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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근수 Dec 24. 2021

의식은 흐르고 추억은 아름답다: 뇌 가소성 이야기


우리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피부로 촉감을 느낀다. 하지만 실제로는 뇌에서 보고 듣고 맡고 느낀다. 눈으로 보지만 실제로는 뇌에서 보는 일이 생긴다. 뇌는 기억을 저장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만은 않다. 뇌는 컴퓨터가 정보를 저장하는 것처럼 저장하지 않는다. 뇌는 전기와 화학물질로 필요에 따라 정보를 편집하고 재구성하여 저장한다. 이를 기억이라고 부르지만 실제로는 조립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잘못 조립될 경우 엉뚱한 정보가 나온다. 같은 경험도 시간이 지나면 다른 기억으로 남는다. 그래서 나이가 꽉 찬 ‘라떼’의 이야기는 허구가 많고 오류가 많다.


인간에게 가장 오래된 기억인 최초의 기억처럼 불분명한 것은 없다. 인간이 가진 태어난 후 최초의 기억이 무엇인지 자신도 잘 모른다. 은하수처럼 뿌옇게 모호하고 불분명하다. 심리학계에서는 사람이 떠올릴 수 있는 생애 최초의 기억을 평균 3~5살 사이로 본다. 평균 4.2살이라는 연구도 있고, 3.24살이라는 연구도 있다. 2021년에는 평균적으로 사람들이 기억할 수 있는 최초의 기억은 3.5살이 아닌 2.5살 때라는 연구도 나왔다. 생애 최초의 기억은 최초의 기억이 생긴 그 시점의 기억이 아니다. 무언가 기억이 뇌에 축적되고, 거기에서 편집하여 저장되어 있다가 편집되어 떠오른 기억이다. 실제로는 2.5살 때의 기억이 떠올리는 과정에서 3살 이후의 일로 잘못 생각해낼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최초의 기억을 계속 생각하면 할수록 더 오래된 기억에 다가간다. 그들의 부모에게 확인한 결과도 최초 기억은 자신들이 생각한 시기보다 더 이른 시기에 일어난 것으로 드러났다. 사람의 생애 초기 기억 연령은 개인마다 큰 차이가 있다. 우리의 지식을 함부로 절대화하지 말아야 한다는 경고장 같은 연구이다.


친구들끼리 옛날 추억을 회고하다보면 사람마다 기억이 다르다. 나는 그 자리에 끼지도 못한다. 대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인간이 가진 기억은 있는 그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뇌에서 편집된다. 기억은 결코 당시를 그대로 녹화해서 떠올리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기억을 떠올릴 때 녹화된 그대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뇌가 그것을 재구성하거나 편집하기도 한다. 우리가 또는 우리의 뇌가 기억을 편집하는 것은 새로운 정보를 오래된 경험과 통합시키는 작용이다. 그동안 인생사에서 다양한 지식과 경험을 하면서 뇌 안에서 갖고 있던 많은 지식과 정보가 재편집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잘못된 기억이 생성되기도 한다. 추억은 아름다운 것이다. 사실여부를 따지지 말자. 한편 범죄증거로 목격자의 진술을 받아드리는데 유의하여야 한다. 범죄현장을 목격한 사람들에게 그들이 보지 못한 사진을 보여줌으로써 사건과 관련자들을 기억하게 하는 방법은 잘못된 판단을 하게 할 수 있다. 이러한 편집기능은 학습에 이용할 수 있다. 학생들에게 정보나 지식을 전할 때 단순하게 전달만 하지 않고 스스로 정보나 지식을 편집하게 하거나 피드백을 주면 좀 더 정확한 기억을 하게할 수 있다.

https://www.pnas.org/content/118/51/e2117625118


또 하나 놀라운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정보를 다시 들으면 기존 정보가 저장된 곳이 아니라 다른 곳에 저장한다는 점이다. 과거에 했던 경험을 다시 하면 이를 기억하고 있는 뇌 신경세포 아닌 다른 신경세포에 저장한다. 기억은 한 군데에 고정되어 저장되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저장하는 세포들은 다이내믹하게 스위칭 된다. 만일 새로이 읽으면서도 기존 기억에 그대로 저장된다면 새로울 것도 없다. 그러나 그동안의 배우고 경험한 것을 배경으로 새로운 신경세포에 저장된다면 그 의미는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과거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으면 전혀 다른 의미가 다가온다. 아마도 과거에 읽었던 책이 다시 읽으면 새롭게 다가오는 이유일 수 있다. 


이 모든 것을 뇌의 가소성이라고 한다. 우리의 뇌, 의식, 지식, 자아는 끊임없이 달라진다. 무아, 피조물, 뇌의 가소성은 동어반복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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