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22년 출간한 <미래형 인재 자녀교육> 업데이트 글입니다.
한국 사회는 ‘초’ 경쟁사회이다. ‘내 아이가 대학입시를 성공적으로 통과하지 못한다면 다음에는 기회조차 없다.’, ‘조금만 고생하면 내 아이의 인생이 필 것이다.’라는 생각이 널리 퍼져있다. 대학입시는 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대물림하는 수단이다. 이런 사회에서 대부분의 자녀들은 학원으로 몰아넣어진다. 문제는 그렇게 공부하는 아이들이 마음을 다하여 열심히 하느냐는 또 다른 문제이다. 입시공부로 아이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다. 초·중·고생 약 1만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죽고 싶다’고 생각해 본 청소년이 3명 중 1명이나 된다. 그 이유로는 ‘학업 문제’가 압도적 1위였다. 아이들의 행복이나 건강은 물론이고 이러한 상황에서 아이들이 과연 얼마나 효과적으로 학습을 할까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아이들이 이런 ‘정서적’ 문제로 인해 성적이 늘 그 자리 또는 저하되기도 하고 심지어는 일탈과 자살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꽤 많다.
과거 학업 성취도와 유전 간의 연구는 어떤 유전자가 학업성적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찾아내는 데 초점을 맞추었고,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그런데 학업 성취도와 관련하여 다른 성격의 유전자가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지능지수 같은 인지 능력이 아니라 비인지 능력(non-cognitive skills)도 성취와 성공에 중요하다는 것이다.
비인지 능력이란 즉흥적인 만족을 연기할 수 있는 자제력, 강한 호기심, 배움에 대한 열망, 정서적 안정, 근면성, 좋은 사람 관계, 성공 마인드 같은 특성을 말한다. 이 중 자제력은 오징어 같은 하등동물에서도 나타나며 자제력이 강한 오징어가 더 학습능력이 좋다는 연구 결과도 있는 것을 보면 이런 특성도 진화적인 기원이 있다. 갑오징어는 아동의 자제력을 시험하기 위해 개발된 마시멜로 테스트에서 침팬지나 까마귀 수준의 자제력을 보인다. 중요한 점은 눈앞의 먹이를 보고 더 큰 보상을 위해 오래 참는 갑오징어가 더 높은 학습능력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비인지 능력은 전통적인 지능테스트에는 포함되지 않으나 학업, 직업 그리고 인생의 성공에 중요한 요소이다. 컬럼비아대학 등 공동 연구팀은 2021년 인간 유전체에서 비인지 능력과 관련된 157개의 유전자 관련 위치를 찾아냈는데, 교육성취에 미치는 유전적 영향(heritability)은 인지적 요인이 43%, 비인지 요인이 57%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비인지 유전자들의 영향력은 인지적 유전에서 나타나는 것보다 더 강하거나 그만큼 강한 관계성을 보여 주었다. 이 연구를 보면 지능지수라는 것이 인간의 지능을 평가하는 일부분에 지나지 않음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비인지 요인이 중요하다는 것은 일찍이 1960년대부터 알려졌다. 1960년대에 미국 디트로이트 슬럼가의 3~5세 아이들을 대상으로 2년 동안 교육을 한 연구 결과는 그중 하나이다. 한 그룹의 아이들은 자기 스스로의 통제와 자율성에 집중하는 교육을 시키고, 다른 그룹은 언어와 수학 학습을 시켰다. 이후 40년간에 걸쳐 이들의 삶을 추적하였는데 전자의 아이들은 교육 수준과 소득 수준이 높았지만 후자의 아이들은 범죄율이 높고 가난하게 살았다. 아이들에게 지식을 가르치는 것보다 아이들의 생각과 태도를 지도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함을 보여 준 사례이다.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고 사교육으로 지식만을 가르치려는 시도가 얼마나 문제점이 많은지를 분명하게 보여 준다.
1998년부터 2019년까지 약 20년간의 학습 관련 연구 150여건에 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메타 분석을 한 연구는 이를 종합적으로 정리한 자료이다. 메타 분석은 유사한 주제의 연구들을 계량적으로 종합해 재분석하는 연구 방식이다. 연구 결과 나이와 학년에 상관없이 ‘감성’이 풍부한 학생이 학교 내 성적뿐만 아니라 입시 성적도 좋았다. 놀라운 것은 감성이 그다지 필요해 보이지 않는 수학과 과학 분야에서도 감성이 높은 학생들의 성적이 그렇지 않은 학생보다 1.5~2배가량 높게 나왔다.
학업성적이 지능지수와만 상관관계가 있을 거란 생각을 뒤엎는 연구 결과이다. 사람들은 공부를 아주 잘하면 머리가 좋거나 열심히 공부했다고 생각한다. 지능과 노력이 원인이고 성적이 그 결과임은 분명하다. 언뜻 보아도 감성이 낄 자리는 없고 지적 능력인 지능과 감수성을 의미하는 감성은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지적인 성과물인 성적은 감성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이를 설명하는 것이 감성 지능이다.
감성 지능이란 자기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스스로 통제하고 타인을 공감하고 타인과 함께 지낼 수 있는 ‘능력’이다. 감성 지능은 1990년에 처음 제안되었다. 1995년 다니엘 골먼(Daniel Goleman)은『EQ 감성 지능』(2008년 번역출간)이라는 책을 써서 왜 IQ가 높은 사람이 실패하는지, 왜 IQ가 상대적으로 낮은 사람이 성공하는지를 감성 지능으로 설명하였다. 즉 감성 지능이 높은 사람이 학업뿐만 아니라 성취도가 높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감성 지능을 기초로 일부 미국 대학에서 사회적 감성 학습이라는 교육을 실시하였다. 27만 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 사회적 감성 학습을 받은 아이들은 학교생활을 잘하고 결석률이 10% 줄어들고, 반사회적 행동은 10% 완화되었으며 학업 성적도 11%나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감성 지능이 높은 사람은 자기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조절하고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가 흔히 말하는 ‘독한’ 사람이다. 독한 성격을 가진 사람은 성적이 기대에 못 미치면 만회하려고 끈기 있게 노력하여 성적을 향상시킨다. 반면 독한 면이 없는 사람은 한번 좌절을 맛보면 쉽게 그만두거나 ‘독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 쉽게 말하면 감성지수에는 강한 의지도 포함되어 노력을 끌어내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스스로 동기와 열정을 가지는 것의 핵심에는 자율성이 있다. 김주환이 쓴『그릿』(2013년)에서 ‘그릿’은 ‘끝까지 해내는 인내력’을 의미한다. 성장할 수 있다는 신념(Growth Mindset), 역경에도 포기하지 않는 의지(Resilience), 자발적인 동기(Intrinsic Motivation), 인내심(Tenacity)의 첫 글자를 따서 만든 단어이다.
뇌 인지과학과 심리학에 의하면,, 끈기가 미래의 성공가능성을 높여줄 뿐만 아니라 아이의 두뇌 발달에도 도움을 준다. 따라서 고학년으로 갈수록 끈기가 성적을 좌우한다. 여기서 말하는 끈기란 자발적이고 자기 동기로 스스로 하려는 의지를 말한다. 단지 일류대학을 가라는 압박에 의해서 또는 타율적으로 시켜서 하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공부의 양으로 측정하는 ‘끈기’ 면에서는 세계 최고수준이다. 그러나 학습 효율성은 OECD 30개 나라 중 거의 최하위에 속한다. 지나치게 많은 수업과 사교육을 타율적으로 시킨 결과이다. 공부의 ‘양’이 증가한다고 성적이 기계적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공부의 ‘질’을 좌우하는 감성 지능이 중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