢰딩거 고양이와 코펜하겐 해석을 알아야 한다. 고양이부터 만져보자. 고양이 한 마리를 상자에 놓고 실험을 한다고 상상해보자. 상자 안에는 유리병, 라듐, 가이거 계수기, 망치가 있다. 상자 안을 우리는 볼 수 없다. 라듐 핵이 붕괴하면 가이거계수기가 탐지하고, 망치가 유리병을 깨서 청산가리가 나오면 고양이는 죽는다. 라듐이 붕괴할 확률은 반반이다. 고양이가 죽을 확률은 반이다. 상자를 열어야만 고양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상자를 열기 전에는 살았거나와 죽었거나가 중첩되어 있다. 휴 에버렛은 고양이가 살아있는 세계와 죽어있는 세계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뚜껑을 열었을 때 보이는 세계에서 산다는 주장이다. 그의 이러한 해석은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수많은 다중우주 가설 중 하나로 남았다.


21세기 들어 ‘다중우주’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등장했다. 영화 ‘인터스텔라’(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2014년 개봉)에서 다루어진 과학 이론 중 하나가 ‘다중우주론’이다. 이 영화에는 수십 개의 이미지가 겹쳐진 장면이 나오는데, 주인공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우주가 공존하는 것을 보여준다. 


다중우주론에는 다양한 가설이 있다. 첫째는 인플레이션 다중우주 가설이다. 우주는 팽창을 하면서 양자 요동이 일어난다. 양자 요동은 우주 공간의 한 지점에서 에너지의 양이 변화하는 것으로 아주 잠깐 동안 입자와 반입자가 나타났다가 소멸되어 사라진다는 것이다. 반입자는 입자와 모든 것이 같지만 전하만 다르다. 물질이 반물질을 만나면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만나 전하가 소멸되듯이 둘 다 사라진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우연하게 소멸되지 않고 물질이 생길 수 있고 팽창하는 우주에서 발생하는 양자 요동으로 인해 새로운 우주가 생성된다는 가설이다. 다시 말해 빅뱅이 단 한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고 끊임없이 발생할 수 있다. 빅뱅이론에 의하면 약 138억 년 전 무한대의 밀도를 가진 특이점이 폭발함으로써 우주가 탄생했다. 극히 짧은 시간 동안 우주는 극단적으로 팽창했는데, 이를 인플레이션 우주론이라 한다. 1980년 물리학자인 앨런 구스(Alan H. Guth)가 처음으로 제안한 이론이다. 이를 기초로 다중우주론은 인플레이션 과정에서 다른 물리법칙들이 지배하는 ‘새끼’ 우주들이 계속 생겨났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평행 우주’라는 다중우주론도 있다. 예를 들어 인간이 살면서 무언가를 선택하면 그렇게 선택된 삶이 속한 우주에서 살게 된다. 동시에 그렇게 선택하지 않았을 때 살게 될 수도 있는 우주가 공존한다. 이처럼 수많은 우주가 평행을 이뤄 자신의 주변에 공존하고,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우주가 계속해서 분화해 나가 수많은 우주가 공존하고 있다는 가설이다. ‘브레인 우주론’이라는 다중우주론도 있다. 우리는 3차원의 세계에 살지만 우주는 우리가 인식할 수 없는 4차원 이상의 고차원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 브레인 우주론이다. 셀 수 없이 많은 다른 우주들이 존재할 수 있으며, 각각의 우주에서 물리법칙들이 서로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빅뱅 당시에 부분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팽창하였다면 수십억 개의 다른 우주가 존재할 수 있으며 각각의 우주는 약간씩이나마 다른 물리법칙이 적용될 수 있다.


다중우주론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많겠지만 일부 저명한 물리학자들의 주장을 소개한다. 이론물리학자 브라이언 그린(Brian Greene)은 ‘멀티 유니버스(Multi Universe)’를 주장하며 우리의 우주가 유일한지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했다. 크리스 임피(Chris Impey)는 자신의 저서『세상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2012)에서 양자 요동으로 수많은 우주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말했다. 마틴 리스(Martin Rees)는 무한히 많은 우주가 존재하고, 각각의 우주는 나름대로의 독특하며,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에서는 우리가 존재할 수 있도록 물질이 구성되어 있을 뿐이라고 믿었다. 2000년대에 리 스몰린(Lee Smolin)은 블랙홀이 만들어질 때마다 우주를 만들어 낸다고 주장했다. 우리가 보는 우주도 다중우주(multi·verse)의 단지 작은 ‘원자’ 정도 밖에 안 된다는 것을 함축한다. 


로저 펜로즈는 우주는 빅뱅으로 탄생했다가 소멸하며 반복적으로 이어진다는 주장을 펴왔다(Comformal Cyclic Cosmology, CCC). 고 스티븐 호킹 박사가 정립한 ‘호킹 복사’에 의하면 블랙홀은 광자와 중력자가 빠져나가면서 서서히 에너지를 잃고 증발하고 만다. 이러한 과정에서 블랙홀은 우주의 배경 복사에 흔적을 남기고 이는 우주가 사멸하더라도 없어지지 않고 다음 우주로 이어진다고 본다. 이전 우주에서 블랙홀이 증발한 지점을 고 스티븐 호킹 박사를 기리는 의미에서 ‘호킹 포인트’라고 명명되었다. 호킹 포인트가 약 100만 곳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로저 펜로즈(Roger Penrose) 연구팀의 관측으로 약 20곳의 유력한 흔적을 찾아냈다. 이것이 이전 우주의 블랙홀 증발 흔적이 맞는다면 허무맹랑한 이론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학계는 이번 논문에 대해서 그다지 신빙성을 두지 않는 듯하다. 2010년에도 비슷한 논문을 냈지만 학계의 지지를 받지 못했으며, 나중에 다른 논문을 통해 자료상 오류가 있는 것으로 반박을 받은 바 있다.


리사 랜들(Lisa Randall) 하버드대 물리학과 교수의『숨겨진 우주』(2008), 맥스 테그마크(Max Tagmark)  MIT 물리학과 교수의『Our Mathematical Universe』도 다중우주를 다룬 유명한 책이다. 2017년에 우리나라에서『맥스 테그마크의 유니버스』로 번역 출간되었다. 평행우주는 하나의 우주와 닮은꼴인 우주가 나란히 있다는 것이고, 다중우주는 이런 우주들이 불규칙하게 섞여 생성, 소멸하는 더 큰 차원의 우주라고 말한다. 1레벨의 다중우주는 ‘우리 우주’와 같은 크기의 공간인 평행우주가 모여 형성된다. 2레벨 다중우주는 우주가 급팽창하면서 새로 생겨나는 공간 때문에 우리가 영원히 관측할 수도, 도달할 수도 없는 곳이다. 3레벨 다중우주는 양자역학에서 파생된 것으로, 양자 힐베르트 공간의 무한 확장성을 바탕으로 한다. 4레벨의 다중우주는 수학적 우주가설을 바탕으로 한다. 수학적으로 존재하는 모든 구조들이 물리적으로도 존재한다는 게 이 가설의 핵심이다. 매우 진보적이자 20세기 최고의 신학자였던 한스 큉(Hans Küng, 1928~2021) 신부도 다중우주론을 인정했다. “솔직히 나는 다른 우주들의 존재가능성에 원칙적으로 반대하지 않는다. 다중우주에 대한 신학적 반론도 알지 못한다. 신이 무한하다면 무한한 우주가 하나든 여럿이든 자신의 무한성을 결코 제한받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정도로 다양한 특성을 갖고 있는 셀 수도 없는 우주 중의 하나에 불과하며,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는 우연하게 나타난 결과일 뿐이라는 것이 다중우주론의 개념이다. 다중우주는 흥미롭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아이디어이다. 그러나 다중우주 가설은 많은 비판을 받으며 과학으로조차 여기지 않는 과학자들도 있다. “무한은 수학적 완결성을 위해 필요한 개념이지만, 물리 세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수학자 다비트 힐베르트의 말 같이 그것이 존재하는지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더욱이 설령 우리 우주 이외에 우주가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우주와 영원히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그 존재여부를 확인할 방법도 없다. 다른 우주가 존재하지만 우리 우주와는 어떠한 인과관계도 없으며, 관측이나 소통도 전혀 불가능하다. 


다중우주론 자들은 우주배경복사에서 우주들이 충돌한 단서를 열심히 찾았지만 어떤 조짐도 발견하지 못했다. 다중우주론은 아직까지 순전한 가설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금으로선 우주가 하나인지 아니면 여럿인지에 대해서는 추측만 있을 뿐 확실한 것은 없다. 사실 우리 우주의 기원도 제대로 모르고 있다. 그러나 언젠가는 새로운 증거나 이론이 제기될 수 있다. 과학은 늘 열린 자세로 기다려야 한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당시까지 어느 누구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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