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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글을 쓰는가?"에 대한 변명

미국의 작가 헨리 소로(Henry D. Thoreau, 1817~1862)는 20대의 나이에 2년 동안 자연에 들어가 살면서 책을 썼다. 그가 쓴『월든』은 법정 스님이 가장 사랑했다는 책이다. “내가 숲 속으로 들어간 이유는 깨어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였다. 나는 삶이 아닌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삶은 정말로 소중하다.”라는 소로의 말은 모든 사람의 로망일 수 있다. 그의 눈에는 사람들이 ‘물건’을 위해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쉴 새 없이 일만 하는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거처인 오두막을 손수 짓고 조촐한 삶을 살았다. 매일 아침 숲을 산책하고 자연을 관찰했다. 그리고 스스로 땅을 갈아 농사도 지었다. 숲 속의 오두막은 그의 거처일 뿐 아니라 숲 속의 모든 살아 있는 생명체의 거처였다.


헨리 소로는 2년 뒤 월든을 떠났다. 그가 진정으로 원한 것은 ‘자연’ 그 자체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삶이었기 때문이다. 이 후 헨리 소로는 주로 글을 쓰고 강연을 하면서 살았다. 사실 생계로 글을 쓰고 강연을 하는 것은 경제적인 여유를 얻기가 어렵다. 경제적인 기반은 삶에서 너무도 중요하다. 책을 쓴다는 것, 학문을 하는 것도 어느 정도 경제적인 기반이 필요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학문을 하려면 사치도 빈곤도 아닌 적당한 여유(scholê)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 여유(scholê)는 단어에서 스콜라(schola) 그리고 학교(school)가 나왔다. 역사를 통틀어서 철학자들이 대체로 그랬지만, 그리스의 자연철학자들 역시 아주 빈곤하지도 또 크게 부유하지도 않은, 또 엄청난 권력자도 아니고 하층민도 아닌 ‘적당한’ 여유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자유직업으로 살았던 필자가 책을 쓸 수 있었던 것은 경제적인 기초가 받쳐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필자가 글쓰기에 천재적인 재능이 있었다면 전업 작가가 되었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는 못했다. 글쓰기보다는 과학과 학문에 관심이 많았다.


헨리 소로가 살았던 월든 호수 부근 조그만 오두막에 가면 다음과 같은 푯말이 등장한다. “나는 숲 속으로 간다. 삶의 근본적인 사실에 집중하며 진지하게 살고 싶다.…내가 죽을 때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것을 발견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필자는 그 나이에 자연에 들어가 살 생각은 못했지만 자연과 숲은 늘 찾아갔다. 산과 숲에서 마음의 평온과 기쁨을 느꼈고 삶의 근본적인 문제를 더 많이 생각할 수 있었다. 40대에 히말라야를 다녀온 후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막연히 떠올랐다. “내일은 에베레스트로 혼자 떠납니다. 에베레스트라니, 오해는 하지 마십시오. 등산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에베레스트의 발치를 겸손과 갈망의 마음으로 걸어 다니겠다는 것입니다.” 작가 밤범신이 히말라야를 여행하면서 편지 글에 담아냈던 사색적 산문들을 책으로 엮은 것이『비우니 향기롭다』이다. 책의 마지막 문장에서 “언제쯤 돼야 과연 꽃그늘처럼 환한 본성의 얼굴을 하고 그리운 내 집에 부끄러움 없이 돌아갈 수 있을까요”라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박범신의 말처럼 자연 앞에서 겸허함을 배웠고 부끄럽지 않은 삶에 대해서도 가끔 생각했었다.



고 박완서처럼 필자도 40대에 작가를 처음으로 꿈꾸었지만 정신없이 시간은 흘러갔다. 어린 시절 막연한 꿈을 그리던 소년은 오십이 넘어서야 이루지 못할 꿈과 타협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쓰는 일은 어려울 때마다 엄습하는 자폐의 유혹으로부터 나를 구하고, 내가 사는 세상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지속시켜주었다.”라는 고 박완서 작가의 말처럼 글을 쓰면서 마음이 평온해지고 행복했다. 16세기 철학자 미 셸 드 몽테뉴(Michel de Montaigne, 1533~1592)는 가까운 친구가 죽고 이어서 아버지와 동생, 딸이 죽는 비극을 겪었다. 법관직을 그만 두고 20년 글을 써서『에세』를 출간했다. 삶에 대해서는 “나는 하루를 산다.”라고, 죽음에 대해서는 “습관처럼 익숙해지자.”라고 말한다. 살아가면 가장 중요한 일은 자신을 자기 소유로 만드는 것이다. 휩쓸려 시장을 떠도는 삶은 잠자리에 누우면 공허함만이 찾아온다. 글쓰기는 또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붙잡는 도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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