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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인문사회

정치로부터의 자유와 마음의 평화

종교나 정치 이야기는 식탁에서 하지 않는다. 해봤자 좋은 일이 없다. 그럼에도 일부 사람들이 종교와 정치를 음식테이블에서 꺼내서 자기가 옳다느니 논쟁하다가 불편한 일만 생긴다. 어리석음은 잘 변하지 않는다.


김동인의 소설『발가락이 닮았다』에는 재밌지만 비극 같은 장면이 나온다.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남편의 아내가 아이를 낳았다. 남편은 아들이 자기 발가락을 닮았다고 말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것이다. 이렇게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것을 확증편향이라고 한다. 확증편향은 믿고 싶지 않은 사실에 직면했을 때 자기도 모르게 그 사실을 기피하게 만드는데 어느 누구도 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아전인수나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는 ‘견강부회'도 편향으로부터 나온다. 정치나 종교에 대하여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 밥상머리에서 대화가 안 되는 이유이다. ‘답정너’라는 재미있는 말이 있다. 답정너는 ‘답은 정해져 있으니까 너는 대답만 해’의 준말이다. ‘답정너’는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고 생각하여 타인에게도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이것은 ‘답정넌’으로 바꿀 수 있다. ‘답은 이미 정해져있다! 넌 떠들어라! 난 안 듣는다!’ 전자가 나만 옳다는 이념적 이데올로기라면, 후자는 그로 인한 확증 편향이다.


확증 편향은 내편과 적을 나누는 진영 논리가 판을 치는 한국 정치에서 적나라하다. 대의 민주주의는 국민이 뽑은 대표자가 사회 갈등을 조정하는 정치이다. 우리나라의 정치에서는 조정은커녕 특정 대선 주자를 중심으로 하는 ‘이익’ 집단이 우리 편과 적을 나누어 갈등을 증폭시키는 정치판이다. 지지자 간의 ‘패거리’ 싸움인 것이다. 진보와 보수라는 단어는 내 편과 네 편을 구분하기 위한 용도로 악용된다. 과거 보수 진영이 빨갱이라는 단어로 낙인찍었듯이 진보 진영은 적폐로 몰아 세웠다. 내부의 합리적인 비판은 매장되고 ‘배신’이라는 낙인을 찍는다. 이러한 반 지성주의는 민주주의의 가장 큰 위협이다.


확증 편향이 얼마나 심한지를 보여주는 실험이 있다. 프린스턴 대학 학생들에게 민주당과 공화당 하원의원 후보의 사진을 1초간 보여준 뒤 “누가 더 능력 있어 보이는가? 누구를 찍을 것인가?”라고 물어보았다. 그 결과, 그들의 답변은 실제 선거 결과와 70%나 일치했다. 그들은 후보가 속한 정당을 기초로 별생각 없이 거의 후보를 결정했다. 그 후보가 얼마나 능력이 있는지, 그가 부도덕한 인물인지, 그가 하려는 정책은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런 정보는 필요 없으며 투표는 합리적인 판단이 아니라 ‘감정적으로’ 한다.


확증 편향은 정치적인 이슈에서 ‘내로남불’의 모습으로 확연하게 드러난다. 2004년 미국 대통령 선거 때 공화당 후보는 조지 부시, 민주당 후보는 존 케리였다. 사람들에게 민주당 존 케리 후보가 1996년 은퇴 연령을 높이겠다는 연설을 한 것과 2004년에는 은퇴 연령을 낮추겠다고 모순되는 주장을 하는 연설을 보여주었다. 공화당 지지자는 모순된 발언을 단번에 알아차린 반면, 공화당 후보인 부시가 모순된 발언을 범했을 때는 모호한 태도를 보였다. 이는 민주당 지지자도 마찬가지였다. 또한, 공화당과 민주당의 핵심 당원에게 상대당 후보의 연설을 평가해 달라고 했더니 모두 상대방 후보를 일방적으로 비난했다. 이들의 뇌를 관찰해보니 이성을 담당하는 뇌 부위는 ‘잠들고’ 감정을 처리하는 영역만 활동적이었다. 여기에 분명한 답이 보인다. 물론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정치적인 사안에 대한 사람들의 판단은 이성과는 관련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 연구를 했던 드루 웨스턴(Drew Westen)은 자신의 저서『The Political Brain』에서 “유권자들이 합리적으로 투표할 것이라고 전제하고 선거 전략을 짜면 백전백패한다.”라고 주장했다. 2004년 대선에서 공화당이 집권했는데 이들은 감정에 호소하여 승리했다. 2008년 대선에서는 버락 오바마가 승리했는데 그의 정서적 화법이 먹혀든 것이다. 즉 합리적인 판단이 아니라 감정적인 진영 논리에 따라 호불호가 결정된다.


우리나라에서의 투표는 더 감정적이다. “우리 ‘존경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께서, 대통령하시다가 힘들 때 대구 서문 시장을 갔다는 거 아닌가.” 2021년 12월 대선주자였던 이재명이 한 말이다. 또한 “박정희 대통령이 경부 고속도로를 만들어 제조업 중심 산업화의 길을 열었듯이 이재명 정부는 ‘탈 탄소’ 시대를 질주하며 새로운 미래를 열어 나갈 ‘에너지 고속도로’를 깔겠다.”고 말했다. 박정희·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우호적인 발언으로 대구·경북 지지율이 2주 만에 9%에서 28%로 올랐다. 우리나라에서 투표라는 것이 얼마나 감정적인지 알 수 있다.


심지어는 고학력자도, 학식이 대단한 사람도 정치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매우 감정적임을 주위에서 흔히 본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 모여서 정치에 대해서 얘기하다보면 금방 목소리가 커지고 논쟁은 평행선을 그으며 싸움으로까지 가기도 한다. 그래서 ‘생각이 있는’ 사람은 정치 얘기는 밥상머리에서는 하지 않는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 이런 불합리한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바로 우리의 유전자와 뇌에 단서가 있다. 인간의 정치적인 성향은 상당부분 타고 난다. 진보적인 사람과 보수 성향의 사람은 아예 뇌 구조가 다르다. 보수 성향의 사람은 편도체(amygdala)의 오른쪽 부분이 두꺼워 변화를 거부하고, 진보 성향의 사람은 전대상회(anterior cingulate cortex) 부분이 두꺼워 새로운 것과 변화에 긍정적이다. 흥미롭게도 가장 최근에 진화가 뇌의 ‘앞’ 부분에 전대상회가 있어 진보적인 성향과 진화가 관련이 있음을 시사한다. 보수 성향의 사람은 생존 위험에 공포를 많이 느끼고 민감한 반면 진보 성향의 사람은 변화와 새로운 지식에 관심이 많다. 또한 진보성향의 사람은 도파민과 관련된 특별한 유전자도 갖고 있다. 도파민은 위험을 감수하게 하여 변화를 선호한다. 두 유형의 인간은 타고날 때부터 다르다! 이렇게 인간의 정치적 성향을 연구하는 분야를 신경정치학이라고 부른다.


결국 정치라는 사회 현상이 과학에서도 다루어진다. <사이언스>는 2020년 9월 지구 위에 올려놓은 투표함의 모습을 표지에 실었다. 그리고 ‘불확실한 상태의 민주주의’라는 제목으로 논문을 실었다. “민주주의의 기초가 되는 사회와 인간 행동에 대한 과학적인 이해가 민주주의를 증진시킴으로써 인간의 삶과 사회를 나아지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여기에 소개된 논문 중 하나는 미국 대선에 대한 논의였는데, ‘당파성’이 특히 강력한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인구의 약 40%는 특정 정당을 강력히 지지하고, 50%는 당파성이 약하고 10%는 당파성이 없다. 대선 캠페인은 강력한 지지층을 제외한 60%를 대상으로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당파성이 약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판단을 내린다.


정치적 성향이 유전자나 뇌 구조와 관련이 있다는 것은 그것이 선천적이고 바뀌기 힘들다는 뜻이다. 따라서 유전자나 뇌의 구조를 바꾸는 ‘불가능한’ 충격 없이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이것은 자신이 좋아 하는 이성 스타일이 사람마다 다른 것과 마찬가지이다. 자신이 이런 남자를 좋아하는데 저런 남자와 결혼하라는 것과 같다. 따라서 자신이 선호하지 않은 성향을 가진 사람의 말을 듣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받아들이지도 못한다. ‘아주’ 중도 성향을 가진 사람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사람은 한쪽 날개로 날아가는 새와 같다. 잘 날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삐딱하게 난다. ‘삐딱한’ 시각을 가지고 산다.


대통령선거가 끝날 때마다 ‘선거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되지 않으면 허탈감과 함께 분노로 힘들어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대선이 끝나면 ‘화병’ 증후군이 나타나는 사람들이 많다. 충격을 겪은 뒤 나타나는 정신적 육체적 장애를 뜻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를 비유하여 선거패배 스트레스 장애(Post Election Stress Disorder, PESD)라는 말도 생겼다.


2016년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자 민주당 강세 지역에서 스트레스 환자들이 늘었다. 미국에서는 대통령 선거 당일 교통사고 사망자수가 크게 증가한다. 대선 투표 결과가 실시간 중계되면서 흥분하면서 과속 및 난폭운전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https://jamanetwork.com/journals/jama/article-abstract/182650


이로 인한 스트레스를 줄이려면 검색이나 뉴스를 보는 시간을 줄이고 독서, 친구 만나기나 취미 등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 자신과 정치성향이 같거나 비슷한 사람끼리 공유하는 지식이나 의견은 집단적 확증편향에 매몰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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