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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근수 Mar 04. 2022

낯선 곳에서 잠을 설치는 이유: ‘야간근무’


특별한 이유 없이 밤에 잠이 오지 않으면 보름달을 앞둔 밤이었는지 확인해보자. 보름달이 뜨기 전 3~5일간 평소보다 더 늦게 잠이 들고 수면시간도 짧아진다. 이런 현상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곳에서 두드러지지만, 전기가 들어오는 도시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도 나타난다. 보름달로 이어지는 상현달이 뜨는 시기에 달빛은 점점 더 밝아지고 오후 늦게 또는 저녁 일찍부터 달이 떠 자연 빛이 늘어나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하현달도 달빛은 밝지만, 달이 뜨는 시점이 늦다. 침실 커튼을 어둡게 하면 잠을 잘 자듯이 밤에 달빛이 늦게 비추면 잠을 더 잘 잘 수 있다. 반면 달이 밝아지면 잠이 잘 오지 않을 것이다. 물론 달이 밝으면 고대 인류에게 포식자로부터 위험이 더 컸을 것이다. 이런 것들이 우리 유전자나 호르몬에 반영되어 있을 수도 있다.


우리도 여행을 가거나 낯선 곳에 거거나 낯선 사람과 함께 있으면 잠이 잘 안 오고, 때로는 한잠도 못 잔다. 인간뿐만 아니라 영장류나 유인원도 비슷하다. 야생 영장류나 유인원도 무리와 함께 잘 때 토막잠을 자며 낯선 곳에서는 쉽게 잠들지 못한다. 원숭이의 경우 아무리 잠을 못 잤거나 낮에 힘든 일을 했더라도 낯선 곳이거나 많은 동료와 함께 잘 때는 잠을 설친다. 밤에 사자 같은 포식자가 공격할까봐 무서워한다. 이들은 밤에도 깨어 무리의 구성원들과 사회적 관계를 더 가지기도 한다. 인간도 한밤중에 스마트폰 등으로 친구들과 대화를 하는 것과 유사하다. 초기 인류는 불을 다루기 전까지 사바나의 포식자에 극히 취약했고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려면 밤에도 소통해야 했다. 낯선 곳에서 깊이 못 자는 것은 유전자에 각인된 진화의 결과이다. 

https://elifesciences.org/articles/73695


일부 포유류나 파충류, 조류 등은 뇌의 반은 자고, 반은 깨어 있는 ‘단일반구 수면(unihemispheric sleep)’을 한다. 잠을 자면서도 천적들을 경계하기 위한 것이다. 


특히 낯선 곳에서 첫 날 밤에 거의 잠을 잘 못자는 사람이 꽤 있다. 잠을 자려고 해도 의식이 또렷하다. 이를 영어권 국가에서는 ‘첫 날 밤 효과(first night effect)’라는 부른다. 실제로 잠 자려는 우리의 의지에 관계없이 뇌의 절반에 해당하는 왼쪽 뇌는 자지 않고 활동하고 있다. 낯선 곳에서 잘 때 우리 뇌의 좌반구는 야간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자고 있는 사람은 좌측 뇌의 통제를 받는 오른쪽 귀가 훨씬 빨리 소리에 반응한다. 필자 같이 어디가나 누우면 자는 사람은 조상들이 포식자로부터 공격을 많이 받지 않았거나 스스로 왼쪽 뇌를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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