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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근수 Dec 05. 2021

인간이 노인으로 살 수 있는 이유

할머니 가설과 불에 감사할 노인의 삶


강에서 태어나 바다로 내려가는 태평양 연어는 일생에 오직 한 번 알을 낳고는 모두 죽는다. 이 한 번의 알을 강의 상류에 낳기 위해 세찬 물살과 소용돌이를 거슬러 올라가고 폭포도 뛰어넘는다. 게다가 강에 올라오면 아무것도 먹지 않고 몸에 저장된 지방을 사용한다. 강 상류로 올라가다가 곰에게 잡혀 껍질만 먹히기도 하고 인간에게 잡혀 먹힌다. 그들에게 내장된 유전자는 죽는다는 사실도 알지 못한 채 종족보존이라는 명령을 내리고 연어는 그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꼭두각시’ 같은 여행을 한다. 태평양 연어의 마지막은 비극적이다. 대부분 동물은 번식 능력을 잃으면 활동량이 줄고 금방 죽는다. 인간과 유전적으로 가까운 유인원조차 폐경기에 접어들면 활동이 대폭 줄고 여생의 대부분을 앉아서 보내다가 죽음을 맞는다. 유인원의 평균 수명은 고작 35~40년가량이다.


인간의 수명이 처음으로 크게 늘어난 것은 불을 최초로 사용하기 시작했던 50만 년 전의 일로 추정된다. 짐승의 고기와 생선을 구워 먹기 시작하면서 수명 단축의 주된 요인이었던 기생충의 유입이 크게 차단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안데르탈인 시대, 청동기 시대 그리고 BCE 0년에 끝난 철기 시대 평균수명은 약 30년이었고 가장 오래 살았던 사람도 45년을 넘기지 못했다. 중세시대에 이르러서도 앵글로 색슨 족 노동자들 중에는 45년 이상을 산 사람이 거의 없었다.


18세기에는 태어난 아이 중 43퍼센트만이 세 살까지 생존했다. 또한 파리 사람의 평균 수명은 23.5년이었다. 1758년의 파리 고아원에는 5천12명의 유아가 수용됐으나, 수용 직후에 1천479명이 사망하고, 유모에게 맡겨진 후 다시 2천270명이 사망, 불과 수개월 사이에 모두 합치면 74퍼센트라는 사망률을 보였다. 18세기에 태어난 아이 중 절반 가까이가 성인이 되기 전에 죽었다(교수신문, 2014.5.28.). 서기 1000년~1800년 사이에 영국 왕실 가족의 기대 수명은 50살이었다. 무려 8세기 동안 수명의 변화가 거의 없었다는 뜻이다. 이들이 유아기를 무사히 보내고 전쟁에서도 살아남아 21살을 맞이했다면, 기대수명은 65살이다. 따라서 부자들은 큰 일이 없는 한 70~80대까지 살았으며, 가난한 사람들도 운이 좋으면 그 정도의 수명을 누릴 수 있었다.


1900년에는 신생아의 10%가 1년을 넘기지 못했고, 5살까지 살지 못하는 경우도 전체의 20%에 달했다. 2000년에 이르러서 이 확률은 각각 0.7%와 0.8%로 감소했다. 산업혁명 이후부터 의학과 과학이 발전하면서 인간의 수명은 매년 약 3개월씩 수명이 연장되었다. 평균수명은 1920년대 40세 안팎, 1960년 52, 1971년 62, 2010년 79세로 증가했다. 현재 사망률 1위를 차지하는 암이 퇴치되면 인간은 150세까지 살 수 있다고도 한다. 1908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러시아의 생물학자 엘리 메치니코프(Elie Metchnikoff, 1845~1916)는 충분하고 균형 잡힌 섭생과 적당한 운동을 지속하면 최대 120세까지 살 수 있다고 예측했다(한국경제매거진, 2014.1.6. 김경집의 인문학 속으로). 오늘날 인간의 수명은 석기시대의 3배, 농업문명 시대의 2배이다.


인간의 수명은 이제 100살까지 연장되고 있다. 인간은 은퇴한 후나 폐경기 뒤에도 평소처럼 활동을 이어가며 수십 년간 살아간다. 과거에는 현재보다 더 활발한 신체활동을 이어간 흔적이 있다. 약 4만 년 전 수렵 채집을 할 시기에는 인간은 하루 평균 2시간 넘게(135분) 격렬한 신체활동을 했다. 세계보건기구가 권장하는 격렬한 신체활동 시간이 일주일에 75분 이상인 점과 비교하면 엄청난 신체활동량이다(2021년). 


할머니 가설이라는 것이 있다. 인간이 집단생활을 하면서 부모와 젊은 사람들은 농사를 짓고 식량을 확보하려 일을 한다. 체력이 떨어지는 노인은 집에 남아 집안일을 하거나 아기를 돌보고 교육시킨다. 오랜 세월 축적된 경험과 지식이 손주에게 전달되고 이로 인하여 지식이 축적되면서 인간문명이 탄생했다는 가설이다. 할머니가설은 21세기 우리나라에서도 강력한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 경쟁이 치열해지고 먹고살기 힘든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의 젊은이들은 부부가 모두 일하러 나간다. 젊은 부부의 육아는 이제 할머니들이 많이 대신하고 있다. 그것이 오래전 인간의 유전자에 각인된 것임을 누구도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만일 인간이 집단생활을 하지 않거나 노인이 필요하지 않은 사회였다면 인간도 연어처럼 늙으면 일찍 죽었을지도 모른다. 할머니 가설에 감사할 일이다.


나이가 들어 은퇴하면 자식들이 편히 쉬시라는 말을 한다.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말이니 고마운 생각이 든다. 그러나 신체활동을 줄이면 노화가 가속화되고 일찍 죽는다. 진화생물학적으로는 쉬는 것은 좋지 않다. 인간은 나이가 들어도 신체적으로 활동적인 상태를 유지하도록 진화했기 때문이다. 노인의 신체활동은 세포에 손상을 주지만 회복 과정에서 건강에 보탬이 된다. 손상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근육의 파열과 연골의 손상을 복구하고 미세한 골절이 치유된다. 또 세포의 노화를 막는 항산화제와 염증을 억제하는 항염증제의 분비를 돕는다. 몸을 움직이지 않거나 활동을 덜하면 이런 반응이 덜 활성화된다. 신체활동이 세포와 DNA 복구를 통해 당뇨, 비만, 암, 골다공증, 알츠하이머, 우울증 위험을 낮출 수 있다. 운동을 거의 안하고 지내면 특히 여성은 노인이 되어 관절염으로 고생하는 것도 이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일을 덜하고 은퇴하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하지만 진화생물학적으로는 맞지 않는다. 인간이 나이 들어서도 활동하도록 진화했기 때문에 건강하게 늙기 위해서는 신체활동을 더 해야 한다. 집안일만 해도 노인의 건강과 인지능력 유지에 좋다.

https://www.sciencedirect.com/science/article/abs/pii/S0960982221012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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