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인문사회

한국인의 초상: 오직 ‘나’와 ‘돈’


2014년 서 은국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가 개설한 ‘행복의 과학’을 수강하는 학생들에겐 첫 시간 질문이 날아간다. “너희를 가장 행복하게 해줄 사건은 무엇이냐.” 강좌를 개설한 15년 전부터 해마다 1위는 한결같다. ‘복권 당첨’.


그럼 경제적 풍요를 짧은 시간에 성취한 한국사회는 행복한가. 2010년대 초반 KAIST에서 교수와 학생들이 잇따라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남들보다 훨씬 많은 것을 가진 것 같은 사람들의 자살을 일반인들은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과학적인 연구에 따르면 경제적으로 살기 좋다고, 삶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고 자살률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미국에서도 살기 좋다는 곳에서 오히려 자살하는 사람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적 풍요가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일까. 1974년에 나온 이스터린 패러독스(Easterlin Paradox)는 경제적 발전단계와 사회체제와 상관없이 일정 시점을 지나면 소득수준이 더 높아져도 행복도가 그만큼 높아지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도 행복정도는 1980년대까지 조금 높아지다가 1990~2005년 사이엔 오히려 떨어졌다. 물론 이러한 패러독스는 한 나라 내의 세대 간에만 적용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즉 자식이 부모보다 더 부유하더라도 더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이민자들이 알게 된 것은 부유한 나라의 국민들이 가난한 나라의 국민들보다 더 행복하다는 것이다. 반면 안구스 디톤(Angus Deaton)은 소득수준에 관계없이 경제성장은 삶의 만족도를 낮춘다고 결론 내렸다. 이것을 경제성장·불행 패러독스(paradox of unhappy growth)라고 부른다. 소득수준과 부는 물론 인간행복의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얘기이다.


그럼에도 우리사회는 돈이 모든 것일 정도로 삶의 모습은 척박하다. 수백만 원대의 제품이 당일 소진되고 일부는 판매되자마자 원래 가격의 50~100%가량 웃돈까지 붙는다. 1000만 원을 훌쩍 넘는 시계가 대부분 들어온 날 바로 팔린다. 주말에는 백화점 명품매장에는 사람이 몰려 입장도 쉽지 않았다. 수요가 너무 많아 수백만 원을 주고도 기다려야 한다. 온라인상에선 특정 브랜드 매장의 제품 판매 상황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사람들까지 생겨났다. 우리나라 명품 시장 이야기이다. 50~60대 중장년층의 전유물이었던 명품은 거의 모든 세대로 옮아가고 있다. 특히 20대 젊은 층이 크게 늘어났다. 1000만 원대 고가 명품도 20~30대 구매율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 10대들도 눈에 띤다. 명품을 사기 위해 전날부터 노숙도 한다. 10~20대의 경우 과시심리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사회 초년생이나 직장인도 일상생활에 드는 비용을 줄이고 사치품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 소비심리도 나타나고 있다. 극단적인 베블런 효과(Veblen effect. 가격이 오르는데도 일부 계층의 과시욕이나 허영심 등으로 인해 수요가 줄어들지 않는 현상)이다. 그래서 전 세계의 최고급 브랜드들이 한국 시장에 앞 다퉈 들어오고 한국 시장 선점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한국 사람은 물건은 비쌀수록 잘 사는 미스터리 민족’이란 조롱 섞인 말을 듣는다. 반면 미국에는 트로피 와이프(trophy wife)라는 조롱 섞인 말이 있다. 트로피 와이프는 성공한 남성들이 성공과 함께 ‘마누라’를 ‘업그레이드’ 하여 바꾸고 수차례의 이혼과 결혼 끝에 얻은 젊고 아름다운 주부를 말한다. 이 용어는 1980년대 말 미국의 경제신문인 포춘(Fortune)이 커버스토리로 보도하면서 널리 알려진 단어이다. 성공한 중장년 사람들이 부상(副賞)으로 트로피를 받듯이 ‘새로이’ 젊고 아름다운 아내를 얻는다는 뜻에서 이런 명칭이 붙었다. 2000년을 전후해서는 ‘트로피 남편(trophy husband)’이라는 용어까지 등장하였다. 이는 여성의 사회 참여가 늘어나면서 성공한 아내를 위해 가사와 육아를 대신 책임지는 남편이라는 뜻이다. 간디는 “이 세상은 우리의 필요를 위해서는 풍요롭지만 탐욕을 위해서는 궁핍한 곳이다.”고 말했는데 적절한 지적이다. 성공을 과시하기 위하여 최고가 브랜드의 양복, 최고가 브랜드의 ‘금딱지’ 시계, 최고가 브랜드의 핸드백 등등. 우리나라의 1인당 고어텍스 섬유 소비량이 세계 최고라고 한다. 반면 속옷에 들어가는 고어텍스 섬유 소비량은 세계 최저 수준이라 한다. 우리를 비극으로 몰아넣는 것은 가난이 아니라 집착이다.


왕자의 옷을 입고

목에 보석 줄을 늘인

아이는

도무지 즐겁게 놀 수가 없습니다.

옷이

걸을 때마다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옷이 스쳐서 닳지 않을까 먼지가 묻지 않을까 겁이 나서

세상 사람들과 섞이기를 싫어하고

움직이기조차 겁을 낼 것입니다.

당신의 옷차림의 구속이

만일 대지의 건강한 티끌을 멀리하게 하고

평범한 인간생활에 드나들 권리를 빼앗아간다면

그것은 아무런 이득이 안 될 것입니다.


타고르의 『기탄잘리』 중에서


21세기가 20년이 넘게 지나갔음에도 우리 사회는 변함이 없다. “당신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17개 선진국 중 14개국은 가족이라고 답했다. 복수로 대답하도록 한 설문결과 전 세계적으로 가족 38%, 직업 25%, 경제적 풍요 19%로 나타났다. 우리나라만 돈 즉 ‘경제적 풍요’라고 답했다. 우리나라 사람은 경제적 풍요가 1위, 건강이 2위, 가족은 3위로 16%로 17개 국가 중 16위를 차지했다. 자기 자신의 경제적 풍요와 건강만 생각하는 이기성이 엿보인다. 심지어는 가족의 중요성도 3위를 차지한다. 종교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다는 응답률은 미국이 15%로 가장 높았다. 한국은 1%로 17개국 중 15번째였다. 종교적인 태도도 이중적이다. 극성맞은 종교생활과는 달리 그것의 의미는 아주 낮다. 단지 사후 삶에 보험을 드는 태도가 엿보인다.

https://www.pewresearch.org/global/2021/11/18/what-makes-life-meaningful-views-from-17-advanced-economies/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토마 피케티와 노벨경제학상 그리고 한국의 불평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