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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근수 Mar 06. 2022

조상들이 못 먹어서 살이 찐다


2차 세계대전의 막바지였던 1944~45년 겨울 굶주림에 시달렸던 네덜란드 사람들의 자녀들이 저체중으로 태어나 당뇨와 비만을 겪었다. 부모가 겪은 환경적 요인이 자녀의 건강에도 영향을 준 것이다. 여기서 눈여겨 볼 것은 부모가 굶주림을 겪었는데 자녀들이 저체중으로 태어났지만 나중에 비만했고 당뇨를 겪었다는 점이다. 그 후 과학자들이 동물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더니 같은 증상이 나타났다. 임신 중에 굶은 쥐가 낳은 새끼 쥐들이 체중은 가벼웠지만 당뇨병 증상이 나타났고, 그 새끼들의 새끼 쥐까지 같은 증상이 나타났다. 부모의 삶이 후손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암시한다. 부모가 잘 못 먹고 산 경우 자녀들의 몸에 에너지를 비축하려는 특성이 나타나면서 과체중이 되고 당뇨 증상이 나타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유전자는 변함이 없는데도 단 한 세대 전의 경험이 후대에 영향을 줬다.


네덜란드 사람들이 단 1~2년 기아를 겪었는데도 자녀들에게 비만과 당뇨증상이 나타났다. 그런데 인류의 조상들은 역사적으로 극히 일부분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오랜 세월 굶주림에 시달렸다. 언제 어디서 굶주림이 닥칠지 예측할 수가 없었고 심각한 흉년이 들거나 자연재해가 닥치면 오랫동안 굶주렸을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본능적으로 과식을 해서라도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양을 섭취하도록 진화되어 그것이 유전자를 바꾸어 놓았을 것임은 분명하다. 식량부족에 대비하여 우리 몸은 에너지를 비축하는 것이다. 이를 ‘절약’ 유전자 가설(thrifty genotype hypothesis)이라고 하며 1962년에 처음 제기되었다.


인간은 수백만 년 또는 수십만 년 동안 진화해오면서 대부분 구석기적인 생활을 하였고 그에 걸 맞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오늘날 인간이 겪는 육체적 질병이나 정신적 질환은 신석기시대에 시작된 농업생산과 정착생활과 함께 나타났다. 구석기시대에는 수렵과 채집생활을 하며 다양하고 많은 식물을 섭취했지만 농업경작 생활을 하면서 쌀과 밀 등 제한된 음식에 의존하게 되었다. 따라서 탄수화물의 섭취 비중이 높아지면서 당뇨병, 고혈압 등이 증가하고 충치도 많아졌다. 우린 신석기, 청동기, 철기를 지나 포스트 산업 혁명기를 살고 있지만 여전히 구석기시대 유전자와 몸을 가지고 열심히 땀을 흘려야 하는 역설에 처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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