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에 발굴된 약 6천200년 전 유해에 대한 유전자 분석을 한 결과 무차별적인 집단학살(41명)의 정황이 드러났다. 2살부터 50살까지 남녀가 포함된 유해이다. 머리에 몽둥이 등으로 맞아 손상된 부위가 있었고 이 중 일부는 네 곳까지 상처가 있어 학살이 광적으로 진행됐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러한 무차별적 집단학살은 인간의 역사 내내 일어났다. 변한 것이 있다면 첨단무기의 개발로 짧은 시간에 더 많은 학살을 한 것밖에 없다.
https://journals.plos.org/plosone/article?id=10.1371/journal.pone.0247332
선은 결코 거짓이나 폭력으로부터 나오지 않는다.
Permanent good can never be the outcome of untruth and violence.
간디
집단 싸움이나 집단학살은 후대의 발명품도 아니고, 조건과 관계없이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사태도 아니다. 집단 싸움은 진화를 통해 형성된 인간이라는 종의 유전자에 각인된 행동이다. 이런 의미에서 전쟁과 평화 둘 다 ‘우리 유전자 안에’ 있으며, 사회역사적 맥락에 따라 평화와 전쟁의 균형이 요동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루소는『사회계약론』에서 자연 상태의 인간은 비폭력적이고, 이타적이며, 경쟁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착각이다. 인류사회의 먼 과거는 토머스 홉스가『리바이어던』에서 묘사하듯이 전쟁과 폭력이 난무했다. 오늘날 자연 상태의 석기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것을 보여준다. 인류학에 진화론을 도입했던 나폴리언 섀그넌(Napoleon Chagnon)이 쓴『고결한 야만인』(2014년 번역출간)은 아마존 원주민 야노마뫼 족을 평생에 걸쳐 연구한 기록이다. 야노마뫼 족은 1964년 당시 수렵·채취에서 농업·가축으로 넘어가는 석기시대에 살고 있었다. 이들은 이웃의 공격을 항상 걱정하고 두려워했고 늘 폭력과 전쟁의 위협에 노출됐고 자주 이웃마을과 전쟁을 치렀다. 배우자를 차지하기 위한 싸움은 비일비재했다. 살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더 많은 아내나 자식을 가졌다. 우리는 힘에 있어서 ‘우성’인 유전자를 가진 살인자와 폭력배의 후손인 셈이다.
초기 인류의 전투는 단지 의식의 성격을 띠었을 뿐이며 아무런 의미도 없는 고함지르기와 격분으로 가득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인명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한 활보와 헛된 위협만 넘쳤다는 이야기이다. 이 주장에 따르면 출생률이 낮고 자연사망률이 높은 사회에서 사람들은 적과 자신에게 똑같이 해만 끼칠 뿐인 유혈극을 피한다. 이들은 진짜 전투 대신에 서로 합의하여 몸짓 놀이를 마련하고 연극적인 동작으로 살인을 대신했다. 인류학자 로렌스 킬리(Lawrence H. Keeley)는 이러한 주장을 신(新) 루소 적이고 포스트모던적인 우우(woo woo)의 땅에서 두서없이 늘어놓은 비합리적인 이야기로 치부한다. 우우란 증거가 충분하지 못한 초자연적이고 불가사의한 것을 믿는 행위를 말한다. 로렌스 킬리(Lawrence H. Keeley)의 저서『War Before Civilization: The Myth of the Peaceful Savage』(1997)는 국가 이전 사회들 간의 치명적인 폭력, 전쟁, 매우 높은 살인비율을 뒷받침하는 고고학적 민족지학적 증거를 엄청나게 보여준다. 수렵채집인 사이에서나 국가 이전 원예 민 사이에서나 폭력과 전쟁은 만연했고, 이것이 유달리 높은 폭력에 의한 사망의 비율로 귀결되었음을 발견했다.
아테네와 그 위성국들이 스파르타와 그 동맹국들이 한편이 되어 싸운 펠로폰네소스 전쟁(기원전 431~404)은 고대 그리스의 세계대전이었다. 전시 30년 동안 아테네 남성의 약 3분의 1이 전사했다. 공화정 로마가 치른 가장 격렬한 전쟁인 제2차 포에니 전쟁(기원전 218~202)의 첫 3년 동안 17~46세 로마시민 약 20만 명 가운데 5만 명이 죽었다. 이는 단 3년 만에 징집연령 사람들 중 약 25%를 잃은 것으로, 제2차 세계대전 시기 러시아의 군인 사망률과 같은 수준이고 독일의 군일 사망률보다 높은 수준이다. 13세기 몽골족은 유라시아 사회들을 정복하면서 역사시대를 통틀어 가장 참혹한 살상과 파괴를 자행했다. 또한 몽골전쟁은 지리적 범위 면에서 양차 대전과 얼추 비슷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소련이 기록한 약 15%라는 끔찍한 사망률과 같은 수준이었고 중국의 추정치는 거의 확실하게 훨씬 더 높은 수준이다. 시선을 근대 초 유럽으로 옮기면, 30년 전쟁(1618~1648) 동안 어느 정도는 전쟁 관련 질병과 기근에서 기인한 독일의 인구 손실은 전체의 5분의 1과 3분의 1 사이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어느 수치든 독일의 제1차 세계대전 사망자 수와 제2차 세계대전 사망자 수를 합한 총계보다 높은 수준이다. 이런 사례들은 모두 범위와 규모 면에서 역사상 최대인 전쟁들이다. 하지만 부족들, 도시국가들, 국가들 사이에 벌어진 더 작고 덜 영광스러운 수많은 전쟁의 상대적 사망률도 대개 최대 전쟁들의 사망률만큼이나 높았다.
2차 세계대전에서 베를린에서만 10만 명 이상, 독일 전역에서는 최대 100만 명의 여성들이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 1992년 구 유고슬라비아에 인종갈등으로 일어난 내전으로 보스니아계 세르비아 병사들이 상부로부터 회교도 여성을 강간할 것을 지시받아 수만 명의 여성과 소녀가 피해를 입었다. 전쟁에서 성폭력 문제는 여성들이 처한 현실이다. 전쟁은 늘 여성 납치를 수반했고, 납치된 여자는 윤간하거나 아내로 삼거나 혹은 둘 다 실행되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미디안 사람을 모두 죽이되 처녀는 너희를 위하여 살려두라고 명령(민수기 31.17~8)한 것은 역사 내내 이어진 승자의 행위, 다름 아닌 남자는 죽이고 여자는 겁탈하며 젊고 아름다운 여성은 전리품으로 갖는 행위를 대표한다. “아이들 가운데서도 사내 녀석들은 당장 죽여라. 남자를 안 일이 있는 여자도 다 죽여라. 다만 남자를 안 일이 없는 처녀들은 너희를 위하여 살려두어라.”(민수기 31.17~8)
시간이 흐르면서 폭력은 줄었고 20세기 유럽은 1% 수준으로, 현대사회는 0.5% 수준까지 떨어졌다. 미국 하버드대 스티븐 핑커(Steven Pinker, 1954~) 교수의 저서『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는 이 점을 잘 정리하여 제시하였다. 인류는 호모사피엔스 사피엔스로 진화 후 ‘인간의 역사’가 이루어지고 ‘문명’이 발전하면서 제도적 장치로 폭력성과 살인이 점차 줄어들었다. 스탠포드 대학 이언 모리스(Ian Morris, 1960~)가 주장한대로 20세기에 대규모의 학살이 있었음에도 인구 대비 학살의 비율은 감소했다. 인류가 농경사회로 ‘진화’하기 이전 수렵과 채집 시대의 사망자 가운데 폭력으로 죽은 비율이 60%까지 추정되기도 한다. 2017년 미국 노트르담대학 등 공동연구진은 “인구가 증가하면서 군대의 규모가 상대적으로 줄어 폭력성이 줄어들게 돼 보이는 것일 뿐 인간 본성에 변화는 없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스티븐 핑거의 주장대로 기술과 제도의 진보로 인류가 좀 더 평화적이고 선한 천사로 변하고 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는 결론인 셈이다. 핑커 교수의 주장처럼 인간의 폭력성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든지, 이번 연구결과처럼 인구증가에 따라 전쟁과 전쟁 사상자가 줄어드는 것이든지 확실하지 않지만 폭력은 줄어드는 것은 사실이다.
인간이란 과연 무엇일까? 문명을 세우고 과학과 철학을 만들어낸 위대한 존재일까? 아니면 전쟁과 학살을 반복하는 악마 같은 짐승일까?
그것은 인간이 수십억 년 진화의 끝에 서있는 존재임을 생각해보면 간단치 않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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