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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근수 Dec 08. 2021

술을 끊을 수 있는 초인과 소화기암


1000만 년 전에 살았던 영장류는 알코올분해효소는 아주 많았다. 당시 지구는 빙하기여서 먹을 것이 부족해지면서 땅에 떨어져 발효된 과일도 많이 먹었다. 술에 잘 취하는 영장류보다는 알코올분해효소가 많은 영장류가 더 많이 살아남게 되었을 것이다. 1000만 년 전경 알코올을 분해하는 효소가 진화했다는 의미이다. 야생 침팬지도 수시로 알코올을 먹는다. 어떤 침팬지는 취할 때까지 먹는다. 침팬지를 포함한 사람과 영장류는 포유류 가운데 알코올을 가장 잘 분해한다. 인간의 음주도 과일 먹는 영장류에서 기원했다. 오랜 기간 익은 과일을 찾아 먹으면서 발효되어 알코올이 있는 것을 먹다보니 알코올에 적응된 것이다. 인간의 음주취향은 진화의 산물이다.


술을 먹으면 소화기암에 걸릴 위험이 높아진다. 그런데 진화과정을 거치면서 소화기암에 걸리는 개체는 자연선택 되어 줄어들었거나 없어졌어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 인간은 술을 많이 먹으면 결국 암에 걸릴 위험이 커진다. 모순으로 보이지만 추정은 가능하다. 술을 먹어 암에 걸리는 시기는 이미 자녀를 낳은 후 노인이 되어 대부분 걸리기 때문이다. 본인은 암으로 죽지만 자녀는 여전히 이어졌기 때문이라는 나의 추측이다.


과음을 하는 것도 그렇지만 조금씩 술을 자주 먹는 것도 소화기암 발생의 주요 위험이 된다. 소화기에 발병하는 암은 과음을 하는 사람이 술을 잘 먹지 않는 사람보다 발생확률이 1.28배 정도 높다. 과음하지 않더라도 매일 조금씩 술을 먹는 사람은 1.39배 더 발생확률이 높다. 큰 차이는 없지만 차라리 과음하는 것이 소화기 암에는 좋다. 술자리에서 5~7잔을 먹는 사람은 소화기암 발생확률이 1.15배까지 증가하였으나, 그 이상으로 먹더라도 소화기암 발생 위험이 별 다른 증가는 없었다. 그렇다고 과음하면 소화기 암은 혹시 안 걸리겠지만 건강을 해친다. 음주 빈도 가 1회 과음보다 소화기암 발생에 더 중요한 요인이다. 이러한 결과는 소화기암의 발생 부위별(식도, 위, 대장, 간, 담도, 췌장)로 나누어 보았을 때에도 거의 일치하는 결과이다. 

https://jamanetwork.com/journals/jamanetworkopen/fullarticle/2783180


습관성 반주나 혼술 등 소량이더라도 자주 음주하는 습관을 주의해야 한다. 그나저나 친구들 만나거나 등산이 골프모임서 한 잔 정도 마시는 쾌감은 대단한데 소화기암을 무시하고 먹을지 말지. 각자 판단할 일이다.


문제는 술이 센지 약한지는 거의 유전자로 결정된다는 점이다. 자신이 마음대로 술을 조절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부모가 술이 세면 자녀도 술에 강하다. 백인과 흑인은 대부분 술이 센 유전자를 갖고 있지만 황색 인종은 센 사람이 반 정도, 약한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 약 10퍼센트, 두 가지 모두 가진 사람이 40퍼센트 정도라고 한다. 두 가지 모두 가진 사람은 처음에는 술에 약하지만 많이 마시면 점점 강해진다고 한다. 이런 유형의 사람이 알코올 의존이 많다고 한다. 


행위중독(behavioral addiction)이란 나쁜 결과에도 불구하고 쇼핑중독 등의 중독에 빠지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폭음(binge drinking)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술을 먹으면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dopamine)이 나온다. 기쁨의 화학물질(pleasure chemical)인 도파민은 ‘쾌감’(술 마시는 사람 뇌에 ‘보상’ 받고 있다는 신호)을 보내 음주를 계속하게 만든다. 이것을 차단할 수 있다면 폭음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미국에서는 연평균 10만 명에 가까운 사람이 알코올과 관련된 질병으로 사망하고 있다. 우리가 먹는 술마저도 우리가 먹는 것이 아니라 술이 우리를 먹는 것이다. 술이 도파민을 만들어내어 우리는 술을 사랑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알듯이 호르몬의 명령을 거스르는 것은 얼마나 힘들지 잘 알고 있다. 그것을 극복한 사람은 초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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