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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근수 Nov 26. 2021

기후변화에 의한 인간문명의 흥망성쇠


지난 2천 년 동인 발생한 화산 폭발은 수많은 중국 왕조의 몰락을 가져왔다. 화산 폭발로 형성된 황산 구름이 1~2년간 햇빛을 가려 여름철 기온을 낮추고 장맛비가 적게 오게 하여 가뭄이 들어 가축이 죽고 농토는 황폐화되어 흉년이 되면서 왕조의 몰락으로 이어진 것이다. 지난 2천 년 간 중국 왕조의 붕괴가 화산 폭발 뒤에 자주 일어났다. 학정과 부패, 인구밀도 증가 같은 정치, 사회경제적 압박이 이미 고조돼 있을 때는 작은 화산 폭발로 인한 충격만으로도 왕조가 붕괴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하지만 대형 충격 때는 ‘인간에 의한’ 압박 요인이 없더라도 왕조 붕괴로 이어졌다. 20세기 이후 화산 폭발은 지난 2천년에 비해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았지만, 중간 정도의 화산이 1970~1990년대 사하라 지역에서 총 25만 명의 사망자를 내고 1천만 명의 난민을 발생시킨 가뭄에 일조한 것으로 분석된다. 기후변화와 결합한 미래의 대형 화산 폭발은 가장 인구가 많고 소외된 지역의 농업에 심각한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

https://www.nature.com/articles/s43247-021-00284-7


소 빙하가 닥쳐도 문명은 망할 수 있다. 명나라는 몽골족이 세웠던 원나라를 쓰러뜨리고 한족이 세운 통일왕조로 1368년부터 1644년 멸망할 때까지 3백년 가깝게 중국 대륙을 지배했다. 명나라는 만주족이 세웠던 후금(이후 청나라가 됨)의 압박과 민란으로 멸망하였다. 명나라가 무너진 표면적인 이유는 농민반란이지만 농민 반란의 뒤에는 ‘대기근’이 있다. 중국인구사에 따르면 명나라가 멸망한 1644년의 총 인구는 약 1억5천 만 명으로 1630년 1억 9천만에 비해 4천 만 명이나 줄었다. 14년 사이에 인구의 약 21%가 준 것이다. 명나라에서 기근이 발생할 당시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도 인구가 감소했다. 이 시기는 900년~1300년에 나타났던 중세 온난시기(medieval warm period)가 끝나고 등장한 소 빙기(little ice age)이다. 소 빙기를 맞은 명나라의 여름은 짧고 습하며, 겨울은 길고 추웠다. 중부와 북부의 여러 성에 걸쳐 가뭄과 질병, 메뚜기 떼가 극성을 부렸고 황허 강의 수위도 낮아졌다. 명 왕조 말기 지구 기온은 중세 온난시기보다 1도 이상 떨어졌다. 평균 기온이 1도 정도 변하면 농작물 생산량은 10% 이상 감소된다. 당시 북반구 지역의 겨울 평균 기온은 20세기 후반과 비교해 약 2도 정도 낮았고, 이는 급격한 식량 생산 감소로 이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 세계적인 기온 급강하로 빙하가 확장되어 해수면이 낮아졌다. 극심한 기근으로 먹을 것이 부족해지자 굶주린 농민들은 수도 북경으로 진군하는 이자성의 군대에 합류하였고, 몇 년간 지속된 흉년으로 군사 체계가 무너진 명나라 군대의 저항은 미미했다. 결국 1644년 북경에 당도한 이자성의 황제 선언으로 명 왕조는 몰락하였고, 이후 등장한 청나라가 중화 대륙의 새로운 주인이 되었다.


쉽게 말하면 인간과 그 문명이란 자연에 종속되어 있다는 뜻이다. 물론 우리 인간이 자연을 개발하며 문명을 이루었지만 강력한 자연재앙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코로나19뿐만 아니라 지구상에 앞으로 어떤 재앙이 닥칠지는 예측하기는 어렵다. 어디서 어떤 대형 화산이 폭발할지, 대지진이 발생할지 분명하게 예측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소행성 충돌도 복병이다. 긴 시간으로 보면 우리 인간은 또는 우리 인간 종은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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