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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근수 May 11. 2022

생존경쟁 사기꾼과 거짓말쟁이의 진화론과 사회현상


모방을 의미하는 의태는 동물이 다른 동물이나 주위 환경을 흉내 내는 것을 말한다.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거나 숨어서 먹이를 잡으려는 시도이다. 주변의 환경과 유사한 색을 갖는 보호색이나 다른 생물을 따라하는 모방이 있다. 베이츠 의태(Batesian mimicry)는 외형으로 속이려고 흉내 내는 것이다. 애벌레가 태어나면서 뱀의 머리 모양을 한다든지 뱀처럼 쉬익 소리를 내며 머리를 앞뒤로 흔드는 것이 그것이다. 베이츠 의태는 대부분 곤충들이 한다. 뮐러 의태(Müllerian mimicry)는 수렴진화의 한 예로 서로에게 유해한 동물들이 서로 유사한 특징을 갖는 것이다.


의태는 소름끼치는 모습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미국 플로리다 주에는 토종 불개미가 산다. 으스스하게도 이 불개미의 집 안에는 다른 개미의 머리가 잔뜩 쌓여있다. 과학자들은 이 불개미가 이 개미를 전문적으로 잡아먹는 포식자라는 가설과 불개미가 이 개미의 버려진 둥지를 차지했다는 가설로 이를 설명해왔다. 그러나 2019년 불개미가 ‘화학적’ 의태를 통해 개미를 사냥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개미의 몸 바깥에는 큐티클 탄화수소라는 왁스 층이 있다. 이는 개미의 몸이 마르지 않도록 진화되어 나타난 것인데 나중에 자기 종족과 적을 구별하도록 진화했다. 따라서 종마다 왁스 층의 성분에는 차이가 난다. 그러나 이 불개미의 큐티클 탄화수소는 모두 그 지역에 사는 개미의 것과 일치했다. 확실하게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잡혀 먹인 개미들이 불개미를 포식자로 인식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의태는 사실 곤충에게 흔하게 발생하며 포유류에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2022년 세계 최초로 포유류인 박쥐가 베이츠 의태를 하는 사례가 발표되었다. 박쥐가 말벌이 윙윙거리는 소리를 모방해 천적인 올빼미를 피하는 사례이다.

https://www.cell.com/current-biology/fulltext/S0960-9822(22)00486-9?utm_source=EA#%20


탁란(托卵)은 다른 새의 집에 알을 낳아 다른 새가 새끼를 기르게 하는 것을 말한다. 일종의 기생이다. 탁란이 의태의 하나로 볼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유사한 것은 확실하다. 탁란을 하려는 새와 이 알을 가려내려는 새(숙주) 간의 생존경쟁이 이어져 왔다. 탁란을 하는 새 중에는 알 색깔이나 무늬를 숙주의 알에 맞춰지도록 진화한 종도 있다. 20~21세기 들어 탁란을 하는 새의 알을 골라낼 수 있는 숙주의 능력이 커지면서 탁란을 하는 새의 생존이 어려워지고 있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 휘파람새에 탁란 하는 뻐꾸기 핀치(cuckoo finch)가 그렇다. 적어도 약 200만 년 전부터 뻐꾸기 핀치 암컷이 어미로부터 암컷만 가진 W염색체를 통해 숙주와 비슷한 알을 위조하는 능력을 물려받아 온 것을 확인했다. 그러나 모계 유전을 통해 여러 종에게 탁란할 수 있는 능력을 물려받아 온 것이 뻐꾸기 핀치에게는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뻐꾸기 핀치가 휘파람새 네 종에 걸쳐 탁란할 수 있는 이점은 있지만 각 숙주가 탁란을 골라내는 능력을 강화하는데 맞춰 대응력을 발전시키는 데는 느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부 숙주가 알의 색깔과 무늬의 특색을 놀랍도록 다양화하면서 탁란을 구분하는 능력이 향상되어 탁란 조는 심각한 도전에 당면해 있다. 휘파람새의 한 종인 황갈색 옆구리 프리니아(tawny-flanked prinia)는 탁란을 골라내기 위해 황록색을 가진 알을 점점 더 많이 낳는다. 모계 유전을 이용해 청색과 붉은색 알을 각각 진화시켜온 뻐꾸기 핀치는 이와 비슷한 알을 만드는데 필요한 색소를 혼합할 수 있는지가 불분명한 상태다. 뻐꾸기 핀치가 위조할 수 없는 특색을 가진 알이 출현해 다른 숙주를 찾아야 하거나 경험 부족으로 탁란을 골라낼 수 없는 젊은 숙주에 의존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럼 인간은 의태를 하지 않을까? 인간도 ‘의태’ 행동을 한다. 위장술도 그 중 하나이다. 위장술은 특히 전쟁에서 주로 사용된다. 얼굴을 주변 환경과 비슷한 색칠을 한다든지 대포에 위장막을 설치하는 것이 그것이다. 동물의 의태란 본질적으로 속임수다. 살기 위해 포식자 혹은 누군가를 속이는 수단이다. 속임수가 없었더라면 번식하고 증식하지 못하고 이미 멸종되었을 것이다. 동물들이 다른 종을 상대로 의태를 하지만 인간은 인간을 상대로 의태를 한다. 사실 인간은 역사적으로 매우 잔인하고 야비한 종이다. 역사 내내 수많은 전쟁으로 종 내 살인이 어떤 종보다도 많다. 또한 복잡하고 ‘잔인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거짓말을 ‘의태’로 활용해왔다. 인간사회에 거짓말과 사기가 많다는 것은 그런 유전자를 가진 종이 더 많이 살아남았음을 의미한다. 2020년대 초 한국 사회에서 일어난 ‘진영논리’를 기초로 한 시끄러운 거짓말과 사기논쟁은 그야말로 ‘조직적인 왜곡의 의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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