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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인문사회

선진국 한국에서 고생하며 살고 있는 사람들


선진국은 어느 국가이던 달성하려는 목적이다. 우리나라는 2020년대가 되면서 ‘선진국’이라로 불리기 시작했다. 2021년 7월 유엔무역개발기구(UNCTAD)는 우리나라를 선진국으로 분류하였다. 1964년 기구를 설립한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국내 총생산 대비 사회복지 지출은 1990년 2.6%에서 2019년 12.2%로 증가했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21세기 민주주의의 새로운 희망으로 불린다.


그러나 사람들은 신이 나지 않는다. 세계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했던「오징어 게임」은 우리 사회가 직면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고 우리의 삶은 드라마처럼 하루하루가 투쟁이고 힘들다. 그것은 통계로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66세 이상의 노인 빈곤 비율은 43.4%로 OECD 회원국 가운데 압도적 1위이다(2018). 자살률도 세계 1위이다. 1987~2017년까지 30년 동안 대부분의 OECD 회원국은 자살률이 감소했지만 한국의 자살률은 154% 증가했다.


출산율은 인구 학자가 불가능하다고 보았던 0.8대(2020년)를 기록했고 더 낮아지고 있다. 2019년 한국의 0~2세 아동 보육비율(보육시설을 이용하는 아동의 비율)은 62.7%로 스웨덴의 46.3%보다 훨씬 높지만 출산율은 더 낮아졌다. 개체군 생태학은 생물종의 숫자가 변화하는 요인을 연구한다. 동물은 먹이나 생존공간이 부족하여 새끼를 살릴 수 없거나 오히려 새끼가 자기 생존에 역효과를 주는 경우 새끼를 낳지 않는다. 생물의 역사에서 자원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개체수가 불어난 종은 개체수가 감소하였다. 동물의 세계는 숫자가 많아지면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치사율이 상승하여 개체군이 조절된다. 개체군 크기를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인구’이다.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1명 이하로 떨어졌다. 개체군이 조절되고 있다는 뜻이다. ‘자원의 한계’와 스트레스로 출산율의 조절은 개별 한국인으로서는 하나의 선택이다.


우리나라에서의 삶은 극한 경쟁의 연속이다. 입시전쟁, 성형수술, 명품사재기, 공무원 열풍과 취업 전쟁, 결혼 시장이라는 모든 것이 치열한 경쟁이다. 한국 여성의 5명 중 1명이 성형수술을 받았고 서울에 있는 20대 여성의 반이 수술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인의 외모에 대한 투자는 관상으로 알려진 고대 관습에 뿌리를 두고 있다. 1997년 IMF 금융위기로 기업이 노동자를 해고하는 것이 쉬워졌고 실업 위기를 초래하고 취업이 어려워지면서 직장을 얻기 위해 성형수술에 투자가 늘어났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기업들은 외모를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한국에서 성형수술이 많은 이유는 ‘성과’ 중심의 사회와 관련이 있다는 연구가 나왔다. 이 연구는 성형수술이 일탈이 아니라 힘들게 자신의 외모를 가꾸는 일이며 살을 빼고 좋은 옷을 입고 화장을 하고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일상적인 행동의 하나라는 주장을 한다. 2018년 스탠퍼드 대학에서까지 이런 연구를 하여 발표한 자료이다.

https://humsci.stanford.edu/feature/stanford-scholar-traces-roots-south-koreas-cosmetic-surgery-surge-0


경시 대회, 명문 대학, 슈퍼 모델, 대기업 임원, 고액 연봉, 슈퍼스타 케이 같은 것에 열광한다. ‘경쟁력’이란 말은 우리 사회에서 개인, 대학, 기업, 사회, 국가의 ‘궁극적’ 목표가 되었다. 즉 그것이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되었다. 경쟁은 다른 사람보다 앞서야 하고 뛰어나야 한다는 상대적인 경쟁이다. 타인은 나의 경쟁자일 뿐이다. 비교가 존재하는 사회에서는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경쟁은 끝없이 이어진다. 이러다보니 누구도 믿지 않는 경쟁사회가 되었다. 지나친 생존 경쟁은 모두를 파괴적인 삶으로 몰아넣을 수 있고 사회가 해체될 수도 있다.


불평등과 불공정이 심각하다. 서울대 입학생 중 소득 상위 10%인 비율은 2017년 44%에서 2020년 63%로 급증했다. ‘부모 찬스’를 악용하는 불공정에 대한 분노감정이 강하다. 인천국제공항공사와 서울교통공사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려고 하자 불평등에 반발하면서도 정작 불평등의 해소에 ‘공정’이라는 잣대로 분노했다. 사람들의 분노는 불평등한 결과보다는 ‘불공정한’ 기회였다. 부정부패와 불법, 촌지와 뇌물, 편법과 적당주의, ‘갑질’과 ‘빽’이 사회의 원리처럼 나돈다. 법과 규칙을 지키면 원칙주의자니 앞뒤가 꽉 막혔다니 하면서 비아냥거린다. 심지어는 ‘나도 그랬다! 뭐가 문제냐?’는 식의 국가 공식 사이트에 버젓이 큰소리치는 사회이다.


21세기가 이십 년이 지났는데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없는 좌우, 진보 보수 논쟁이 지속되고 국가가 둘로 나뉘어 있다. 상대방의 가슴을 향해 가혹하고 냉혹하고 살벌한 언어만 나부낀다.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언어가 일상이고 물지 뜯는 이념의 굴레에만 갇혀있다.


무슨 곡절 때문인지 세상이 들썩하는 대형 사고나 사건이 반복적으로 터진다.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세월호 침몰 사고 등. 하지만 그 원인이 명백하지만 그것의 근본적인 해결은 전혀 진척이 없다.


자살률이 폭증하여 초등학생까지 자살하는 최악을 달리고, 청소년의 미래가 부모의 지위에 따라 결정되고, 부정부패로 대형 사건사고가 반복되어도 잠시 논쟁하고 분노할 뿐 구조적인 해결을 할 어느 누구가 있는지 참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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