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인간답게 죽을 수 있는 권리

디크 스왑은 의대 실습생 시절 심폐 소생술로 환자를 구한 적이 있는데, 지금도 그 일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간호사가 그 환자를 침대에 눕힌 채 병실로 옮기는데 갑자기 심장 박동이 정지했다. 그 즉시 배운 대로 실행에 옮겼으며 환자를 소생시키는데 성공했다. 얼마 후 그 환자의 진료기록이 도착했다. 그는 암이 심장으로 번진 폐암 환자였다. 그 후 며칠 동안 밤낮으로 그 가엾은 남자의 침대 옆에 앉아서, 그가 약간의 공기를 호흡할 수 있도록 기도를 뚫어주는 일을 했다. 그를 소생시키지만 않았더라도 그는 그런 큰 고통을 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를 살려야했을까? 무지무지한 고통을 감내하고라도 살아있게 하는 것이 인간적인가? 아니면 신의 뜻인가?


스위스에서 시작된 안락사 제도가 유럽에서 널리 퍼지고 미국도 10개 주 정도, 캐나다, 호주 일부 주, 남미 콜롬비아 등으로 확산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안락사를 금기시하여 일부 병마에 시달리는 말기 환자들은 유럽으로 가서 안락사를 택한다. 스위스에서 안락사를 시행하는 단체는 2021년 1월 현재 5개이다. 1982년 설립한 ‘엑시트(EXIT)’는 스위스 전체 인구의 약 1.2%인 11만 명으로 가장 크다. 그러나 스위스 사람만 가입할 수 있다. 1998년 설립된 스위스의 ‘디그니타스(DIGNITAS)’는 외국인도 가입이 가능하다. 스위스는 1942년부터 안락사가 용인되었다. 처음에는 말기 암이나 전신 마비 환자에게 허용되었으나 지금은 우울증을 앓아 삶의 욕구를 잃은 사람까지 허용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기준은 의료 기록과 온전한 정신으로 스스로 결정한 것인가 여부다. 스위스가 안락사를 용인한 것은 개인의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는 정서도 있지만 높은 자살률도 한 가지 이유로 꼽는다. 자살을 방지할 수 없다면 인간답게 죽는 방법을 열어두자는 것이다. 안락사가 활성화해서인지 이후 스위스 자살률은 점차 내려갔다. 반면 우리나라는 이전보다 크게 늘었고 OECD 국가 중 1위다. 특히 노인의 자살률은 OECD 국가 평균의 세 배가 넘는다. 우리나라 사람의 기대수명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레 병고에 시달리는 시간이 길어졌다. 가족에게 누가 될까봐 극단적 선택을 한다. 그러나 자살은 가족에게도 큰 상처를 준다. 안락사가 그것을 대체하는 것이다. 스위스 형법은 ‘이기적인 동기’로 타인의 자살이나 자살 시도를 유발하거나 도와주어 만일 그가 실제 자살을 하거나 자살 시도를 하였다면 5년 이하의 징역이나 벌금형에 처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따라서 이기적인 목적이 아니라면 처벌하지 않는다. 그리고 외국인 조력자살에 대하여 규제하거나 처벌하는 조항이 없다. 반면 우리나라 형법은 비록 환자를 위해 선의로 도와주어도 처벌을 받는다. 2018년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되었다. 법률 근거는 마련되었지만 지금도 연명의료가 계속되고 있다. 그 와중에 고통을 받는 건 오로지 환자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2019년 설문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사람의 80%가 안락사에 찬성했다(중앙일보, 2021.2.26.).


치료불가 암 판정을 받은 한 프랑스인이 안락사가 허용되는 벨기에에 가서 생을 마감했다. 그는 고통스러운 치료로 얼마 안 되는 생명을 연장하길 원치 않았다. 말기 암 환자에게 화학요법과 방사선 치료는 고통만 가중시킬 뿐, 무의미하다는 것이 그녀가 알아본 의학적 치료의 진실이었다. 다시 말해서, 말기 암 환자에게 시행된 화학요법의 4분의 3이상이 무의미한 치료였다는 것, 오히려 화학요법을 받지 않은 사람이 더 오래 생존한다는 것, 약물요법과 감마선, 방사선 치료와 같은 획기적인 암 치료법이라는 것도 알고 보면 별 효과도 없고 의료계의 돈벌이에 불과하다. 외과수술 역시 무력하기만 한데, 폐암환자의 경우 수술 받은 환자 20%는 수술 받은 부위에 암이 재발하고 80%는 다른 부위로 전이된다. 현대의학의 도움으로 말기 폐암환자의 목숨을 연장한다는 것은 삶의 양적 길이만 늘릴 뿐 삶의 질이 보장되지 않아 고통스럽게 죽어간다. 또한 그리고 아이들에게 자신이 고통스럽게 죽는 모습, 인격이 붕괴되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 프랑스인 90% 이상이 고통스럽게 죽길 원치 않기에 적극적 안락사를 지지한다. 그는 자신이 선택한 대로 벨기에에서 안락사를 받기로 결정한 다음, 오히려 죽음을 차분하게 준비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곧 다가올 죽음을 생각하느라, 오히려 우울한 기분이나 감상이나 격정에 휩싸이지 않는 내 모습에 스스로 놀랐다. 바로 그 생각들이 나를 지탱해주었다. 나는 떠날 준비를 하며, 유언장을 쓰고, 성에 딸린 부속 건물의 설계와 장식을 끝내고, 황량한 겨울에도 산책하기 좋도록 정원 오솔길을 설계해 두었다. 그뿐만 아니라 내가 쓸 납골묘를 고르고 장례절차를 준비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머물 장소를 정하는 일에 몰두했다.”(일다, 2014.7.22. 이경신이 마리 드루베, 내가 죽음을 선택하는 순간, 서평 편집.).


2017년부터 존엄사가 국내에 도입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유명무실하다. 그것은 어쩔 수 없이 우리 탓이다.


https://blog.naver.com/ksk0508live/222269140952


매거진의 이전글 암으로 보는 운칠기삼 인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