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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인문사회

금 수저 흙 수저는 동물로부터 물려받은 유산


세습은 재산, 신분, 직업 등을 대대로 이어간다는 뜻이다. 부의 세습, 권력의 세습, 종교계 세습 등이 대표적이다. 리처드 리브스(Richard Reeves)는 자신의 저서『20 vs 80의 사회』(2019년 번역출간)에서 ‘20대 80의 법칙’을 제안하며 상위 20%가 전체 부의 80%을 차지하고 자기들만의 성을 쌓고 80%가 넘어오는 것을 막으려고 시도해왔다고 주장했다. 특히 많은 재산을 이용하여 자식을 기부금 입학, 동문 자녀 우대제도, 청탁 등의 불공정 카르텔을 만들어 교육시켜 세습시키려고 시도한다.


소득불평등은 교육과 기회의 격차를 확대하고 세대 간 사회적 이동의 가능성을 축소한다. 물론 선진 유럽 국가들은 소득불평등에도 불구하고 교육에서의 평등성을 잘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국가에서는 개인의 노력과 능력, 실적 여부가 자신의 위치를 결정하는 실력사회(meritocracy)는 소멸하고, 부모의 소득, 재산과 사회적 지위가 그 자식의 교육, 직업, 소득, 부와 결혼까지 좌우하는 세습 사회(hereditary society)가 나타난다. 특권 집단은 언론과 정치권력 등을 다양한 방법으로 통제하며 자신들의 입지를 더욱 강화시킨다. 전근대 사회의 악습인 세습적 신분제가 실질적으로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거의 모든 인간에게 공유하는 본능에 가깝다. 그래서 토마 피케티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세습 자본주의(patrimonial capitalism)’라고 부른다. 세습 자본주의는 선진국을 포함하여 모든 인간에게 나타나는 세계적인 현상이다. 피케티는 나아가 “소득 상위 1%에 해당하는 이들이 정치 영역과 결탁해 그들만의 리그를 구조화한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19세기 ‘세습자본주의’가 돌아온 것이다. 생산을 바탕으로 창조된 부가 아닌 물려받은 부가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다.


2019년 <시사저널>이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결과가 있다. 설문조사의 결과를 요약하면 우리나라는 불공정하고, 세습사회이며, 특권과 반칙이 난무하고, 노력으로 계층 이동을 할 수 없는 사회이다. 90.1%가 우리나라가 세습사회라고 응답했고 20대~50대는 90%대, 60대 이상은 80%대이다. 세습 현상이 점점 심화되고 있느냐는 질문에 84.7%가 동의하였다. 30대가 87.6%로 가장 높았지만 20대가 80.5%로 가장 낮았다. 우리나라에서 세습 현상이 악화된 분야로 재계가 41.1%, 정치계 27.7%, 법조계 12.3%, 학계 7.6%로 나타났다. 20~50대는 재계, 60대 이상에서는 다수가 정치계를 꼽았다. 개인이 열심히 노력해도 계층 이동이 어렵다는 의견에 82%가 동의했다. 60대 이상만 78.8%로 80% 미만이다. 또한 우리 사회에 노력으로 극복할 수 없는 특권과 반칙이 존재한다고 답한 비율이 80.5%이었다. 20~40대는 80% 이상의 응답률을 보였고, 50대는 76.6%, 60대 이상에서는 74.3%가 동의했다. 법이 누구에게나 공정하냐는 질문에 67.8%가 아니라고 답했다. 세습사회를 개혁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으로 공정한 법질서 확립과 사법 개혁이 27.7%로 가장 높은 응답률을 보였다. 정치 개혁이 22.5%, 언론 개혁이 20.1%, 교육 개혁이 14.9%, 재벌 개혁 10.5% 순으로 나타났다.


세습사회, 신분사회 같은 전근대적인 현상은 인간사회 고유의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과 동물이 공유하는 생존본능이다. 우리가 인간이 뭐 그렇게 대단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안다. 금 수저와 흙 수저 ‘문화’는 동물로부터 유래하였다. 말미잘 틈에 숨어 천적을 피하는 크라운 피쉬(Amphiprion percula)는 말미잘을 새끼에게 넘겨준다. 더 좋은 말미잘을 물려받은 새끼는 숨는데 유리해서 생존능력이 크다. 일부 벌의 암컷은 어미로부터 벌집을 물려받는다. 좋은 벌집을 얻은 새끼 암컷은 번식에 유리하다. 수컷 뇌조는 번식을 할 때 근처에 수컷 어미가 있으면 암컷을 차지하는데 유리하다. 붉은날다람쥐는 모은 도토리나 솔방울을 새끼에 물려준다. 이에 따라 새끼들의 생존 격차가 벌어지고 생존·번식률도 달라진다. 아프리카 점박이하이에나의 세계에서 지위가 높은 어미를 둔 새끼는 우선적으로 사냥감을 먹을 수 있다. 어미의 지위가 낮은 새끼들은 죽기도 한다. 침팬지는 새끼에게 견과류를 깨기 위한 돌을 물려준다. 동물도 부모에 따라 새끼들의 운명이 결정된다. 동물도 사람처럼 집과 먹잇감은 물론 생존기술과 특권도 계승한다. 영장류, 어류, 조류, 곤충 등 다양한 동물의 사회성과 습성을 관찰한 결과이다. 어미가 ‘부유’하면 그 새끼도 둥지나 세력권, 먹이 그리고 생존 기술을 더 많이 가진다. 일부 동물은 세력을 합쳐 생존능력을 높인다. 흰개미는 두 무리가 힘을 합쳐 둥지를 공유한다. 이를 통해 자원을 얻을 기회를 높여 특권층으로 도약한다. 동물이나 인간이나 계층 및 불평등을 만들어내는 본능을 공유한다.

https://academic.oup.com/beheco/advance-article/doi/10.1093/beheco/arab137/6454996?login=true


인문학열풍, 사교육 광풍, 입시위주의 교육, 명품광란, 부모논문에 자식이름 올리기, 자녀 스펙 만들어주기 등 모든 것은 동물적인 생존본능일 뿐이다. 우리 사회가 어떤 ‘인간’이 권력을 잡던 똑같은 것은 사회의 도덕성과 윤리, 교육의 질 같은 기초적인 근간과 뿌리에는 무관심하고 수백 년 동안 유산으로 이어온 ‘당파싸움’에만 몰입하기 때문이다. 그 싸움이 단지 동물의 생존본능임은 인지하지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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