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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근수 May 03. 2022

기생과 유전자 이동이라는 '기이한' 생명현상

기생으로 생존하는 유명한 동물은 뻐꾸기이다. 뱁새의 둥지에 알을 낳아 뱁새가 자신의 새끼를 기르게 한다. 뱁새는 이를 눈치 채고 둥지 밖으로 뻐꾸기의 알을 떨어뜨린다. 그러나 뻐꾸기가 자신의 알을 가져다 놓은 뒤 뱁새의 알을 그만큼 내다버리면 뱁새는 속아서 새끼들을 헌신적으로 키운다. 뻐꾸기 새끼는 뱁새의 새끼보다 먼저 부화하고 훨씬 더 크다. 이놈들은 뱁새 어미가 자리를 비우면 뱁새 알과 새끼를 둥지 밖으로 밀어낸다. 뻐꾸기는 기생생물의 끝판 왕이다.


기생(parasitism)은 한 생물이 다른 생물의 영양분으로 살아가는 관계를 말한다. 기생은 동물뿐만 아니라 식물계에서도 흔하여 기생 식물만 수천 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2019). 새삼(dodder)은 덩굴 기생식물로 광합성을 하지 않는다. 새삼은 숙주 식물을 찾아 뿌리를 내려 양분을 먹으며 산다. 이 과정에서 새삼은 숙주의 유전자를 가져와 숙주 식물의 방어를 무력화시키는데 활용한다. 새삼은 적어도 108개의 유전자를 숙주 식물에서 가져왔고 이 중 18개는 모든 새삼 종에서 발견된다. 따라서 새삼 속의 공통 조상이 훔친 18개의 유전자가 이 기생 식물의 성공에 중요한 비결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식물계의 기생 끝판 왕이 ‘새삼(dodder)’이다. 새삼은 잎이 없는 대신에 다른 식물의 줄기를 감으면서 자라는데 150여 종의 덩굴식물이 포함되어 있다. 놀라운 것은 새삼은 숙주 식물로부터 빼앗는 것은 영양분뿐만 아니라 유전자까지 포함한다. 이러한 능력은 수평적 유전자 이동(horizontal gene transfer) 현상과 관련이 있다.


‘수평적 유전자 이동’이란 생식에 의하지 않고 개체에서 개체로 유전형질이 이동되는 유전학적 현상을 말한다. 유전자의 수직 이동은 부모와 자식 관계에서 일어나지만, 수평이동은 두개의 다른 유기체 사이에서 유전자가 이동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수평적 유전자 이동 현상은 주로 단세포 생물에서 관찰된다. 예를 들어 박테리아가 항생제에 대한 내성을 교환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 바로 유전자 수평이동 방식이다. 단세포 생물에서는 수평적 유전자 이동이 흔하게 일어나지만, 고등 생물에 속하는 식물에서는 상당히 드문 현상이다. 그러나 고등 생물에서도 흔하게 일어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개구리는 자신을 잡아먹는 뱀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뱀의 DNA 중 트랜스포존(transposon)이라는 부분이 거머리 같은 기생 동물을 통해 개구리로 전달된 것이다. 트랜스포존은 뛰어다니듯 염색체에서 위치를 쉽게 바꿔 ‘도약 유전자(jumping genes)’라고도 불린다. 트랜스포존은 1983년 옥수수에서 처음 발견했다.


수평적 DNA 이동은 미생물에서나 일어나는 드문 현상으로 여겨졌지만 모든 생물 진화과정에서 일어난다는 증거가 잇따라 나온다. 대표적인 예가 소에 있는 트랜스포존이다. 소(bovine)의 유전체 중 18%를 차지하며, 1980년대 처음 발견됐다. 이후 1990년대에 이 트랜스포존이 뱀에도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마다가스카르에 사는 개구리의 경우 지난 8500만 년 전에서 130만 년 전 사이에 뱀과 개구리 사이에서 DNA의 이동이 최소 54번 일어났다고 추정된다. 이 지역에서 질병이 퍼지면서 기생 동물이 늘어나 DNA의 수평 이동도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https://academic.oup.com/mbe/article/39/4/msac052/6563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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